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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벗을삼아 유유자적 하던돌아 어이해 길 손에 잡혀 갇히어 버렸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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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삿갓
2007-10-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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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내적과 외적인 요건이 있습니다. 내적과 외적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시조가 되는 것입니다.
내적 요건도 여러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형식입니다. 형식을 큰 단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등급 : 은유. 2등급 : ‘수사법상 비유’에서 ‘은유’를 제외 한, 비유(아래, '수사법상 비유' 참조) ‘수사법상 비유’ 도 등급을 매길 수 있습니다. 3등급 : 직설적 비유(직유 : 자유시에서 많이 사용함) 4등급 : 직설. 시조한마당에서 추구하는 것은, 암유(暗喩)로 된 시조입니다 직설적 비유와(자유시에 많음) 직설적인 것은(정철의 훈민가) 시조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은유로 된 대표적 작품을 소개합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주제 : 봄을 기다림(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 수사법상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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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
2007-10-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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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나름대로 아래와같은 마음으로 저를 비유하며 습작 해 보았는데.. 아직 비유가 서툴어 그렇군요 여러모로 감사 합니다 검은 삿갓님 세월의 풍파 이겨내고 마음을 다스리며 나름대로 삶을 즐기며 살아 왔는데 어찌하다 시조에 눈을 돌려 시조에 빠져 사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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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
2007-10-2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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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선생님의 댓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 마음을 저만알게 표현했지 읽는 독자가 받아들일수 없는 그런 글이었습니다. 생각을 더해보아야 되겠습니다 ㅎㅎ 하나하나 깨우침에 즐거움이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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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삿갓
2007-10-28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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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감히 詩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자라 온 환경이나, 처한 처지가 틀리기에 詩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처럼 바보같은 짓거리는 없습니다. 영혼이 불러주지 않으면 받아 적을 수 없는 것이 바로 詩입니다. 시조도 이와 같습니다. 문명에게 도살당한 자연은 제 홀로 아니 가고 인간의 시심도 앗아가 버렸습니다. 詩가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詩입니다. 자연이 붕괴되므로서 詩도 죽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소쩍새를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소쩍새를 말한들 느끼지 못합니다. 소시적, 소나기는 자연이 제공한 장관(壯觀)이었습니다. 하늘을 검게 물들이고, 흙 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소나기는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 치맛자락 날리며 달려 온다" 자연이 그린 그 장엄한 광경을 시적으로 표현해도. 그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은 느끼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빗방울이 바닥에 튕기는 정도로밖에 이미지를 창출해 내지 못합니다. "치맛자락 날리며 달려 온다" 단 한줄의 싯귀로 자연이 연출한 그 장엄한 광경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 그리고 끝입니다. 저를 비롯한 윗대는, 배짱이 소리도, 여치 소리도, 그리고 이름모를 갖가지 풀벌레 소리를 듣고 컷습니다. 물론, 민들레도, 채송화도, 해바라기도, 분꽃도, 나팔꽃도, 그리고 생각나지 않는 많은 꽃들도 봤습니다. 밤하늘에 빤짝이는 수많은 별도 보았고, 그리고 반디불도 보았습니다.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열었고, 꽃들과 함께 중천에 해를 올려 놓았으며, 풀벌레와 함께 달을 걸어 놓았습니다. 자연과 함께 생활한 사람만이 詩다운 詩를 쓸 수 있고, 타인의 詩에서 정확하게 이미지를 그려 낼 수 있습니다. 詩는 곧 자연입니다. 발에 걸리는 것이 시인이나 시인다운 시인이 없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독자마저도 자연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자연을 배제하고 심적인 것을 표출하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연이 존재하고 있었을 때, 詩는 짧았습니다, 허나, 지금의 詩는 어떻습니까? 그 당시 지금과 같은 산문시가 출현했다면, 詩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詩는 죽었습니다. 시인이라고 껍죽대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詩를 가르친다는 사람도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무엇 詩를 가르치고 배운단 말입니까? 시조도 이와 같습니다. 참다운 시조의 스승은 상처에 의한 철학과 사상입니다. 시조도 자연이 파괴되므로서 치명상을 입었지만 詩보다는 생존력이 상당합니다. 그것은 시조는 詩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조의 돌팔이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 누구에게도 배우려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연과 자신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습니다. 자연과 자신에게 배우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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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
2007-10-2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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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삿갓님 배움과 깨우침은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것 이라 생각 합니다 검정 삿갓님 께서 하나하나 정리해주심에 깨우치는 바가 큽니다. 그것은 삿갓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 한다는 뜻이겠지요 풀벌레 소리에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 반면 정겨워 지긋이 눈을 감고 그 소리를 음미하는 사람이 있듯 자연에 동화 되는 사람과 자연을 거부하는 부류 요즘은 밤하늘의 은하수 전혀 볼수가 없지요 별똥별 떨어지는것을 본지가 언제인지 밤에 뒷동산에 누워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별 하며 별을 헤이던 그시절 하늘 전체에 빼곡히 들어찼던 그 수많던 별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새벽 하늘을 보면 군데 군데 듬성듬성 떠있는 별 요즈음은 그것이라도 볼수 있는날 그날도 드믑니다. 낚시를 하다보면 등이 휘인 물고기 지느러미가 짝짝이로 달린 변형된 물고기들이 심심치않게 물려 나옵니다. 그것이 보기싫어 요즘은 출조 자체를 안한답니다. 정말 시조다운 시조를 쓰고 싶습니다. 비록 어느것이 시조이며 어느것이 시인지도 구별할줄 모르는 돌팔이도 못되는 몸이지만 마음은 누구 못지않은 순수함과 열정, 욕망이 있습니다 목구멍에 풀칠 하기위해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기에 비록 시간이 없어 긴시간 글쓰기에 묻혀있지는 못하지만 글은 오랜시간 써야 잘써진다고는 생각 안합니다 일하는 순간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뭔가가 있을때 바로 메모 해두었다 시간이 나면 정리 해보는 것이지요. 그 순간이 지나면 바로 잊어지더라구요. 젊었을때는 안그랬던것 같은데 ㅎㅎ 좋은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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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삿갓
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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