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내적 요건
자유시가 수면(水面)이라면 시조는 수중(水中)이다. 수면의 물결은 누구나 느낄 수 있으며 표현할 수 있으나, 수중의 물결은 알 수 없고 표현은 더구나 어렵다. 수중의 물결을 수면으로 끄집어내어야 하는 것이 바로 시조다. 고시조를 부정하는 시조시인은 수중의 물결을 수면으로 끄집어내지 못한다. 시조의 지킴이라 자부하는 이들도 자수율은 지켰지만 내용이 시적인 것이 많아 자유시와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시조의 정체성 논란이 가중되고 시조의 근간이 하나둘 비명횡사하니, 급기야 시조는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시조가 자유시를 쫓아가는 것이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뜻 있는 사람은 시조의 외형적 요건뿐만 아니라 내적 요건도 엄격하게 따지려 든다.
갈대밭에 서다 홀로 서기
목놓아 숨 가쁜 장대비에
하늘 향해 풀들은 누워있다.
간절히 흔드는 손
만삭의 강물은
마음의 징검다리 여전히 말이 없고
부딪치고 흔들려도
마지막 슬픔마저도
노을 빛 그리움이야 빗물 따라 흐르는데,
지울 수 있을까
바람아 묻지 마라
갈바람 어디로 가는지를.
여린 마음
새겨 놓은 갈피마다 뜨겁던 지난추억
풀잎마다 새겨놓고
흰 날개 높이 세워
강물 따라 날아 갈 때 젖은 길 홀로 떠나는
가난한 영혼이여!
야위는 붉은 그림자
여울목에 젖는다
"갈대밭에 서다" "홀로 서기"는 시조의 외적요건인 자수율을 지켰다해도 제목서 풍기는 뉘앙스도 그렇거니와 자유시처럼 행갈이 하였고 내용도 자유시라 자유시단서 시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연과 연이 연결되어 있어 도저히 시조라 할 수 없다. 능력 있는 자유시인도 시조에 입문하면 자유시적인 것을 청산하지 못한다. "갈대밭에 서다" "홀로 서기"는 자유시 잣대로는 분명 수작이나 시조는 아니다.
시조는 수중의 물결이고 자유시는 수면의 물결이다. "갈대밭에 서다" "홀로 서기"는 수면의 물결이기에 시조가 아니라 자유시다.
이순(耳順) 초안거(草安居)
보는 것 듣기 싫어 문 걸고 살았더니 산 넘어 산이로소 학봉(鶴峰)이 어디라오
예 온길 십여 년에 귀까지 멀었구나 산승(山僧)은 절로 가고 연보(蓮步)는 속세러니
저자 골 개 짖는 소리 들었느냐 아이야 이 몸은 노루 같아서 뿔 기르며 사나니
"이순(耳順)" "초안거(草安居)" 는 자유시 냄새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찬찬히 뜯어보면 시조의 참 맛인 뒤 울림이 크다.
수중에 물결이 수면을 박차고 나와 용트림하는 것이 바로 시조다.
|
현대시조포럼 탄생 배경 
이것도 시조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