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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딛쳐 갈아내고 강물로 다듬으며비바람 벗을삼아 유유자적 하던돌아어이해 길 손에 잡혀 갇히어 버렸느냐

ㆍ작성자 정담
ㆍ작성일 2007/10/28 (일) 07:16
ㆍ분 류 시조
ㆍ조회: 8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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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딛쳐 갈아내고 강물로 다듬으며


부딛쳐 갈아내고 강물로 다듬으며
비바람 벗을삼아 유유자적 하던돌아
어이해 길 손에 잡혀 갇히어 버렸느냐





   
이름아이콘 검정삿갓
2007-10-28 11:17
시조는 내적과 외적인 요건이 있습니다. 내적과 외적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시조가 되는 것입니다.
내적 요건도 여러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형식입니다.

형식을 큰 단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등급 : 은유.
2등급 : ‘수사법상 비유’에서 ‘은유’를 제외 한, 비유(아래, '수사법상 비유' 참조)
           ‘수사법상 비유’ 도 등급을 매길 수 있습니다.
3등급 : 직설적 비유(직유 : 자유시에서 많이 사용함)
4등급 : 직설.

시조한마당에서 추구하는 것은, 암유(暗喩)로 된 시조입니다
직설적 비유와(자유시에 많음) 직설적인 것은(정철의 훈민가) 시조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은유로 된 대표적 작품을 소개합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온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이 색 (1328-1396)

주제 : 봄을 기다림(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

뜻
ㆍ잦아진 골에 : 잦아진 골짜기에.
ㆍ머흘에라 : 험하구나.
ㆍ구름 : 간신의 무리들
ㆍ매화 : 우국지사
ㆍ석양 : 기울어 가는 왕조의 운명

해설
흰눈이 거의 다 녹아 없어진 골짜기에 험한 먹구름만 뭉게뭉게 끼었구나. 그런데 나를 반겨 줄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어 있는가? 해 저무는 석양녘에 혼자 외로이 서 있어 갈 곳을 몰라 하노라.

충신과 지사들(백화.매화)이 몰락하고 간신들(구름)이 들끓는, 나라가 기울어 가는 이 판국에 몸둘 곳을 몰라 하는 지은이의 심정을 이렇게 읊은 것이다. 고려의 500년 사직은 무너져 내리고, 이성계 일파의 신흥 세력은 이미 개국의 길을 달리고 있는데, 이 판국에 갈 곳 몰라 하는 지은이의 심정이야마로 '착잡함', 바로 그것일 것이다. 지은이의 감회가 참으로 절실하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감회가 샘솟는다. 이심전심이라고 해도 좋다.

촌평
“부딛쳐 갈아내고 강물로 다듬으며”는 은유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레라”는, 은유를 해체(풀이)해도, 이질적인 것은 없으나,
“부딛쳐 갈아내고 강물로 다듬으며”는 작자가 해체한다 해도 그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 하지 못한다'는 것은 독자가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수사법상비유
 비유(比喩)  표현하려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나타내는 표현, 방법을 통틀어 이르는 말.
 (직유법 ·은유법 ·풍유법 ·제유법 ·의인법 따위가 이에 딸림)
 제유(提喩)  사물의 한 부분으로 전체를, 또는 한 말로 그와 관련되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 
   (예) ‘빵’이 식량을, ‘감투’가 벼슬을 나타내는 따위.] (참고)대유법 ·환유법.
 직유(直喩)  원 관념과 보조 관념을,
 '같이' '처럼' '듯이' '양' 등의 매개 적인 결합 어를 사용하여 연결시키는 직접적 비유법. 
   (예)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은유(隱喩)
 암유(暗喩)
 매개 어가 사용되지 않고 'A는 B이다.'라는 형식으로 표현되는 비유법
 즉 원 관념이 보조 관념 속에 내포되는 것이다.
 의인(擬人)  사람이 아닌 사물 또는 관념에 사람의 속성을 부여하여 인격적 존재로 나타내는 비유법
   (예) 둥그런 하늘을 이고 응얼거리는 바다
 활유(活喩)  생물이 아닌 것에 생물의 속성을 부여하는 비유법
   (예)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靑山)
 풍유(諷喩)  원관념은 뒤에 숨고 보조 관념만 겉으로 나타나 있어,
 본뜻을 독자가 짐작하도록 하는 암시작 풍자적인 비유법
   (예) 우물가서 숭늉 찾는다
 대유(代喩)  개념의 한 부분이나 한 속성으로 전체를 대신해서 나타내는 비유법으로
 제유와 환유로 나뉜다.

   제유(提喩) :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의 일부로서 그 대상 전체를 표현하는 비유법
                      (예)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빼앗긴 들'은 '국권을 상실한 조국'의 제유이다.)
   환유(換喩) :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을 가리키기 위해,
                     그것의 속성을 지닌 사물을 끌어들이는 비유법
                      (예) 흰옷이 보고 싶어요('흰 옷'은 '우리 민족'의 환유이다.)

   
이름아이콘 정담
2007-10-28 12:05
저는 제 나름대로 아래와같은 마음으로 저를 비유하며 습작 해 보았는데..
아직 비유가 서툴어 그렇군요
여러모로 감사 합니다 검은 삿갓님

세월의 풍파  이겨내고 마음을 다스리며
나름대로 삶을 즐기며 살아 왔는데
어찌하다 시조에 눈을 돌려 시조에 빠져 사는가?
   
이름아이콘 정담
2007-10-28 12:15
지금 선생님의 댓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 마음을 저만알게 표현했지 읽는 독자가 받아들일수 없는 그런 글이었습니다.
생각을 더해보아야 되겠습니다 ㅎㅎ
하나하나 깨우침에 즐거움이 더합니다

검정삿갓 객관적일 필요는 없으나.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10/28 15:47
   
이름아이콘 검정삿갓
2007-10-28 12:44
누구도 감히 詩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자라 온 환경이나, 처한 처지가 틀리기에 詩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처럼 바보같은 짓거리는 없습니다.
영혼이 불러주지 않으면 받아 적을 수 없는 것이 바로 詩입니다.
시조도 이와 같습니다.

문명에게 도살당한 자연은 제 홀로 아니 가고 인간의 시심도 앗아가 버렸습니다.
詩가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詩입니다.
자연이 붕괴되므로서 詩도 죽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소쩍새를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소쩍새를 말한들 느끼지 못합니다.

소시적, 소나기는 자연이 제공한 장관(壯觀)이었습니다.
하늘을 검게 물들이고, 흙 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소나기는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 치맛자락 날리며 달려 온다"

자연이 그린 그 장엄한 광경을 시적으로 표현해도. 그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은 느끼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빗방울이 바닥에 튕기는 정도로밖에 이미지를 창출해 내지 못합니다.

"치맛자락 날리며 달려 온다"

단 한줄의 싯귀로 자연이 연출한 그 장엄한 광경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 그리고 끝입니다.

저를 비롯한 윗대는, 배짱이 소리도, 여치 소리도, 그리고 이름모를 갖가지 풀벌레 소리를 듣고 컷습니다.
물론, 민들레도, 채송화도, 해바라기도, 분꽃도, 나팔꽃도, 그리고 생각나지 않는 많은 꽃들도 봤습니다.
밤하늘에 빤짝이는 수많은 별도 보았고, 그리고 반디불도 보았습니다.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열었고,
꽃들과 함께 중천에 해를 올려 놓았으며,
풀벌레와 함께 달을 걸어 놓았습니다.

자연과 함께 생활한 사람만이 詩다운 詩를 쓸 수 있고,
타인의 詩에서 정확하게 이미지를 그려 낼 수 있습니다.

詩는 곧 자연입니다.
발에 걸리는 것이 시인이나 시인다운 시인이 없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독자마저도 자연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자연을 배제하고 심적인 것을 표출하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연이 존재하고 있었을 때, 詩는 짧았습니다,
허나, 지금의 詩는 어떻습니까?
그 당시 지금과 같은 산문시가 출현했다면, 詩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詩는 죽었습니다.
시인이라고 껍죽대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詩를 가르친다는 사람도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무엇 詩를 가르치고 배운단 말입니까?

시조도 이와 같습니다.
참다운 시조의 스승은 상처에 의한 철학과 사상입니다.
시조도 자연이 파괴되므로서 치명상을 입었지만 詩보다는 생존력이 상당합니다.
그것은 시조는 詩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조의 돌팔이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 누구에게도 배우려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연과 자신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습니다.

자연과 자신에게 배우십시오.
   
이름아이콘 정담
2007-10-28 20:02
검정삿갓님
배움과 깨우침은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것 이라 생각 합니다
검정 삿갓님 께서 하나하나 정리해주심에 깨우치는 바가 큽니다.
그것은 삿갓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 한다는 뜻이겠지요
풀벌레 소리에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 반면
정겨워 지긋이 눈을 감고 그 소리를 음미하는 사람이 있듯
자연에 동화 되는 사람과 자연을 거부하는 부류

요즘은 밤하늘의 은하수 전혀 볼수가 없지요
별똥별 떨어지는것을 본지가 언제인지
밤에 뒷동산에 누워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별 하며 별을 헤이던 그시절
하늘 전체에 빼곡히 들어찼던 그 수많던 별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새벽 하늘을 보면 군데 군데 듬성듬성 떠있는 별
요즈음은 그것이라도 볼수 있는날 그날도 드믑니다.

낚시를 하다보면 등이 휘인 물고기 지느러미가 짝짝이로 달린 변형된 물고기들이
심심치않게 물려 나옵니다.
그것이 보기싫어 요즘은 출조 자체를 안한답니다.

정말 시조다운 시조를 쓰고 싶습니다.
비록 어느것이 시조이며 어느것이 시인지도 구별할줄 모르는
돌팔이도 못되는 몸이지만 마음은 누구 못지않은 순수함과 열정, 욕망이 있습니다
목구멍에 풀칠 하기위해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기에 비록 시간이 없어
긴시간 글쓰기에 묻혀있지는 못하지만 글은 오랜시간 써야 잘써진다고는 생각 안합니다

일하는 순간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뭔가가 있을때 바로 메모 해두었다  
시간이 나면 정리 해보는 것이지요.
그 순간이 지나면 바로 잊어지더라구요.
젊었을때는 안그랬던것 같은데 ㅎㅎ
좋은밤 보내시길~~~

검정삿갓 스스로 깨우치시지 않으면, 아류가 되기 싶습니다.
사람마다 지문이 각각 다른 것처럼, 자신의 문체가 있어야 합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작자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하여,
자신에게 배워라 합니다.
10/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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