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는 짧은 것을 잡다하게 하였고, 하이쿠는 잡다한 것을 짧게 하였다.

시 조

시조의 역사
시조의 역사가 700~800년이라지만 정설이 없다. 시조라는 명칭도 조선후기 이세춘의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약칭이라 하나 분명한 것도 아니다. 엇시조. 사설시조도 장르적 위치와 형식에 정론이 없다.

고대의 시조
신라 향가에 접맥되어 싹틀 기미를 마련했고, 고려중엽 고려장가(長歌)가 분장(分章)되어 그 형식이 정제되었으며 고려 말 3장 12구체의 정형시로 되었으리라 믿어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을파소> <백제의 성충> <고려초기의 최충 등>의 것이 있고 고려말기 <우탁, 이조년, 방원의 하여가 정몽주의 단심가>등 10여 수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날로 계승 발전되어 송강, 정철. 윤선도. 박인로 등의 대가를 배출하였다. 조선중기에는 황진이를 배출하여 시조의 난숙 절정기를 이루었다. 양반들에 의해 지어진 종래의 단형(短型)시조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한 산문정신에 힘입어 양반의 생활권을 넘어 평민계급으로 파급되면서 그 형식은 평시조의 소재이던 자연에서 눈을 돌려 실생활에서 소재를 구해 장형(長型)으로 분파되었다.

조선중기를 넘어서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하였다. 영조, 정조 시대에는 구전되어 오던 시조의 일실(逸失)을 염려하여 편찬사업이 성행하였다. 1728년(영조4) 김천택의 <청구연언>을 효시로, 63년(영조39)에는 김수장의 <해동가요> 1876년(고종13)에 박효관과 안민영의 <가곡원류> 그 밖에 <고금가곡> <동가선>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객악보> 등의 시조집들이 쏟아져 나왔음은 시조의 보존을 위한 쾌사였다. 조선후기까지 시조는 2,0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것으로 거기에 담긴 사상과 정서는 한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으로 그대로 꿰뚫어 모은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현대시조
신구문학(新舊文學)의 분수령인 갑오개혁을 맞아 시조의 부흥을 꾀했으나 이병기가 전면에 등장함으로서 시조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1926년에는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립하여 국민문학론이 대두되면서 시조부흥운동이 전개되었고 최초의 현대시조집인 육당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그 해에 발간되었으며, 최남선, 이광수, 정인보, 안확 등의 작품은 아직도 예스런 면이 있기는 하나 현대시조의 산파역을 하였다.

그리고 갑오개혁 이후의 시조를 모조리 현대시조로 다루기보다는 이상 열거된 이들의 시조를 신시조(新時調)로 다루고 그 이후부터의 시조 곧 이병기, 이은상 이후의 작품을 현대시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현대시조에 본격적으로 이바지한 사람은 이병기, 이은상 등이며, 1931년에는 <노산시조집>이 1947년에 <가람시조> 1948년에 정인보의 <담원(薝園) 시조집> 등이 발간되었다.

시조의 멸실
시조가 언제부터 멸실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필자는 모른다. 감히 추측하건데 조선말기 시조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말기 이전부터 서서히 멸실된 것으로 생각한다. 허나 시조는 하루아침에 쉽게 깨질 그릇이 아니다는 관점은 필자의 추측을 부정한다. 조선중기를 넘어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파란만장의 조선 말기는 수많은 소재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시조는 생산되지 않았다.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융성한 시조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해방 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계급문학에 대항하여 최남선, 이광수가 중심이 되어 국민문학운동의 핵심운동으로 시조부흥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시조를 회생시키지 못하였다. 이병기가 시조의 본질을 외면하고 시조의 부흥이라는 미명아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작법을 파괴하면서까지 대중화를 시도하였으나 결국 시조를 멸실의 길로 인도하는 꼴이 되었다. 그 여파는 상당하였다. 현대시조가 시조를 부정하고 거부하게 하는 빌미가 되어 결국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시조의 숨통을 아예 끊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하였다.

가람 이병기가 시조는 혁신하자며(동아일보 1932년 1월 23일부터 2월 4일까지 11회에 걸쳐 연재) 고어를 축출한 후 옛 말이란 이유로 고어와 문어를 금지시켰으며 자연을 읊은 것도 음풍농월이라 하여 금지하였다. 조운은 이에 뒤질세라 시조의 육체인 구와 장을 파괴하여 외형도 자유시에 편입시켰다. 이병기가 시조의 본질을 부정내지 말살하고 자유시 작법을 차용한 결과 시조라 할 수 없는 가고파(이은상)가 시조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그로 인해 오늘 날 시조라는 문전옥답에는 독초와 잡초가 만발하게 되었다.

한반도가 3.8으로 두 동강나듯, 시조에도 3.8선을 그어 고시조와 현대시조로 두 동강 내버린 현대시조의 만행으로 인해 음보 율도 파괴되고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종장마저 현대시조의 군화에 무참하게 짓밟혔으니 급기야 자유시보다 못한 해괴한 몰골로 멸실의 고개를 넘어가고 말았다.

고시조를 경계하고 시조이기를 거부하는 현대시조는 도저히 시조라할 수 없는 해괴한 것들을 시조의 족보에 적자로 올렸으니 고시조는 서자가 되었다. 신춘문예를 장악한 패거리가 신춘문예를 시조를 학살하는 도살장으로 만들었고 부관참시를 하니 회생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겠다.

시조를 혁신하자 / 이병기(李秉岐)
1932년 1월 23일부터 2월 4일까지 11회에 걸쳐 연재.
1925년경부터 10년간은 프로파와 민족파가 우리 문단을 할거하였다. 이 시기에 민족 파가 시조의 부흥을 꾀하였으나 그 작품과 이론의 수준이 프로파의 주장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였고, 그 결과 시조의 존립의의에 대한 찬부양론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집필된 것이 이 논문이다. 시조는 정형이며 고전적이면서도 오히려 시조의 존립의의는 그 정형과 고전적임에 있다고 설파하면서 명료하고 알기 쉬운 대중문학, 진실하고 신선한 사실문학(寫實文學)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시조가 혁신되어야 할 점으로, ①실감실정(實感實情)을 표현하자 ②취재(取材)의 범위를 확장하자 ③용어의 수삼(數三 : 선택) ④격조(格調)의 변화 ⑤연작하자 ⑥쓰는 법, 읽는 법 등 여섯 가지를 들었다. 종래의 투어(套語)나 인습적인 작법에서 벗어나자는 것. 취재의 범위를 넓혀 자기류의 작풍을 수립하자는 것. 부르는 시조보다도 짓는 시조, 읽는 시조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중심골자였다. 특히 격조에 대하여 "격조는 그 말과 소리와 합치한 그것에 있다"고 함으로써 양자의 결합관계로 고찰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발전적인 사고였다.

시조를 혁신하자(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짓는 시조 읽는 시조를 강조한 나머지 부르는 시조와의 화해를 전연 고려하지 않은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시조의 과거가 창의 흐름이었다는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연작의 문제인데 과거의 것은 각수(各首)가 독립된 상태였던 것을 제목의 기능을 살리고 현대시작법을 도입하여 여러 수가 서로 의존하면서 전개 통일되도록 짓자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창작으로 실천하여 완성한 이가 이병기 자신이었고 오늘날 형태의 발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엄격히 보면 시조의 전통적 연작 법으로는 어긋나는 것이다.

□ <고대의 시조>는 네이버서 원문을 게시하였고 <현대시조>는 각색하였다. <시조의 역사>는 습득한 정보에 의한 것이고 <시조의 멸실><현황><시조의 미래>는 시조의 현주소를 근거로 하여 피력하였다.

하이쿠

하이쿠 기원과 역사
하이쿠는 메이지시대에 마사오카시키(正岡子規)에 의해 시작되었다. 하이쿠(俳句)라는 통칭이 사용되게 되었던 것은 메이지 이후다. 마사오카시키가 하이쿠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하이쿠와 같은 것은 존재하고 있었다. 에도시대는 그것을 하이카이(俳諧)라 한다. 이것은 하이카이의 연가(俳諧はいかいの連歌)의 약칭이며 원래 렌카(連歌)가 토대인 문예다.

렌가는 무엇인가? 한시에 대한 “산과 노래“를 와카(和歌)라 한다. 만뇨슈(万葉集) 무렵에 5, 7. 5, 7을 반복해 노래하고 마지막에 7음을 더하여 끝나는 형식의 와카(和歌)가 태어났다. 이것을 장가(長歌)라 한다. 장가의 마지막 구 5. 7. 5. 7. 7의 형식을 단가(短歌)라 한다.

장가는 그 후 사그라지고 단가가 융성하여 와카(和歌)라고 하면 단가를 능가할 정도였다. 단가 첫 구(5. 7. 5)와 다음 구로(7. 7)로 나누어 여러 사람이 교대로 노래하는 것이 렌카(連歌)다. 본래 렌가는 귀족의 놀이로서 발전했다. 그것이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무렵부터 서민 사이에 유행하여 우스운 특색을 가지는 하이카이 렌카(俳句はいかいの 連歌)가 되었다.

에도시대가 되면 한층 더 융성하여 하이카이는 문예로 확립되었다. <이하라 니시츠루> <마쓰오바쇼> <요사부손> <고바야시잇사>도 하이카이 작자다. 하이카이는 여러 사람이 하는 문예다. 최초의 사람이 5. 7. 5의 구를 읊으면 다른 사람이 거기에 7. 7의 구를 붙인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5. 7. 5의 구를 읊고, 다른 사람이 7. 7의 구를 붙이는 것을 반복한다. 단순히 구를 서로 붙이면 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연구식목(連句式目)이라고 하는 까다로운 룰이 있다. 이 룰에 따라서 에도 사람들은 게임과 같이 하이카이를 즐겼다.

백구가 될 때까지 계속하기도 했다. 이 때 최초의 구를 “첫 귀“라 하고 계절어(季語きご)와 기레지(切れ字 : 끊는 것)가 있고 렌가, 하이카이의 첫 구에서 구를 매듭을 짓는 말로서「∼や(∼이여)」「∼かな(∼로다)」「∼けり(∼구나)」등을 넣은 구를 읊도록 되었다. 이 첫 귀가 독립하여 하이쿠가 되었다.

하이카이도 메이지 무렵 점점 매너리즘이 되어 시시하게 되었다. ‘마사오카 시키’가 잡다한 하이카이는 문학이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시답잖은 수준이고 비속하고 진부하다 하였다. 첫 귀만 감상하자 제안하였다. 이것이 <하이쿠 개혁>이다. 즉 하이쿠는 하이카이 렌카(俳諧 の連歌)의 최초의 구다. 그리고 단가의(5. 7. 5. 7. 7) 상구(上句)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가 하이쿠 형식이나 룰의 바탕이 되었다.

□ 출처 : 俳句は、いつから俳句となったのか

시조와 하이쿠의 특성.

시조의 특성.
ㆍ틀은 3장 6구 12음보다.
ㆍ사상과 철학의 분출구다.
ㆍ일목요연한 하나의 문장이고 메시지다.
ㆍ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ㆍ비유로 시작하여 비유로 끝난다.
ㆍ당사자나 이해관계자가 아니면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시조가 상급이다.
ㆍ반듯이 기승전결이 이루어 져야 한다.
ㆍ촌철살인의 표본이다.
ㆍ시조는 시가 아니다.
ㆍ시조는 역사와 사회상의 기록이다.
ㆍ부각된 사건의 결말은 반듯이 작자가 맺는다(보편타당성이 있다)

하이쿠의 특성.
ㆍ5 · 7 · 5의 운률(韻律)로 읊어지는 정형시다.
ㆍ가급적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ㆍ반듯이 계절어(季語)가 들어가야 한다.
ㆍ한 곳은 반드시 기레(切れ)가 있다.
ㆍ여운을 남긴다.

잘라라(切れ)
하이카이는 최초로 읊어진 첫 귀는 후에 잇는다. 첫 귀는 둘째 구(句)나 평구(平句)의 동기가 될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첫 귀는 둘째 구에 의존하지 않는 완결성이 요구되는 테크닉이「잘라라」다. 능숙하게 끊어진 첫 귀는「잘랐지만 있다(切れがある)」라고 평가되어 중시되었다. 현대하이쿠도 끊는 것은 중시하기에 끊지않으면 하이쿠로 평가되지 않는다.

기레지(切れ字)
강제적으로 구(句)를 자르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기레지(切れ字)다. 현대하이쿠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기레지(切れ字)에는,「~일까 (~かな」「~여 (~や」「~구나 (~けり)」등이 있다. 하이쿠 이전의 렌카(連歌) 하이카이 시대에는「~もが~싶구나 ~좋으련만 ~し(접속사 : 앞에 말하는 사항이 뒤에 말하는 사항과 병렬적, 대비적인 관계임을 나타냄)」「~ぞ ~한데, ~하랴, ~ぞ (혼잣말로) 스스로에게 다짐하거나 판단함을 나타냄」「~か ~지 (불확실한 짐작을 나타냄) 」「~よ ~이여. ~여. ~야. ~아. (부름을 나타냄)」등, 앞의3개와 합해 합계18 종류의 조사, 조동사가 사용되고 있었다.

하이쿠를 읊을 때 따라야 할 6조
1. 시심을 파악한다(詩因を捉える)
2. 분량을 분별한다.
3. 생략을 교묘하게 한다.
4. 배합을 궁리한다.
5. 이해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고(わかる用語を使って)
6. 세세한 곳까지 주의 깊고 꼼꼼하게 읊는다.

하이쿠를 읊을 때 피해야 할 8조
1. 계절 어가(無季) 없는 구를 읊지 않는다.
2. 계절어가 겹치는(重季) 구를 읊지 않는다.
3. 공상의 구를 읊지 않는다.
4. (이)나 · 일까를 병용한 구를 읊지 않는다.(や・かなを併用した句を詠まない)
5. 감정 등을 나타내는 연체 수식어를 위에 붙이고 부사적으로 병용한 구를 읊지 않는다.
6. 감동을 노출 한 구를 읊지 않는다.
7. 감동을 과장 한 구를 읊지 않는다.
8. 모방의 구를 읊지 않는다.

시조와 하이쿠 비교

하이쿠가 점이고 일차원의 세계라면, 시조는 선이고 3차원의 세계다. 하이쿠는 여백의 미를 강조하지만 시조에는 여백이란 있을 수 없다. 하이쿠는 점과 점 사이의 여백으로 인해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나 시조는 일목요연한 하나의 문장이기에 흐름은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하이쿠는 여백의 공간을 개개인의 천차만별한 감성과 사고 그리고 처한 처지 등에 의해 독자들이 채우지만 여백이 없는 시조는 독자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하여 하이쿠는 독자의 감상이 일률적이지 못하지만 시조는 독자의 감상이 일률적이다. 촌철살인에 있어 하이쿠는 기승전결로 구성된 시조보다 선명하지 못한다. 시조는 사상과 철학의 분출구이기에 하이쿠에 비해 작자의 철학과 사상이 분명하고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하이쿠 철칙도 까다롭지만 시조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시조는 17자인 하이쿠보다 훨씬 많은 43자다. 게다가 3장 6구 12음보로 나누어지며 기승전결을 요구한다. 기승전결을 충족시키려면 음보와 음보, 구와 구, 장과 장이 상호 보완하여 유기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시조는 내외적인 것과 자연스러운 흐름이 모두 충족되어야 비로소 시조가 되는 것이다.

하이쿠는 누구나 지을 수 있으나 시조는 43자라는 종지에 대해(大海)를 담아야 하기에 아무나 지을 수 없다는 특성이 있다. 이렇듯 시조와 하이쿠는 상당히 상이한 점이 많으나 같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시조도 하이쿠도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 황

시조
시조의 역사가 700~800년이라지만 아직 정체성도 확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작법조차 정립되지 았았다. 시조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출범한 현대시조와 소위 지도자라는 위인들이 시조의 틀을 하나하나 변형, 파괴, 말살하였으니 오늘날 시조는 형체도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시조를 거부하는 무리가 신춘문예를 장악하니 신춘문예는 시조의 도살장이 되었다. 그들 덕분에 세계적으로 독특한 문예를 보유하고 있는 시조이건만 호평받기는커녕 교과서도 외면하고 문화관광부서 선정한 <100대민족문화상징>에도 시조는 없었다.

도서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2005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한국은 주빈 국으로 선정되어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한국의 책 100권에 고우영의 만화 ‘일지매’는 있는데 시조 관련 책은 단 한 권도 없었고 한국문학을 소개할 62명의 문인에 시조시인은 단 한 명도 끼지 못했다. <출처 : 국제도서전에 시조는 왜 빼나 / 박구하>

시조협회가 있다하나 회관은 고사하고라도 그 흔한 사무실도 홈페이지도 없다. 1,000여명이 되는 현대시조시인은 접어두고라도 소위 지도자라는 위인도 시조다운 시조를 생산하지 못한다. “시조집은 공짜로 줘도 읽지 않는다”는 말이 소위 현대시조시인이란 이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오는 처지라 독자를 찾으려면 우주선을 동원해야 한다.

시조라면 평시조다. 그러나 시조 그릇에 담지 못하는 작자들이 정체성을 부정하고 작법을 파괴하더니 급기야 옴니버스시조라는 해괴한 것을 탄생시켰다. 시조라는 산모 뱃속에는 깜둥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시조가 패거리문화에서 태어난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하이쿠
마사오카시키(正岡子規· 1867~ 1902)가 하이카이의 문학적 가치를 비판하였다. 하이카이는 한낱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며 첫 구만 감상하자고 제안한 이래 오늘날 음절수 하나 파괴하지 않고 국민의 시로 다져놓더니 급기야 세계의 시로 승화시켜 놓았다.

하이쿠는 일본에서 태어난 독특한 문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다. 하이쿠는 5, 7, 5의 운율을 지닌 한 줄짜리 시로(간혹 삼행으로 나눠 쓰기도 한다) 오랜 전통이 있고 오늘날까지 창작되고 회자되는 대중 시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하이쿠를 즐긴다. 또한 하이쿠를 통해 옛말을 발굴하여 일본어를 갈고 닦는다. 사실 하이쿠는 다작에서 수작이 생겨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유명한 하이쿠 작가들 작품도 수 만점 중에서 가려낸 수작들이다.

일본에는 현재 800에서 1000개에 가까운 하이쿠결사(結社)가 있다. 결사란 공동의 문학적 취지하에 하이쿠잡지를 내는 것을 목적으로 주재자(主宰者)를 중심으로 모이는 하이쿠 집단을 가리킨다. 최근 들어서는 문화센터와 유사한 하이쿠교실이 성행하고 있는데, 이 교실들은 하이쿠를 즐기는 사교모임으로도 한몫하고 있다. 다른 취미활동보다 하이쿠는 서민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는 면에서 더욱 흡수력이 있는 것이다. 일본 NHK위성방송은 하이쿠왕국(俳句王國)이라는 정규프로그램이 있어 하이쿠가 일본서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케 한다. 근 한 세기가 지난 오늘 날에는 가장 세계화된 일본의 정신유산으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았다.

몇 사람의 하이쿠시인이 모여 음행(하이쿠를 읊기 위해 경치가 좋은 곳이나 명승고적을 찾아 걸어 다니는 것)을 한 뒤 작품을 익명으로 제출한다. 작품을 익명으로 벽에 붙여 놓으면 각자가 마음에 드는 작품에 빨간 점을 붙이며 왜 좋은지 이유를 설명한다. 한 차례 평이 끝나면 드디어 작가를 공개하는데 가장 많은 점을 얻은 사람이 그날의 승자가 된다. 각자의 견해가 다양하겠지만 ‘벌레‘라고만 해도 가을밤을 연상할 수 있는 미적 공감대가 필수적이며 그러한 공동 미의식을 매개로 한 일종의 놀이인 것이다.

뿌리가 일본 나라(奈良 710~784)시대 와카(和歌)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하이쿠는 오랜 세월을 건너 지금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애호가가 1,000만명에 이르고, 전문월간지만 8개, 동인지는 800여개가 나온다니 말 그대로 하이쿠의 시대다. 일본 밖에는 릴케에서 옥타비오 파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 미국은 초등학교교과서에 실었고 독일은 고등학교 부교재로 채택하였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여러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대중적으로는 뉴욕타임스가 최근 뉴요커들을 대상으로 하이쿠를 공모하고 영국은 트위터로 공모할 정도로 세계적 유행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세계의 시 하이쿠
하이쿠 세계화는 100년의 역사가 있다. 라후카디오 하안(고이즈미 야쿠모)이 구미 인으로는 처음으로 하이쿠의 매력을 발견한 것은 19세기 종반이었다. 유럽 등 서구에는 이미 1910년대 에즈라 파운드를 중심으로 한 이미지즘이 일어났을 때 소개되었다. 20세기 초에는 프랑스의 폴 루이 크슈가 자작을 정리한 하이쿠를 출판하여 하이쿠 붐을 야기하였다.

1970년대는 세계로부터 각광을 받아 국제화 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지금은 아프리카 대륙에도 진출하는 등 50여 나라에서 1,000만 명이 모국어나 영어로 하이쿠를 읊으며 즐기고 있다.

오늘날 하이쿠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도 적지 않다.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나 게리 수나이더(Snder Gary Sherman) 같은 대표적인 현대 시인이 그렇고 노벨문학상수상자 체슬라브 미워쉬(Czeslaw Milosz)는 하이쿠 애독자다. 또 직접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해도 하이쿠적인 시인 역시 많다.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가 대표적이다.

하이쿠가 영어로 번역되면서 영시(英詩)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고 영문학을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유럽에는 아예 하이쿠시인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고 영문 하이쿠시집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 일본을 방문하는 서양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은 연설에 하이쿠를 자주 인용하는 등 오늘날 하이쿠는 세계의 시가 되었다.

하이쿠가 오늘날 세계의 시가 된 것은 마츠오바쇼(松尾芭蕉 1644~1694) 고바야시잇사(小林一茶 1763 ~1827) 요사부손(与謝蕪村 1716~1783) 세 명의 위대한 하이쿠시인도 있었고 수백 년 동안 정체성도 작법을 파괴하지 않고 면면히 이어 왔기 때문이다.

지평은 넓히고자 고유작법을 파괴하면서까지 정형이나 계절 어에 억매이지 않고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하자는 가와히가시헤키고토(河東碧梧桐)의 제안이 받아 들여졌다면 세계의 시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 참고문헌
ㆍ国際俳句交流協会
ㆍ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 류시화
ㆍ동아일보 매거진(신동아) / 2000년 6월호
ㆍ일본 문화의 힘-세계는 왜 J-컬처에 열광하는가 / 동아시아 펴냄
ㆍ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 감상법 / 유옥희 계명대학교 일문학교수
ㆍ17字에 응축된 일본 정서(문화일보)
ㆍ순간 속에 영원을 담는다 / 전이정

시조의 미래

시조사이트는 여러 있으나 시조를 위한 곳은 없다. 신춘문예를 비롯하여 시조문학상은 참으로 많다. 허나 각 파들은 다른 파의 시조문학상은 게재하지 않는다. 신춘문예시조당선작을 비롯하여 각종 시조문학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아 시조문학상에 선정된 것을 보려면 검색엔진을 가동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검색 엔진을 가동해도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시조사이트마다 시조에 관한 자료는 상당히 미약하다. 현대시조계를 질타하면 벌떼 같이 달려들던 무리들이 자료를 요청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좋은 글이라 해서 퍼 나른 것과 안부 인사 등등 각종 잡동사니가 시조나 관련 자료보다 많다. 그들은 시조를 다만 친목을 위한 들러리로 취급하였기에 세계의 시가 된 하이쿠는 달리 시조는 독자는커녕 교과서도 박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