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역사 민족의 여행 / 시조 - ◀ 원문보기 클릭 ▶

일본에는 하이쿠가 있고 조선에는 시조가 있다。어느 쪽이나 짧은 형태의 노래다。말을 최소한으로 응축한 하이쿠와 시조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일본은 하이쿠와 단가(短歌)가 있지만, 시조와 비교되는 것은 역시 하이쿠일 것이다。시조와 하이쿠는 발생부터 유사점이 많다。하이쿠의 모체는 하이카이(俳諧)의 렌가(連歌)이다。우아하고 온화한 분위기에 만족하지 않는, 무사집단의 자기주장의 방법이었다。조선시조도, 신라시대가 전성기였던 향가가 고려에서「해동성국(海東盛国)」을 구가하고 있었을 무렵, 사회의 지배적 지위의 양반 사대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당시, 일본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조선은 고려시대였으므로 전후의 차이는 있지만 시기적으로는 거의 같다。하이쿠는 야마자키소칸(山崎宗鑑) 등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겐로쿠기(元禄期)에 마츠오바쇼(松尾芭蕉) 등에 이르러, 자연과 인생의 예술에 까지 높일 수 있게 되었다。‘마츠오바쇼‘ 이후, 하이쿠는 ’요사부손(与謝蕪村)‘과 ’고바야시잇사(小林一茶) 등, 걸출한 사람들 붓을 통해 정련되어, 메이지 이후는 ‘마사오카시키(正岡子規)‘에 의한 혁신운동에 의해 예술성을 한층 더 높여 현대에 이르고 있다。조선시조도 같다고 말할 수 있다。시조는 신라의 향가가 일부 단축되어 완성된 형식이지만, 고려와 조선 왕조를 거처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하이쿠와 시조의 공통점은 찾을 수 있지만, 전혀 별개의 세계이다。일본인과 조선인의 미의식 차이가 거기에 있다。하이쿠는 5,7,5,의 정형시이며, 자수가 17자라는 제약이 있다。게다가「눈」「달」「꽃」등의 계절어와,「이나」「일까」「이구나」등의 절자(切字)라고 하는 영탄을 나타내는 조사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하이쿠가, 극단적으로 자수를 줄이고 헛됨을 생략한 궁극적 정형시인데 비해, 조선시조는 자수에 여유가 있는 함축이 있는 정형시이다。시조의 정형은 3장6구. 음수율은 3.4. 4,4. 자수는 대략 45자이다。대략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전후이면 허용된다는 것이다。게다가 하이쿠와는 달리 계절어, 절자(切字)라고 하는 제약도 없다。시조의 정형을 성삼문의「단심가」로 보면 다음과 같은 형태가 된다。   【初章】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イモミ チュッコチュゴ イルペクポン コチョチュゴ   【中章】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ペクコリ チントトェヨ ノクシラド イッコオプコ    【終章】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ニムヒャンハン イルピョンタンシム カシルチュリ イッスリャ3장 6구. 3,4. 4,4조의 시조의 형태는, 분량적으로는 정확히 하이쿠를 세 개 거듭하는 것과 같다。사물을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전하려고 하는 조선적 사고방식으로 알맞은 형태이다。하이쿠는 논리적인 시조와는 전혀 다르다。하이쿠는 detail이다。일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취향을 무한하게 넓히는 하이쿠의 세계는, 논리나 설명은 전혀 필요 없다。잘 갈아진 감성만이 요구 된다。시조와는 달리 하이쿠에는 기승전결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시조는 철저하게 이치를 따진다。예를 들면, 위에 예시한「단심가」는 조선왕조의 충신 성삼문의 죽음의 시조이다。그는「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臣不事二君)」는 사상에서 왕에 대한 충의를 읊었던 것이다。     この身滅び、百たび死して     白骨塵土と化し、魂すでに無かりしも     君に捧げる一片丹心、色あせること無し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성삼문은 자신의 충성심은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변하지 않는 충성이라고 호소하고 있다。그것은 일본의 하이쿠인이, 마루에 앉아 관념의 세계를 추상하는 세계는 아니다。현실에 축을 두고, 자신의 주장과 그 정당성을 당당하게 말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다。여기에, 조선왕조시대를 대표하는 시조가 있다。     烏が黒いと、白鷺よ笑うでない     羽根が黒いとて、腹のなかまで黒かろうか     表白く腹黒いのは、まさにお前のことではないか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손가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이 시조는 반대 세력의 불합리한 정략으로 불충이라는 누명을 쓰고 하야한 작자의 울분을 한 마디로 표시하였다。만약, 에도시대(江戸時代) 무사가 성삼문과 같아 그 심정을 하이쿠로 표시하였다면 어떠한 구(句)가 될까。어쩌면, 다음과 같이 읊었을지도 모른다。     寂しさや枯葉の舞い飛ぶ秋の暮れ     외로움이나 고엽에 흩날려 날고 있는 가을의 저녘 - 朴禮緒、朝鮮大学校文学歴史学部非常勤講師 -   [조선신보 2004.6.5]    〈조선 역사 민속의 여행〉 시조(2)  일본과 조선은 미의식과 감성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시조에 한정하지 않고 조선인은 이치를 따지기를 강요 한다。형태보다 내용을 존중한다。일본인은, 내용도 소중하지만, 우선 형태를 고집하고 그 형태에 알맞은 내용을 선택하여 넣으려고 한다。다도(茶道)도, 무도(武道)의 세계조차 양식미를 고집한다。그 때문에 시조는, 일본인의 감각에서는 풍치가 없는 도리(道理)의 덩어리와 같이 느껴지는 것일 것이고, 반대로 조선인에 있어서 하이쿠는 내용이 없는 공허한 말맞추기에 지나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夏草や兵ものどもが夢のあと     여름풀이여 병사들이 꿈의 흔적                               마츠오바쇼'마쇼’는, 여름풀에 감싸진 빈 터에서, 옛 시절, 외침과 싸운 겐지(源氏)와 헤이케의 무사들(平家の武者たち)의 모습을 그렸다。그것은, 시간으로 공간을 넘은 일순간의 사건이다。하이쿠의 묘미(참다운 즐거움)는 순간도 없는 날카로움에 있는 것 같다。그러나, 조선시조는 그런 것과는 연고가 없다。같은 회고조 시조를 보자。    五百年の都、匹馬で駆ける    山川に面影あれど、人傑は無し    嗚呼、泰平の歳月は、いずこに行きしか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들아 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어저브 태평세월이 꿈이런가 하노라작자는 고려의 신하 길재이다. 왕조 5백년의 영화를 그리워하면서 지은 것이다。테마나 내용도, 제약이 많은 하이쿠는 테마가 한정되지만, 시조에는 한계가 없다。현재, 고려말기부터 조선왕조에 걸쳐 3천여수 시조가,「青丘永言(998수)」「해동가요(883수)」등의 시조집에 있다。작자는 국왕, 고위 관료, 일반 사대부, 기생, 서민에 이르기 까지 애용되었다。테마도 백화요란(百花繚乱온갖 꽃이 불이 타오르듯이 화려하게 핌)의 감이 있다。 왕과 신하의 사이에도 시조가 있었다。신하를 믿는 왕과, 왕에게 충성을 표시하는 신하。사대부의 의사소통이나 모의도 시조의 교환을 통하여 행하여졌다。먼저 소개한「단심가」는, 신정권을 지지하라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보낸 ‘하여가’에 대한 정몽주의 회답이었다。그는 결연히「노」라고 답한 것이다。시조의 기교는 다채롭다。영탄(詠嘆), 서술의 기교 있어, 서정, 사실의 기교도 구사된다。특히, 객관적 사실성이 주관적 서정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 상징적 세계는, 시조의 기교를 이룰 수 있는 기술이었다。황진이의 명작「청산리 벽계수야」를 소개한다。 황진이는 개성의 기생이다。세상 남자들이 동경하는 재색을 겸비한 여성이었다。이 시조에는 다음의 일화가 있다。왕족인 벽계수가 황진이를 풍문으로 듣고「양반은 일개 기생에게 홀리지 않는다。진정한 풍류인에게는 여인은 필요 없다。대장부다운 대범함을 보여주자」고 호언장담하고 개성으로 간다。벽계수일행이 청동제 말의 장신구를 울리면서 지나가자, 누각에서 기다리고 있던 황진이는 거문고를 끌어안고 조용히 노래하였다。     青山裏を行く碧渓水よ、流れの速さを誇ることなかれ     ひとたび海に至れば、返り来ることあたわざる     今宵、名月山に満るに、しばしの憩いを楽しむべきや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라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여간들 어떠리황진이는 벽계수를 흐르는 시냇물로, 자신은 기명인 명월로 비유하였다。의미는「그렇게 서둘러 어떻게 합니까. 한 번 바다에 흘러 들어가 버리면 두 번 다시 돌아 올 수 없습니다. 오늘 밤은 유달리 달도 밝으니 잠깐 쉬어 가지 않겠습니까」라고 권유하는 것이다。이 시조는, 객관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소재가 서정적으로 주관화 되었을 때, 시조는 완전히 새로운 상징성을 가지고, 사람들 마음에 깊게 감지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한 수의 시조로 완고한 유학자 벽계수조차도 일각에 무너지고 말았다。조선 왕조의 후기에 시조는 큰 변화를 맞이한다。하급 관리나 서민이 음악가의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이것에 의해서 시조의 풍운도 크게 바뀌어, 시재(詩材)로서는 서민의 생활이 다루어져 묘사도 보다 사실적으로 되어 갔다。정형도 무너져 변형시조인 사설시조가 등장한다。또, 곡을 붙이고 가곡으로서 불러지기 시작한 이후 시조는 문학작품으로서 감상하는 것보다, 오히려 가창하는 면에 부각되어, 이윽고 음악가 중에 시조를 천직으로 하는 와카(和歌)와 같은 작가를 배출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 朴禮緒、朝鮮大学校文学歴史学部非常勤講師 -   [朝鮮新報 2004.6.12]   

ㆍ작성자 검정삿갓
ㆍ작성일 2007/10/06 (토) 23:59
ㆍ출처1 0406j0605-00001.htm (Down:18323)
ㆍ출처2 0406j0612-00001.htm (Down:18432)
ㆍ조회: 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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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 민족의 여행 / 시조

일본에는 하이쿠가 있고 조선에는 시조가 있다。어느 쪽이나 짧은 형태의 노래다。말을 최소한으로 응축한 하이쿠와 시조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일본은 하이쿠와 단가(短歌)가 있지만, 시조와 비교되는 것은 역시 하이쿠일 것이다。

시조와 하이쿠는 발생부터 유사점이 많다。하이쿠의 모체는 하이카이(俳諧)의 렌가(連歌)이다。우아하고 온화한 분위기에 만족하지 않는, 무사집단의 자기주장의 방법이었다。조선시조도, 신라시대가 전성기였던 향가가 고려에서「해동성국(海東盛国)」을 구가하고 있었을 무렵, 사회의 지배적 지위의 양반 사대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조선은 고려시대였으므로 전후의 차이는 있지만 시기적으로는 거의 같다。

하이쿠는 야마자키소칸(山崎宗鑑) 등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겐로쿠기(元禄期)에 마츠오바쇼(松尾芭蕉) 등에 이르러, 자연과 인생의 예술에 까지 높일 수 있게 되었다。‘마츠오바쇼‘ 이후, 하이쿠는 ’요사부손(与謝蕪村)‘과 ’고바야시잇사(小林一茶) 등, 걸출한 사람들 붓을 통해 정련되어, 메이지 이후는 ‘마사오카시키(正岡子規)‘에 의한 혁신운동에 의해 예술성을 한층 더 높여 현대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조도 같다고 말할 수 있다。시조는 신라의 향가가 일부 단축되어 완성된 형식이지만, 고려와 조선 왕조를 거처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하이쿠와 시조의 공통점은 찾을 수 있지만, 전혀 별개의 세계이다。일본인과 조선인의 미의식 차이가 거기에 있다。

하이쿠는 5,7,5,의 정형시이며, 자수가 17자라는 제약이 있다。게다가「눈」「달」「꽃」등의 계절어와,「이나」「일까」「이구나」등의 절자(切字)라고 하는 영탄을 나타내는 조사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이쿠가, 극단적으로 자수를 줄이고 헛됨을 생략한 궁극적 정형시인데 비해, 조선시조는 자수에 여유가 있는 함축이 있는 정형시이다。시조의 정형은 3장6구. 음수율은 3.4. 4,4. 자수는 대략 45자이다。대략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전후이면 허용된다는 것이다。게다가 하이쿠와는 달리 계절어, 절자(切字)라고 하는 제약도 없다。

시조의 정형을 성삼문의「단심가」로 보면 다음과 같은 형태가 된다。

   【初章】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イモミ チュッコチュゴ イルペクポン コチョチュゴ

   【中章】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ペクコリ チントトェヨ ノクシラド イッコオプコ
 
   【終章】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ニムヒャンハン イルピョンタンシム カシルチュリ イッスリャ

3장 6구. 3,4. 4,4조의 시조의 형태는, 분량적으로는 정확히 하이쿠를 세 개 거듭하는 것과 같다。사물을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전하려고 하는 조선적 사고방식으로 알맞은 형태이다。

하이쿠는 논리적인 시조와는 전혀 다르다。하이쿠는 detail이다。일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취향을 무한하게 넓히는 하이쿠의 세계는, 논리나 설명은 전혀 필요 없다。잘 갈아진 감성만이 요구 된다。시조와는 달리 하이쿠에는 기승전결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조는 철저하게 이치를 따진다。예를 들면, 위에 예시한「단심가」는 조선왕조의 충신 성삼문의 죽음의 시조이다。그는「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臣不事二君)」는 사상에서 왕에 대한 충의를 읊었던 것이다。

     この身滅び、百たび死して
     白骨塵土と化し、魂すでに無かりしも
     君に捧げる一片丹心、色あせること無し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성삼문은 자신의 충성심은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변하지 않는 충성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의 하이쿠인이, 마루에 앉아 관념의 세계를 추상하는 세계는 아니다。현실에 축을 두고, 자신의 주장과 그 정당성을 당당하게 말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여기에, 조선왕조시대를 대표하는 시조가 있다。

     烏が黒いと、白鷺よ笑うでない
     羽根が黒いとて、腹のなかまで黒かろうか
     表白く腹黒いのは、まさにお前のことではないか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손가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는 반대 세력의 불합리한 정략으로 불충이라는 누명을 쓰고 하야한 작자의 울분을 한 마디로 표시하였다。
만약, 에도시대(江戸時代) 무사가 성삼문과 같아 그 심정을 하이쿠로 표시하였다면 어떠한 구(句)가 될까。

어쩌면, 다음과 같이 읊었을지도 모른다。

     寂しさや枯葉の舞い飛ぶ秋の暮れ
     외로움이나 고엽에 흩날려 날고 있는 가을의 저녘

- 朴禮緒、朝鮮大学校文学歴史学部非常勤講師 -   
[조선신보 2004.6.5]   


〈조선 역사 민속의 여행〉 시조(2) 

일본과 조선은 미의식과 감성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시조에 한정하지 않고 조선인은 이치를 따지기를 강요 한다。형태보다 내용을 존중한다。

일본인은, 내용도 소중하지만, 우선 형태를 고집하고 그 형태에 알맞은 내용을 선택하여 넣으려고 한다。다도(茶道)도, 무도(武道)의 세계조차 양식미를 고집한다。그 때문에 시조는, 일본인의 감각에서는 풍치가 없는 도리(道理)의 덩어리와 같이 느껴지는 것일 것이고, 반대로 조선인에 있어서 하이쿠는 내용이 없는 공허한 말맞추기에 지나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夏草や兵ものどもが夢のあと
     여름풀이여 병사들이 꿈의 흔적
                               마츠오바쇼

'마쇼’는, 여름풀에 감싸진 빈 터에서, 옛 시절, 외침과 싸운 겐지(源氏)와 헤이케의 무사들(平家の武者たち)의 모습을 그렸다。그것은, 시간으로 공간을 넘은 일순간의 사건이다。하이쿠의 묘미(참다운 즐거움)는 순간도 없는 날카로움에 있는 것 같다。그러나, 조선시조는 그런 것과는 연고가 없다。같은 회고조 시조를 보자。

    五百年の都、匹馬で駆ける
    山川に面影あれど、人傑は無し
    嗚呼、泰平の歳月は、いずこに行きしか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들아 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어저브 태평세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작자는 고려의 신하 길재이다. 왕조 5백년의 영화를 그리워하면서 지은 것이다。

테마나 내용도, 제약이 많은 하이쿠는 테마가 한정되지만, 시조에는 한계가 없다。현재, 고려말기부터 조선왕조에 걸쳐 3천여수 시조가,「青丘永言(998수)」「해동가요(883수)」등의 시조집에 있다。작자는 국왕, 고위 관료, 일반 사대부, 기생, 서민에 이르기 까지 애용되었다。테마도 백화요란(百花繚乱온갖 꽃이 불이 타오르듯이 화려하게 핌)의 감이 있다。
 
왕과 신하의 사이에도 시조가 있었다。신하를 믿는 왕과, 왕에게 충성을 표시하는 신하。사대부의 의사소통이나 모의도 시조의 교환을 통하여 행하여졌다。먼저 소개한「단심가」는, 신정권을 지지하라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보낸 ‘하여가’에 대한 정몽주의 회답이었다。그는 결연히「노」라고 답한 것이다。

시조의 기교는 다채롭다。영탄(詠嘆), 서술의 기교 있어, 서정, 사실의 기교도 구사된다。특히, 객관적 사실성이 주관적 서정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 상징적 세계는, 시조의 기교를 이룰 수 있는 기술이었다。

황진이의 명작「청산리 벽계수야」를 소개한다。
황진이는 개성의 기생이다。세상 남자들이 동경하는 재색을 겸비한 여성이었다。

이 시조에는 다음의 일화가 있다。
왕족인 벽계수가 황진이를 풍문으로 듣고「양반은 일개 기생에게 홀리지 않는다。진정한 풍류인에게는 여인은 필요 없다。대장부다운 대범함을 보여주자」고 호언장담하고 개성으로 간다。벽계수일행이 청동제 말의 장신구를 울리면서 지나가자, 누각에서 기다리고 있던 황진이는 거문고를 끌어안고 조용히 노래하였다。

     青山裏を行く碧渓水よ、流れの速さを誇ることなかれ
     ひとたび海に至れば、返り来ることあたわざる
     今宵、名月山に満るに、しばしの憩いを楽しむべきや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라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여간들 어떠리

황진이는 벽계수를 흐르는 시냇물로, 자신은 기명인 명월로 비유하였다。
의미는「그렇게 서둘러 어떻게 합니까. 한 번 바다에 흘러 들어가 버리면 두 번 다시 돌아 올 수 없습니다. 오늘 밤은 유달리 달도 밝으니 잠깐 쉬어 가지 않겠습니까」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이 시조는, 객관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소재가 서정적으로 주관화 되었을 때, 시조는 완전히 새로운 상징성을 가지고, 사람들 마음에 깊게 감지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한 수의 시조로 완고한 유학자 벽계수조차도 일각에 무너지고 말았다。

조선 왕조의 후기에 시조는 큰 변화를 맞이한다。하급 관리나 서민이 음악가의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이것에 의해서 시조의 풍운도 크게 바뀌어, 시재(詩材)로서는 서민의 생활이 다루어져 묘사도 보다 사실적으로 되어 갔다。

정형도 무너져 변형시조인 사설시조가 등장한다。또, 곡을 붙이고 가곡으로서 불러지기 시작한 이후 시조는 문학작품으로서 감상하는 것보다, 오히려 가창하는 면에 부각되어, 이윽고 음악가 중에 시조를 천직으로 하는 와카(和歌)와 같은 작가를 배출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 朴禮緒、朝鮮大学校文学歴史学部非常勤講師 -   
[朝鮮新報 200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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