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조는 혁신하자 / 이병기 - ◀ 원문보기 클릭 ▶
1
벌써 6년 전에 신민(新民)잡지에서「시조는 부흥할 것인가」하는 문제로 하여 여론을 일으킨 일도 있었거니와, 요번 동아일보에서도「시조는 어떻게 전개시킬까」하는 논제(論題)를 또 일으키었다. 시조도 이 근래에는 이렇게 문제도 되는 만큼 그 운동이 점점 전개되고 있다. 그까진 시조 따위야 무엇이 그리 끔직한 것이라고 잡지ㆍ신문에서까지 문제를 삼아 여론을 일으킬까 하고 냉소(冷笑)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나, 시조운동도 조선문학운동의 하나로서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시조도 한 문학이다. 소설ㆍ희곡(戱曲)ㆍ동요ㆍ민요ㆍ신시(新詩)와 같은 한 문학이다. 더구나 우리 조선에서는 역사와 그 의의가 깊은 한 문학이다. 고대 민요의 한 형식으로서 발달되어, 적어도 근 천년(近千年) 동안을 거쳐 오늘날까지 오는 것이며, 우리의 과거의 문학을, 말하자면 과연 이 시조가 가장 소중한 것이다. 다른 가요(歌謠)보다도 또는 소설이나 기타 무엇보다도.......그러나 시조는 다만 이러한 의미만이 아니라, 기정(旣定 이미 결정되어 있음)한 소설형으로는 가장 합리하게 되어 있다. 엇시조(旕時調)ㆍ사설시조(辭說時調)는 그만두고, 보통 쓰이는 평시조(平時調) 하나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정형이라기보다도, 한 정형(整形)으로서 대개 그 자수(字數)를 몇 자(字) 이하, 몇 자(字) 이상에서 암만이라도 취사(取捨 : 쓸 것은 쓰고 버릴 것은 버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형식을 7,7,7,7의 4구(四句)로 된 한시절구(漢詩絶句)나, 5,7,5,7,7의 오구(五句)로 된 일본단가(日本短歌)와 같이 꼭 일정한 자수(字數)만으로 하여 된 건 지금 전하는 천 여수(千餘首) 되는 고시조(古時調) 가운데에, 3백여(三百餘) 가지나 되겠다. 어떤 이는 이것이 너무 복잡하다 하고, 다시 표준형식이 있어야 하겠다 하는 이도 있지마는, 그 표준형식이란 무엇으로 정할지 알 수 없다. 가령 78, 78, 87로 하여 초장이나 중장의 첫구(句)는 7자, 끝구(句)는 8자로 하고, 종장의 첫구(句)는 3자, 둘째구(句)는 5자, 셋째구(句)는 4자, 끝구(句)는 3자로 하자는 이가 있으나, 이 형식이 무슨 의미로서 표준형식이 될는지는 알 수 없다. 위에 말한 3백여 가지나 된다는 고시조의 형식을 본다면, 이 형식보다 달리 된 형식으로서 더 많이 쓰인 것이 있다.그러면 재래(在來)의 시조형식으로는 이 형식이 한 소수(小數)에 지나지 못한다. 이런 통계로 보아서는 표준형식이 될 수 없다. 다만 어느 작가의 독단(獨斷)과 자수기억(字數記憶)의 편의(便宜)나 하여 한 부호(符號)처럼 정한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고, 그 자수(字數)로 말미암아 생기는 음조(音調 <문학>시문(詩文)에서, 소리의 높낮이나 강약, 장단 따위의 어울림)나 운률(韻律)로 본대도 이 형식이 꼭 표준된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그러나, 이 근래 어떤 이들은 이 형식만을 시조의 형식으로 아는 이도 있고 쓰는 이도 있어, 천편일률(千篇一律)로 하여 이 형식의 자수(字數)만 채워 지어 낸다. 그리하여 퍽 자유스럽게 되어 있던 시조의 형식을 도리어 부자유하게시리 하지나 않는가 하는 느낌이 난다. 이 자유스러운 것이야말로 과연 다른 나라의 기정(旣定)한 소설형(小說形)들과도 다른 점이고 또한 특성인 것이다. 이 특성이 현재나 장래에 있어서 영원히 그 생명을 뻗어갈 만한 것이다.왜 시조를 배척(排斥)할까?그 배척하는 것을 보면, 첫째는 시조의 형식, 둘째는 시조의 내용에 대하여서다.첫째,시조의 형식은 정형인 것과 고전적(古典的)인 것이다. 하나 고전도 고전 나름이요 정형도 정형 나름이지 반듯이 정형이라고 하여 고전을 덮어놓고 다 버려야 할 것은 아니다. 시조는 정형이며 고전적이면서도 꼭 있어야 할 까닭은, 도리어 그 정형과 그 고전적에 있다. 한문이나 영어와 같은 외국의 문학을 맛보는 우리로서, 그래도 조선어문학의 맛을 보자면 무엇이 있나.한시(漢詩)나 영시(英詩)처럼 발달은 못되었다 하드라도, 적어도 조선말로써 조선말답게 적은 것이며 조선말로서의 목숨과 넋이 있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조선말에 쓰인 전형(典型)과 궤범(軌範 어떤 일을 판단하거나 행동하는 데에 본보기가 되는 규범이나 법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것을 보고 일일이 그대로 모방을 하거나 인용을 하거나 할 건 아니라도 거기에서 무슨 전통이나 암시(暗示)를 얻을 것 아닌가. 이것이 과연 우리들과는 남다른 깊은 관계가 있는 바이다.마치 일본인이 화가(和歌)와 같은 문학을 저버릴 수 없음과, 지나인(支那人 중국 인)이 한시(漢詩)와 같은 문학을 저버릴 수 없음과 같은 일이다. 일본에서 자유시운동, 지나(支那)에서 백화시(白話詩)운동이 맹렬하여도, 또 그 한편에는 한시(漢詩)나 화가(和歌)같은 정형시가 또한 못지않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 중 일본같은 데서는 가인(歌人) 자신으로도 한때 화가멸망론(和歌滅亡論)을 지어 떠들고, 오히려 가단(歌壇) 한편에서 맹장(猛將)노릇을 하는 뻔뻔한 이도 있으며, 지금 와서는 프롤레타리아단가운동(短歌運動)까지 생겼다. 지금 우리의 시조도 이렇다 저렇다 운운함은 그 전개의 과장에 있어 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2
한데, 시조는 그 뿐만 아니라, 누누이 말함과 같이 한시(漢詩)나 화가(和歌)보다도 더욱 자연스러운 소설형으로서 곧 3백여 가지로 나누어 쓸 수 있는 이 형식을 무엇이 그리 불편하다고 할까. 동요나 민요와도 형이나 아우 사이이며, 자유시(新詩)와도 그다지 먼 사이는 아니다. 자유시라고 문자나 나열하여 놓으면 곧 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내용과 합(合)할 만한 그 형식도 있어야 한다. 얼른 생각하면, 초보자로는 자유시가 쉬운 듯하나, 알고 보면 시조가 도리어 쉬운 것이다. 시조는 곧 전통적ㆍ계승적인 그 암시가 있으므로, 그것을 깨치어 가지고 나가면 될 듯하다. 마치 자유방분(自由放奔)한 표현으로서의 소설작가가 되기보다는 비교적 법칙(法則)있는 표현으로서의 희곡작가가 되기가 쉬운 것 같다. 물론, 그 극치(極致)에 들어가서는 다 같이 어렵겠지마는, 어느 과정까지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조의 형식을 난삽(難澁)하고 간원(迀遠)하던 귀족문학이라 할 것이 아니라. 명료하고 평이한 대중문학으로 쓸 수 있으며, 진부하고 과장(誇長)하던 고전문학이라 할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신선한 사실(寫實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 냄)문학으로도 쓸 수 있다. - 어느 것으로든지 다만 그 쓰기에 있을 뿐이다.둘째, 시조의 내용은 현대의 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말은 쉽지만 이상(理想)과 같이 하기는 어렵다. 아닌게아니라 시조작가들 가운데에도 그렇게 시작(詩作)하는 이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흔히 배척을 받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근래 시조운동이 점점 전개됨에 따라, 그 한편으로는 이러 저러한 작품이 함부로 나오므로 말미암은 것이다.아직도 시조하면 요리집에나 기생방에서 장고나 두드리며『남훈전(南薰殿) 달밝은 밤에...』하고 늘어지게 부르던 그것으로나 알고, 시조를 한 유희(遊戱)나 오락으로 하여 지어내는 것이 있으며, 마치 옛날 사람들이 하듯이 이를 한 음풍농월(吟風弄月)로나, 풍류운사(風流韻事 바람이 불어 구름을 흩어 버린다는 뜻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알고, 한시(漢詩)에서나 어느 고전에서 얻어들은 재료나 가지고 아무 실감도 없이 흥흥거리며 읊어내는 것도 있으며, 시조는 詩든 아니든 무엇이든지 다 담아내는 한 그릇으로 알고 되는대로 써내는 것도 있으며, 어떤 이는 시조를 고적도보(古蹟圖譜)와 같은 것으로 여기고 한 점(點) 한 획(畫)이라도 빼놓을까 염려하며 정성스럽게 고시조 그것만을 모방하여 그려내는 것도 있으며, 어떤 이는 시조나 좀 읽어보고는 다만 자기의 독단(獨斷)으로써 남보다 더 한층 초월(超越)하여 이상야릇하게 지어내는 것도 있으며, 겨우 시조자수나 말붙일 줄이나 짐작하고는 다시는 더할 나위없는 작가로 자처하고 자기도취로써 지어내는 것, 또는 시인이 타락(墮落)이나 하면 시조를 짓는 것 같은 따위가 너무나 많다.통틀어 말하면, 이러한 작품들은 한 습작으로서 자기의 수첩에나 서랍 속에 넣어두고 볼 것인데, 이는 자기의 표현하고자 하는 참을 수 없는 마음과, 또는 잡지사나 신문사의 호의로 하여 종종 발표되는 것이다. 허나 이러한 현상은 다만 시조에서만 보일 뿐이 아니라, 다른 시가(詩歌)나 문예작품에서도 보이는 것이다. 그저 이것을 배척하거나 미워하거나 비방하고 조롱함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이러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이 운동에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그러나 그건 별문제(別問題)로 두고, 시조작가로서는 당연히 반성해야 할 것은 작가로서의 상당한 단련을 해나가야 함이다. 암만 단련을 한대도 천분(天分 타고난 재질이나 직분)과 소질이 없으면 아니 되겠지마는, 또는 암만 천분(天分)과 소질은 있대도 아니하고는 아니될 것이다. 천재도 단련(鍛鍊)에서 생긴다. 그 단련은 범인(凡人)과 같이 오랫동안을 허비하지 않고 그 보다 퍽 짧은 동안에 될지는 모르나, 그만큼 노력은 해야 될 것이다. 다윈 같은 천재로도「부단의 노력」을 말하고, 이백(李白) 같은 시인으로도「광산(匡山)의 마철(磨鐵 쇠방망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듬,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비유함」을 전하거든, 더구나 그들과 같은 천분(天分)도 소질도 못타고 나고, 또는 그들과 같은 단련도 없으며, 그저 그들과 같은 천재나 시인이 되기를 바라면 될 것인가? 오늘날 시조로 하여 배척이나 천대를 받게 함도 도시 그 작가들의 단련이 부족한 탓이다. 다시 말하면 작품다운 작품을 많이 내놓지 못한 까닭이다. 혹은 작품다운 작품이라도 그것을 능히 감상할 만한 눈이 없어 그럴 리도 없지 않겠지마는, 과연 내노라 하고 버젓하게 내놓을 만한 작품이 많지 못함도 사실이 아닌 건 아니다.일본의 北原白秋는 화가(和歌)를 짓기 시작한지 30년이나 되어도, 눈앞에 조그마한 사생(寫生 실물이나 경치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일) 하나도 완전히 못하겠다 하며, 몇 해 전 간행한 자기의 가집(歌集)에서 백수(白首) 가운데 겨우 한두 수(首)쯤이나 뽑아 다시 추고(推稿 (퇴고(推敲)의 잘못)해서 쓸 것이 있다 한다. 일본어를 자유롭게 풍부하게 쓰는 것으로는 고금(古今)에 제일이라는 평을 받은 그 시인으로도, 겨우 31자 되는 단가(短歌)에는 그렇게 고심한다는 일을 생각하면, 여간 시조나 몇몇 수 지어보고 저버리는 그런 이로는 그 무엇을 한다 하리요. 만일 노력도 단련도 하기 싫어하는 그런 이고 보면, 일찍부터 이 시조의 작(作)도 그만두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출처 : 가람문선/이병기(312~316P)ㆍ신구문화사 1966년.
참고『가람문선(이병기)』과『시조연구논총(이태극)』에서《時調는 革新하자》를 대조하니ㆍ단어(명칭 등)ㆍ수치ㆍ조사 등이 일치 하지 않았고 단락(段落)도 틀렸다. '동아일보'는 1932년. ‘시조연구논총‘은 1965년. ’가람문선‘은 1966년에 발표되었다. 최종의 것『가람문선』에서 발췌하였다.『시조연구논총』이『가람문선』에 비해 시조에 관한 글이 많다.한자들이 붙잡고 늘어지고『가람문선』과『시조연구논총』을 대조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투자되었다. 상기 게시물은〈時調는 革新하자〉의 1/5도 되지 않는다. 현대시조시인이라면, 그들에 의해 현대시조의 모태라고 일컬어지고 내세워지는, 李秉岐의《時調는 革新하자》정도는 최소한 읽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 바로 현대시조시인이란 이들의 몫이다.
| ㆍ작성자 |
검정삿갓
|
| ㆍ작성일 |
2007/07/17 (화) 03:13 |
|
ㆍ조회: 7954
|
|
|
|
|
|
|
|
|
시조는 혁신하자 / 이병기
1
벌써 6년 전에 신민(新民)잡지에서「시조는 부흥할 것인가」하는 문제로 하여 여론을 일으킨 일도 있었거니와, 요번 동아일보에서도「시조는 어떻게 전개시킬까」하는 논제(論題)를 또 일으키었다. 시조도 이 근래에는 이렇게 문제도 되는 만큼 그 운동이 점점 전개되고 있다. 그까진 시조 따위야 무엇이 그리 끔직한 것이라고 잡지ㆍ신문에서까지 문제를 삼아 여론을 일으킬까 하고 냉소(冷笑)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나, 시조운동도 조선문학운동의 하나로서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시조도 한 문학이다. 소설ㆍ희곡(戱曲)ㆍ동요ㆍ민요ㆍ신시(新詩)와 같은 한 문학이다. 더구나 우리 조선에서는 역사와 그 의의가 깊은 한 문학이다. 고대 민요의 한 형식으로서 발달되어, 적어도 근 천년(近千年) 동안을 거쳐 오늘날까지 오는 것이며, 우리의 과거의 문학을, 말하자면 과연 이 시조가 가장 소중한 것이다. 다른 가요(歌謠)보다도 또는 소설이나 기타 무엇보다도.......
그러나 시조는 다만 이러한 의미만이 아니라, 기정(旣定 이미 결정되어 있음)한 소설형으로는 가장 합리하게 되어 있다. 엇시조(旕時調)ㆍ사설시조(辭說時調)는 그만두고, 보통 쓰이는 평시조(平時調) 하나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정형이라기보다도, 한 정형(整形)으로서 대개 그 자수(字數)를 몇 자(字) 이하, 몇 자(字) 이상에서 암만이라도 취사(取捨 : 쓸 것은 쓰고 버릴 것은 버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형식을 7,7,7,7의 4구(四句)로 된 한시절구(漢詩絶句)나, 5,7,5,7,7의 오구(五句)로 된 일본단가(日本短歌)와 같이 꼭 일정한 자수(字數)만으로 하여 된 건 지금 전하는 천 여수(千餘首) 되는 고시조(古時調) 가운데에, 3백여(三百餘) 가지나 되겠다.
어떤 이는 이것이 너무 복잡하다 하고, 다시 표준형식이 있어야 하겠다 하는 이도 있지마는, 그 표준형식이란 무엇으로 정할지 알 수 없다. 가령 78, 78, 87로 하여 초장이나 중장의 첫구(句)는 7자, 끝구(句)는 8자로 하고, 종장의 첫구(句)는 3자, 둘째구(句)는 5자, 셋째구(句)는 4자, 끝구(句)는 3자로 하자는 이가 있으나, 이 형식이 무슨 의미로서 표준형식이 될는지는 알 수 없다. 위에 말한 3백여 가지나 된다는 고시조의 형식을 본다면, 이 형식보다 달리 된 형식으로서 더 많이 쓰인 것이 있다.
그러면 재래(在來)의 시조형식으로는 이 형식이 한 소수(小數)에 지나지 못한다. 이런 통계로 보아서는 표준형식이 될 수 없다. 다만 어느 작가의 독단(獨斷)과 자수기억(字數記憶)의 편의(便宜)나 하여 한 부호(符號)처럼 정한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고, 그 자수(字數)로 말미암아 생기는 음조(音調 <문학>시문(詩文)에서, 소리의 높낮이나 강약, 장단 따위의 어울림)나 운률(韻律)로 본대도 이 형식이 꼭 표준된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근래 어떤 이들은 이 형식만을 시조의 형식으로 아는 이도 있고 쓰는 이도 있어, 천편일률(千篇一律)로 하여 이 형식의 자수(字數)만 채워 지어 낸다. 그리하여 퍽 자유스럽게 되어 있던 시조의 형식을 도리어 부자유하게시리 하지나 않는가 하는 느낌이 난다. 이 자유스러운 것이야말로 과연 다른 나라의 기정(旣定)한 소설형(小說形)들과도 다른 점이고 또한 특성인 것이다. 이 특성이 현재나 장래에 있어서 영원히 그 생명을 뻗어갈 만한 것이다.
왜 시조를 배척(排斥)할까? 그 배척하는 것을 보면, 첫째는 시조의 형식, 둘째는 시조의 내용에 대하여서다.
첫째, 시조의 형식은 정형인 것과 고전적(古典的)인 것이다. 하나 고전도 고전 나름이요 정형도 정형 나름이지 반듯이 정형이라고 하여 고전을 덮어놓고 다 버려야 할 것은 아니다. 시조는 정형이며 고전적이면서도 꼭 있어야 할 까닭은, 도리어 그 정형과 그 고전적에 있다. 한문이나 영어와 같은 외국의 문학을 맛보는 우리로서, 그래도 조선어문학의 맛을 보자면 무엇이 있나.
한시(漢詩)나 영시(英詩)처럼 발달은 못되었다 하드라도, 적어도 조선말로써 조선말답게 적은 것이며 조선말로서의 목숨과 넋이 있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조선말에 쓰인 전형(典型)과 궤범(軌範 어떤 일을 판단하거나 행동하는 데에 본보기가 되는 규범이나 법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것을 보고 일일이 그대로 모방을 하거나 인용을 하거나 할 건 아니라도 거기에서 무슨 전통이나 암시(暗示)를 얻을 것 아닌가. 이것이 과연 우리들과는 남다른 깊은 관계가 있는 바이다.
마치 일본인이 화가(和歌)와 같은 문학을 저버릴 수 없음과, 지나인(支那人 중국 인)이 한시(漢詩)와 같은 문학을 저버릴 수 없음과 같은 일이다. 일본에서 자유시운동, 지나(支那)에서 백화시(白話詩)운동이 맹렬하여도, 또 그 한편에는 한시(漢詩)나 화가(和歌)같은 정형시가 또한 못지않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 중 일본같은 데서는 가인(歌人) 자신으로도 한때 화가멸망론(和歌滅亡論)을 지어 떠들고, 오히려 가단(歌壇) 한편에서 맹장(猛將)노릇을 하는 뻔뻔한 이도 있으며, 지금 와서는 프롤레타리아단가운동(短歌運動)까지 생겼다. 지금 우리의 시조도 이렇다 저렇다 운운함은 그 전개의 과장에 있어 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2
한데, 시조는 그 뿐만 아니라, 누누이 말함과 같이 한시(漢詩)나 화가(和歌)보다도 더욱 자연스러운 소설형으로서 곧 3백여 가지로 나누어 쓸 수 있는 이 형식을 무엇이 그리 불편하다고 할까. 동요나 민요와도 형이나 아우 사이이며, 자유시(新詩)와도 그다지 먼 사이는 아니다. 자유시라고 문자나 나열하여 놓으면 곧 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내용과 합(合)할 만한 그 형식도 있어야 한다. 얼른 생각하면, 초보자로는 자유시가 쉬운 듯하나, 알고 보면 시조가 도리어 쉬운 것이다. 시조는 곧 전통적ㆍ계승적인 그 암시가 있으므로, 그것을 깨치어 가지고 나가면 될 듯하다. 마치 자유방분(自由放奔)한 표현으로서의 소설작가가 되기보다는 비교적 법칙(法則)있는 표현으로서의 희곡작가가 되기가 쉬운 것 같다.
물론, 그 극치(極致)에 들어가서는 다 같이 어렵겠지마는, 어느 과정까지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조의 형식을 난삽(難澁)하고 간원(迀遠)하던 귀족문학이라 할 것이 아니라. 명료하고 평이한 대중문학으로 쓸 수 있으며, 진부하고 과장(誇長)하던 고전문학이라 할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신선한 사실(寫實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 냄)문학으로도 쓸 수 있다. - 어느 것으로든지 다만 그 쓰기에 있을 뿐이다.
둘째, 시조의 내용은 현대의 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말은 쉽지만 이상(理想)과 같이 하기는 어렵다. 아닌게아니라 시조작가들 가운데에도 그렇게 시작(詩作)하는 이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흔히 배척을 받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근래 시조운동이 점점 전개됨에 따라, 그 한편으로는 이러 저러한 작품이 함부로 나오므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직도 시조하면 요리집에나 기생방에서 장고나 두드리며『남훈전(南薰殿) 달밝은 밤에...』하고 늘어지게 부르던 그것으로나 알고, 시조를 한 유희(遊戱)나 오락으로 하여 지어내는 것이 있으며, 마치 옛날 사람들이 하듯이 이를 한 음풍농월(吟風弄月)로나, 풍류운사(風流韻事 바람이 불어 구름을 흩어 버린다는 뜻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알고, 한시(漢詩)에서나 어느 고전에서 얻어들은 재료나 가지고 아무 실감도 없이 흥흥거리며 읊어내는 것도 있으며, 시조는 詩든 아니든 무엇이든지 다 담아내는 한 그릇으로 알고 되는대로 써내는 것도 있으며, 어떤 이는 시조를 고적도보(古蹟圖譜)와 같은 것으로 여기고 한 점(點) 한 획(畫)이라도 빼놓을까 염려하며 정성스럽게 고시조 그것만을 모방하여 그려내는 것도 있으며, 어떤 이는 시조나 좀 읽어보고는 다만 자기의 독단(獨斷)으로써 남보다 더 한층 초월(超越)하여 이상야릇하게 지어내는 것도 있으며, 겨우 시조자수나 말붙일 줄이나 짐작하고는 다시는 더할 나위없는 작가로 자처하고 자기도취로써 지어내는 것, 또는 시인이 타락(墮落)이나 하면 시조를 짓는 것 같은 따위가 너무나 많다.
통틀어 말하면, 이러한 작품들은 한 습작으로서 자기의 수첩에나 서랍 속에 넣어두고 볼 것인데, 이는 자기의 표현하고자 하는 참을 수 없는 마음과, 또는 잡지사나 신문사의 호의로 하여 종종 발표되는 것이다. 허나 이러한 현상은 다만 시조에서만 보일 뿐이 아니라, 다른 시가(詩歌)나 문예작품에서도 보이는 것이다. 그저 이것을 배척하거나 미워하거나 비방하고 조롱함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이러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이 운동에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별문제(別問題)로 두고, 시조작가로서는 당연히 반성해야 할 것은 작가로서의 상당한 단련을 해나가야 함이다. 암만 단련을 한대도 천분(天分 타고난 재질이나 직분)과 소질이 없으면 아니 되겠지마는, 또는 암만 천분(天分)과 소질은 있대도 아니하고는 아니될 것이다. 천재도 단련(鍛鍊)에서 생긴다. 그 단련은 범인(凡人)과 같이 오랫동안을 허비하지 않고 그 보다 퍽 짧은 동안에 될지는 모르나, 그만큼 노력은 해야 될 것이다.
다윈 같은 천재로도「부단의 노력」을 말하고, 이백(李白) 같은 시인으로도「광산(匡山)의 마철(磨鐵 쇠방망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듬,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비유함」을 전하거든, 더구나 그들과 같은 천분(天分)도 소질도 못타고 나고, 또는 그들과 같은 단련도 없으며, 그저 그들과 같은 천재나 시인이 되기를 바라면 될 것인가? 오늘날 시조로 하여 배척이나 천대를 받게 함도 도시 그 작가들의 단련이 부족한 탓이다. 다시 말하면 작품다운 작품을 많이 내놓지 못한 까닭이다. 혹은 작품다운 작품이라도 그것을 능히 감상할 만한 눈이 없어 그럴 리도 없지 않겠지마는, 과연 내노라 하고 버젓하게 내놓을 만한 작품이 많지 못함도 사실이 아닌 건 아니다.
일본의 北原白秋는 화가(和歌)를 짓기 시작한지 30년이나 되어도, 눈앞에 조그마한 사생(寫生 실물이나 경치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일) 하나도 완전히 못하겠다 하며, 몇 해 전 간행한 자기의 가집(歌集)에서 백수(白首) 가운데 겨우 한두 수(首)쯤이나 뽑아 다시 추고(推稿 (퇴고(推敲)의 잘못)해서 쓸 것이 있다 한다. 일본어를 자유롭게 풍부하게 쓰는 것으로는 고금(古今)에 제일이라는 평을 받은 그 시인으로도, 겨우 31자 되는 단가(短歌)에는 그렇게 고심한다는 일을 생각하면, 여간 시조나 몇몇 수 지어보고 저버리는 그런 이로는 그 무엇을 한다 하리요. 만일 노력도 단련도 하기 싫어하는 그런 이고 보면, 일찍부터 이 시조의 작(作)도 그만두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출처 : 가람문선/이병기(312~316P)ㆍ신구문화사 1966년.
참고 『가람문선(이병기)』과『시조연구논총(이태극)』에서《時調는 革新하자》를 대조하니ㆍ단어(명칭 등)ㆍ수치ㆍ조사 등이 일치 하지 않았고 단락(段落)도 틀렸다. '동아일보'는 1932년. ‘시조연구논총‘은 1965년. ’가람문선‘은 1966년에 발표되었다. 최종의 것『가람문선』에서 발췌하였다.
『시조연구논총』이『가람문선』에 비해 시조에 관한 글이 많다.
한자들이 붙잡고 늘어지고『가람문선』과『시조연구논총』을 대조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투자되었다. 상기 게시물은〈時調는 革新하자〉의 1/5도 되지 않는다. 현대시조시인이라면, 그들에 의해 현대시조의 모태라고 일컬어지고 내세워지는, 李秉岐의《時調는 革新하자》정도는 최소한 읽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 바로 현대시조시인이란 이들의 몫이다.
|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