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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의 문학세계 - ◀ 원문보기 클릭 ▶
이병기(李秉岐,1891~1968), 호: 가람한국의 시조시인
1. 서 문가람 이병기는 뛰어난 시조시인이자 시조 부흥, 혁신운동을 전개한 현대시조의 개척자이고 시조를 포함한 국문학의 이론을 정립한 국문학자이다. 그는 자칫 소멸했을 수 천권의 국학관련 고서를 수집하여 수많은 자료를『국문학전사』(백철과 공저, 신국문학사,1957)에 소개하고 그 중 몇몇은 주해해서 발간했다. 그는 또 이 고서를 바탕으로 당시에 아직 학적 요건이 마련되지 않은 서지학을 체계화하기도 했다.그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조선어 표준어 사정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연루되어 약 1년간 옥살이를 할 정도로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강연을 통해 이를 보급했다. 그는 일제말 거의가 친일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을 때에도 단 한 줄의 친일적인 글을 쓰지 않았다.그는 시조시인과 시조학자에 머물지 않고 국어학자 더 나아가 국문학자로서 전생애를 바쳤다. 그는 <문장지>의 시조 추천위원으로 그의 뒤를 이은 김상옥, 이호우, 장하보 등을 등단시켰고 대학에서 최승범, 박병순, 황희영, 이기반 등을 가르쳐 시조시인으로 길렀다.그는 교육자로서 정년퇴직하였으며 한성사범을 졸업한 후 초등, 중등, 대학의 교원을 두루 거쳤다. 서울대학, 전북대학, 중앙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연희전문, 동국대학, 국민대학, 숙명여대, 원광대학 등에서 강의했다. 가람의 생애는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그가 18세(1909년)부터 77세(1968)로 별세하기 하루 전까지 60여년을 일기에 담았기 때문이다.2. 시조의 부흥과 혁신시조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태에서 그는 시조의 명칭, 종류, 글자수, 시어의 결합, 운율, 고유 장르여부, 형식의 유래, 낭독법, 수사법 그리고 신시조 운동 등을 이 글에 논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어느 정도 시조학의 바탕을 마련하고는 1932년(동아일보)에「시조는 혁신하자」라는 구호를 내세워 현대시조 운동을 전개한다. 이 논설은 ① 실감실정의 표현 ② 취재 범위의 확장 ③ 참신한 시어사용 ④ 격조의 변화 ⑤ 연시조의 창작 등을 주장한다.첫째 실감실정의 표현이란 '주관으로서 하는 서정'즉 '절실한 감정'과 '객관으로서 하는 서경'즉 '색채가 가득한 광경'을 그리자는 주장이다. 이는 고시조에 흔한 통상적인 관념, 한시의 모방, 공상, 망상, 허풍 따위를 버리고 실재와 합리적 상상에서 느끼는 진솔한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둘째 취재 범위의 확장이란 제재를 모든 자연과 인생에서 취하여 이제재의 전면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개성적인 글을 쓰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고시조같이 제재의 동일한 일부분만 취하여 제재와 시어가 유사한 시조 창작을 극복해야 한다.셋째 참신한 시어사용은 한문어구나 상투어를 지양하고 '작가 자신의 감정에서 흐르는 리듬에 맞추어 시어를 선택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두, 게다, 라디오, 넨센스, 한글, 카프 따위도 시어로서 쓸 수 있다.넷째 격조의 변화는 시조가 창에서 시로 바꾸어진 이상 시조창의 정조인 장중 우아한 가락에서 벗어나 '작가 자기의 감정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에서 생기며 동시에 그 작품의 내용 의미와 조화되는 그러한 격조로 변화시키자는 것이다.다섯째, 연시조의 창작은 복잡한 현대를 극복하고 '한 제목을 가지고 한 수 이상으로 몇 수 까든지 지어 한편으로 하는데 한 제목에 대하여 그 시간이나 위치는 같든 다르든 다만 그 감정의 통일만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나 위치도 그 감정을 통일함에 어긋나지는 아니할 만한 정도 안에서 변동이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라 하여 연작시의 의미의 순간적인 포착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이 시조의 혁신하자의 각 조항은 그 자신의 시조작품에서 그대로 실행되었고 현대시조의 지침서가 되어 이제는 상식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가람은 22세 되던 1913년에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 받아 그 이후부터 국학 문헌을 수집하고 시조와 산문을 연구하고 창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24년「제주ㅅ길에」란 제목 밑에 "목포","다도해" 등 9개의 소제로 모두 20수의 시조를 발표한다. 그러나 이 시조들은 아직 그이 시조혁신 조항에 크게 벗어나는 고시조의 모방작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조 역시 이 혁신운동에 따라 변모시킨 것이다. 그의 시조는 『가람시조집』(문장사,1939)에 72편이, 『가람문선』(신구문화사,1966)의 「시조집」에 이 72편을 전기로 그 후의 작품 93편을 후기로 하여 모두 165편이 수록되어 있다.3. 가람 시조의 시작평정지용이 가람시조집 발문에서 '감성의 섬세와 신경의 예리와 관조의 총혜'와 '자연과 리얼리티에'를 언급하면서 보편화되었고, 거기에 '난초'와 '매화'를 더하여 이들 어후가 가람 시조론의 상투어가 되었다. 이들이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만 바꿔 가면서 동어 반복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가람은 "어떤 명시 명구라도 항상 듣고 보고하면 도리어 싫은 것이다. 통솔를 3년간 불면 이웃집 사람이 이사를 간다'고 이 상투어를 배격했다. 맑은 시내 따러 그늘 짙은 소나무 숲 높은 가지들은 비껴드는 별을 받어 가는 닢 은바늘처럼 어지러이 반작인다. 청기아 두어장을 법당에 이어 두고 앞뒤 비인 뜰엔 새도 날어 아니오고 홈으로 나리는 물이 저나 저를 울린다. 헝기고 또 헝기어 알알이 닦인 모래 고운 옥과같이 갈리고 갈린 바위 그려도 더러 일가바 물이 씻어 흐른다. 폭포소리 듣다 귀를 막어도 도다 돌을 베개 삼어 모래에 누어도 보고 한손에 해를 가리고 푸른 허공 바라본다. 바위 바위 우로 바위를 업고 안고 또는 넓다 좁다 이리 저리 도는 골을 시름도 피로도 모르고 물을 밟어 오른다. 얼마나 험하다 하리 오르면 오르는 이길 물소리 끊어지고 흰 구름 일어나고 우얼러 보이든 봉우리 발아래로 놓인다. 「계곡」이 시조는 가람시조집의 맨 앞에 자리한 시집의 얼굴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산행의 진행에 따라 전개되는 풍경을 그 과정과 함께 읊고 있다. 이 시조는 연마다 지속적으로 위와 아래의 대조에 의한 갈등구조로 짜여있다. 위는 솔잎이 반짝이고 아래는 시내가 그늘지고 위는 청기와가 빛나고 아래는 뜰이 비어 있고 위는 갈린 바위가 있고 아래는 닦인 모래가 있고 위는 해와 푸른 허공이 있고 아래는 폭포와 낙하가 있고 위는 바위층이 있고 아래는 굽이 도는 물이 있다.그래서 아래의 계곡을 벗어나 위의 정상에 오르니 위는 허공이었는데 뜬구름이 일고 아래는 우럴었는데 굽어보는 봉우리가 있다. 그래서 이 전도된 상황에서 위 아래의 갈등이 해소되어 삶의 의지와 허무가 결국 합일하는 것이 아닐까. 관조 만이 아니라 화자의 감정의 변화와 의지와 욕망과 자연의 순수무구함과 고요함 뿐만 아니라 자연의 혼란과 한계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가람시조집은 명승지 기행,화초 중심의 식물,개인사가 깃들인 과거와 향토회고와죽음,시간의 순환과 사물 등 제재별로 5부로 나뉘여 있다. 이 제재들은 보편적으로 애틋한 정서를 자아내는 것들이다. 그는 이 애틋한 정서를 내면으로 하고 그 정경을 외면으로 하여 『가람시조집』을 펴냈다.이제 후기 시조를 살펴보자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때 밥을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시도 읊고 싶구나 지난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 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가 그 얼마 다를 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태양이 그대로라면 지구는 어떨 건가 수소탄 원자탄은 아무리 만든다더라도 냉이꽃 한두 송이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냉이꽃」「가람문선」의「일기초」에 의하면 이 작품은 1954년 12월에 써서 이듬해 지방신문인 <삼남일보>의 신년시로 발표하였다. 이 때는 휴전협정이 조인된 지 겨우 일년이 지난 극히 어려운 시기였다. 잠과 밥과 시는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의식주에 해당할 것이다. 수면과 식사는 당연히 주와 식이지만 시는 비유적이다. "때로는 시도 읊고 싶구나"는 "때로는 새옷도 입고 싶구나"의 변형일 수 있다. 시인에게는 가끔가끔 시를 짓는 것은 사람들이 가끔가끔 새 옷으로 갈아 입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삶의 요소를 충족시킬 수 없는 비참한 시기에 처한 것이다. 방과 곶간들이 모두 잿더미 되고 장독대마다 질그릇 쪼각만 남았으니 게다가 움이라도 묻고 다시 살아봅시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지루한 고통보다는 차라리 자살이 쾌하다 그 전쟁 끝에 강도는 자주나고 해마다 풍년은 들어도 주려 죽게 되었다 「한 하소연」 쓰일 듯 쓰일 듯하여 붓은 던질 수 없고 문장만으로 배는 채워지지 않는다. 원컨대 오는 해마다 풍년이나 드소서 「갈보리」전쟁으로 황폐할 대로 황폐한 이 땅에서 의식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시대 상황에 시나 읊는 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노릇일 것이다. 의와 식의 당위와 시작의 열망이 무시되는 현실에서 그의 전기 시와 같이 이미저리를 형성하면서 감정을 객관적 상관물속에 은폐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2연의 새날의 꽃과 새소리는 시의 제재이다. 시는 새로운 발견에 대한 경이와 목소리이다. 이 새날은 바로 현재 시점의 올봄과 올여름이다. 이 새로운 꽃과 새소리에도 시를 쓸 수 없는 상황을 화자는 한탄하고 있다. 가까이 멀리에서 제서 쌍져울다 외로 울다 연달아 울다 둑 끈쳤다 다시 운다 그소리 단조하고 같은 양 해도 자세 들으면 이놈의 소리 저놈 의 소리 다 다르구나 「풀버레」같은 산수화조를 보더라도 그것이 다 다른 줄로 아는 이라야 한다. 옛시조 에서나 어느 시기에서 보면 산수화조를 그대로 머릿속에 넣어두고는 어느 산수화조를 보든지 한모양으로 하여 그게 그거라 해서는 아닌된다.<夫物之不齊,物之情也>라 하는 말과 같이 무슨 물건이든지 그것이 다른 성격이 있다. 이 다른 성격을 보고 아는 그 사람이 곧 시인일 수 있다.그러나 화자는 이러한 빈궁의 상황에서 "그 얼마 다를까마는"이라고 오히려 그 다름을 부정하고 있다. 그 상이점이나 따지는 것은 현상황에서 사치에 불과하다. 이슨 시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곧 이어서 "새롭다고 않는가"로 이 부정을 부정한다. 새롭다고 말하는 것은 관습이요 세상이다. 작년과 올해의 꽃맵시가 다르고 새소리가 다른 것은 몰라도 새봄에 새 희망을 갖고 씨앗을 뿌리고 그 여름에 결실을 꿈꾸면서 곡식을 가꾸는 것은 농부의 소망이다.원자탄을 만든다 해도 지구는 그대로인다 원자탄을 만든다 해도 생명은 못 만든다 로 이 중장은 양걸침말을 이루고 있다. 태양과 지구 수소탄과 원자탄 등 거대한 태양계와 거대한 파괴력을 말하자마자 곧 냉이꽃 한두 송이가 이어진다. 이런 대조의 아이러니는 우리의 시선을 그 하찮은 냉이꽃에 집중시키도록 이를 강조한다. 냉이는 가장 먼저 나오는 봄나물이다. 겨울을 나는 동안 벌써 양식이 떨어진 집에서는 이른 봄 냉이를 캐다 쌀 몇 알 넣고 멀건죽을 끊여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는 춘궁기의 양식이다.어떠한 전쟁의 능력도 하찮은 냉이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도 이를 파괴할 수도 없다. 이것이 이 작품의 표면적인 의미이다. 이 작품은 많은 동어반복을 하고 있다. 이렇한 동어반복뿐만 아니라1.2연의 초장과 중장이 대구를 이루어 우리 시에는 없는 각운 이상의 효과를 낸다. 그리고 각연의 종장 끝어절은 가람 시에 흔한 "-다"어미가 아닌 "-고나,-는가,-을까" 등으로 그리고 3연의 초장도 "-ㄴ가"로 맺고 있다. 이는 감탄과 설의 이지만 설의 역시 감탄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영탄조일 수밖에 없다.이 영탄은 의견과 주장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내용 속에는 어떤 풍경이 은폐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시 현실의 모습이다. 가람 후기시에는 그 서정 속에 서경이 앙금되어 떠 있는 것이다.4. 결 말이상으로 우리는 가람 시의 전기 즉 가람시조집의 세계와 후기 즉 가람문선의 후기 시편의 세계를 각각 한 편씩의 시를 해석하면서 살펴보았다. 한편의 시가 시인의 시의 세계를 대표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시인도 생활인인 이상 그의 시작품에는 여러 세계가 전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제재를 가지고 그의 시의 세계를 논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제재를 가지고 그의 시의 세계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이도 필요하지만 시에 깃들인 사상,서적 기법 등 여러가지가 그 척도가 될 것이다.가람의 시 세계는 이 제재와 사상과 기법이 서로 쌍을 이룬다. 전기의 자연과 후기의 인생, 전기으 선비 정신과 후기의 생활인의 정신,전기의 서경과 후기의 서정이 함께 따로 따로 하나으 범주를 이루면서 그의 시조시가 전개되는 것이다.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서경과 서정이다. 극단적인 서경은 즉물시가 되고 극단적인 서정은 영탄시가 된다. 그러나 가람은 그 서경 속에 그보다 더 내밀한 서정을 은폐하고 그 서정 속에 그보다 더 돌출된 서경을 폐쇄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서경이 곧 서정이요 서정이 바로 서경이다. 이병기 대표 작품대성암 / 젖 / 별 / 난초4 / 고향으로 돌아가자 대성암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서리 빨간 딸기 파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쪽이 발 끝에 부딪치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뫼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깊은 바위굴에 솟아나는 맑은 샘을 위로 뚫린 구멍 내려오던 공양미를 이제도 의상을 더불어 신라시절 말한다 별이 쨍쨍하고 하늘도 말갛더니 설레는 바람끝에 구름은 서들대고 거뭇한 먼산 머리에 비가 몰아 들온다. 출처 : 네이버 오픈백과 / 이병기의 문학세계 ☜반론짓는 시조 읽는 시조를 강조한 나머지 부르는 시조와의 화해를 전연 고려하지 않은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시조의 과거가 창(唱)의 흐름이었다는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연작의 문제인데, 과거의 것은 각수(各首)가 독립된 상태였던 것을 제목의 기능을 살리고 현대시작법을 도입하여 여러 수가 서로 의존하면서 전개, 통일되도록 짓자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창작으로 실천하여 완성한 이가 이병기 자신이었고, 오늘날 형태의 발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엄격히 보면 시조의 전통적 연작법으로서는 어긋나는 것이다.출처 : 시조를 혁신하자 /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함 ☜
객관적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 ㆍ작성자 |
검정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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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07/03/31 (토) 12:00 |
| ㆍ분 류 |
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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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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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의 문학세계
이병기(李秉岐,1891~1968), 호: 가람 한국의 시조시인
1. 서 문 가람 이병기는 뛰어난 시조시인이자 시조 부흥, 혁신운동을 전개한 현대시조의 개척자이고 시조를 포함한 국문학의 이론을 정립한 국문학자이다. 그는 자칫 소멸했을 수 천권의 국학관련 고서를 수집하여 수많은 자료를『국문학전사』(백철과 공저, 신국문학사,1957)에 소개하고 그 중 몇몇은 주해해서 발간했다. 그는 또 이 고서를 바탕으로 당시에 아직 학적 요건이 마련되지 않은 서지학을 체계화하기도 했다.
그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조선어 표준어 사정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연루되어 약 1년간 옥살이를 할 정도로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강연을 통해 이를 보급했다. 그는 일제말 거의가 친일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을 때에도 단 한 줄의 친일적인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시조시인과 시조학자에 머물지 않고 국어학자 더 나아가 국문학자로서 전생애를 바쳤다. 그는 <문장지>의 시조 추천위원으로 그의 뒤를 이은 김상옥, 이호우, 장하보 등을 등단시켰고 대학에서 최승범, 박병순, 황희영, 이기반 등을 가르쳐 시조시인으로 길렀다. 그는 교육자로서 정년퇴직하였으며 한성사범을 졸업한 후 초등, 중등, 대학의 교원을 두루 거쳤다. 서울대학, 전북대학, 중앙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연희전문, 동국대학, 국민대학, 숙명여대, 원광대학 등에서 강의했다. 가람의 생애는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그가 18세(1909년)부터 77세(1968)로 별세하기 하루 전까지 60여년을 일기에 담았기 때문이다.
2. 시조의 부흥과 혁신 시조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태에서 그는 시조의 명칭, 종류, 글자수, 시어의 결합, 운율, 고유 장르여부, 형식의 유래, 낭독법, 수사법 그리고 신시조 운동 등을 이 글에 논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어느 정도 시조학의 바탕을 마련하고는 1932년(동아일보)에「시조는 혁신하자」라는 구호를 내세워 현대시조 운동을 전개한다. 이 논설은 ① 실감실정의 표현 ② 취재 범위의 확장 ③ 참신한 시어사용 ④ 격조의 변화 ⑤ 연시조의 창작 등을 주장한다.
첫째 실감실정의 표현이란 '주관으로서 하는 서정'즉 '절실한 감정'과 '객관으로서 하는 서경'즉 '색채가 가득한 광경'을 그리자는 주장이다. 이는 고시조에 흔한 통상적인 관념, 한시의 모방, 공상, 망상, 허풍 따위를 버리고 실재와 합리적 상상에서 느끼는 진솔한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취재 범위의 확장이란 제재를 모든 자연과 인생에서 취하여 이제재의 전면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개성적인 글을 쓰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고시조같이 제재의 동일한 일부분만 취하여 제재와 시어가 유사한 시조 창작을 극복해야 한다.
셋째 참신한 시어사용은 한문어구나 상투어를 지양하고 '작가 자신의 감정에서 흐르는 리듬에 맞추어 시어를 선택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두, 게다, 라디오, 넨센스, 한글, 카프 따위도 시어로서 쓸 수 있다.
넷째 격조의 변화는 시조가 창에서 시로 바꾸어진 이상 시조창의 정조인 장중 우아한 가락에서 벗어나 '작가 자기의 감정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에서 생기며 동시에 그 작품의 내용 의미와 조화되는 그러한 격조로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다섯째, 연시조의 창작은 복잡한 현대를 극복하고 '한 제목을 가지고 한 수 이상으로 몇 수 까든지 지어 한편으로 하는데 한 제목에 대하여 그 시간이나 위치는 같든 다르든 다만 그 감정의 통일만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나 위치도 그 감정을 통일함에 어긋나지는 아니할 만한 정도 안에서 변동이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라 하여 연작시의 의미의 순간적인 포착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 시조의 혁신하자의 각 조항은 그 자신의 시조작품에서 그대로 실행되었고 현대시조의 지침서가 되어 이제는 상식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가람은 22세 되던 1913년에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 받아 그 이후부터 국학 문헌을 수집하고 시조와 산문을 연구하고 창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24년「제주ㅅ길에」란 제목 밑에 "목포","다도해" 등 9개의 소제로 모두 20수의 시조를 발표한다. 그러나 이 시조들은 아직 그이 시조혁신 조항에 크게 벗어나는 고시조의 모방작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조 역시 이 혁신운동에 따라 변모시킨 것이다. 그의 시조는 『가람시조집』(문장사,1939)에 72편이, 『가람문선』(신구문화사,1966)의 「시조집」에 이 72편을 전기로 그 후의 작품 93편을 후기로 하여 모두 165편이 수록되어 있다.
3. 가람 시조의 시작평 정지용이 가람시조집 발문에서 '감성의 섬세와 신경의 예리와 관조의 총혜'와 '자연과 리얼리티에'를 언급하면서 보편화되었고, 거기에 '난초'와 '매화'를 더하여 이들 어후가 가람 시조론의 상투어가 되었다. 이들이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만 바꿔 가면서 동어 반복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가람은 "어떤 명시 명구라도 항상 듣고 보고하면 도리어 싫은 것이다. 통솔를 3년간 불면 이웃집 사람이 이사를 간다'고 이 상투어를 배격했다.
맑은 시내 따러 그늘 짙은 소나무 숲 높은 가지들은 비껴드는 별을 받어 가는 닢 은바늘처럼 어지러이 반작인다.
청기아 두어장을 법당에 이어 두고 앞뒤 비인 뜰엔 새도 날어 아니오고 홈으로 나리는 물이 저나 저를 울린다.
헝기고 또 헝기어 알알이 닦인 모래 고운 옥과같이 갈리고 갈린 바위 그려도 더러 일가바 물이 씻어 흐른다.
폭포소리 듣다 귀를 막어도 도다 돌을 베개 삼어 모래에 누어도 보고 한손에 해를 가리고 푸른 허공 바라본다.
바위 바위 우로 바위를 업고 안고 또는 넓다 좁다 이리 저리 도는 골을 시름도 피로도 모르고 물을 밟어 오른다.
얼마나 험하다 하리 오르면 오르는 이길 물소리 끊어지고 흰 구름 일어나고 우얼러 보이든 봉우리 발아래로 놓인다. 「계곡」
이 시조는 가람시조집의 맨 앞에 자리한 시집의 얼굴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산행의 진행에 따라 전개되는 풍경을 그 과정과 함께 읊고 있다. 이 시조는 연마다 지속적으로 위와 아래의 대조에 의한 갈등구조로 짜여있다. 위는 솔잎이 반짝이고 아래는 시내가 그늘지고 위는 청기와가 빛나고 아래는 뜰이 비어 있고 위는 갈린 바위가 있고 아래는 닦인 모래가 있고 위는 해와 푸른 허공이 있고 아래는 폭포와 낙하가 있고 위는 바위층이 있고 아래는 굽이 도는 물이 있다.
그래서 아래의 계곡을 벗어나 위의 정상에 오르니 위는 허공이었는데 뜬구름이 일고 아래는 우럴었는데 굽어보는 봉우리가 있다. 그래서 이 전도된 상황에서 위 아래의 갈등이 해소되어 삶의 의지와 허무가 결국 합일하는 것이 아닐까. 관조 만이 아니라 화자의 감정의 변화와 의지와 욕망과 자연의 순수무구함과 고요함 뿐만 아니라 자연의 혼란과 한계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가람시조집은 명승지 기행,화초 중심의 식물,개인사가 깃들인 과거와 향토회고와죽음,시간의 순환과 사물 등 제재별로 5부로 나뉘여 있다. 이 제재들은 보편적으로 애틋한 정서를 자아내는 것들이다. 그는 이 애틋한 정서를 내면으로 하고 그 정경을 외면으로 하여 『가람시조집』을 펴냈다.
이제 후기 시조를 살펴보자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때 밥을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시도 읊고 싶구나
지난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 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가 그 얼마 다를 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태양이 그대로라면 지구는 어떨 건가 수소탄 원자탄은 아무리 만든다더라도 냉이꽃 한두 송이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냉이꽃」
「가람문선」의「일기초」에 의하면 이 작품은 1954년 12월에 써서 이듬해 지방신문인 <삼남일보>의 신년시로 발표하였다. 이 때는 휴전협정이 조인된 지 겨우 일년이 지난 극히 어려운 시기였다. 잠과 밥과 시는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의식주에 해당할 것이다. 수면과 식사는 당연히 주와 식이지만 시는 비유적이다. "때로는 시도 읊고 싶구나"는 "때로는 새옷도 입고 싶구나"의 변형일 수 있다. 시인에게는 가끔가끔 시를 짓는 것은 사람들이 가끔가끔 새 옷으로 갈아 입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삶의 요소를 충족시킬 수 없는 비참한 시기에 처한 것이다.
방과 곶간들이 모두 잿더미 되고 장독대마다 질그릇 쪼각만 남았으니 게다가 움이라도 묻고 다시 살아봅시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지루한 고통보다는 차라리 자살이 쾌하다 그 전쟁 끝에 강도는 자주나고 해마다 풍년은 들어도 주려 죽게 되었다 「한 하소연」
쓰일 듯 쓰일 듯하여 붓은 던질 수 없고 문장만으로 배는 채워지지 않는다. 원컨대 오는 해마다 풍년이나 드소서 「갈보리」
전쟁으로 황폐할 대로 황폐한 이 땅에서 의식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시대 상황에 시나 읊는 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노릇일 것이다. 의와 식의 당위와 시작의 열망이 무시되는 현실에서 그의 전기 시와 같이 이미저리를 형성하면서 감정을 객관적 상관물속에 은폐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2연의 새날의 꽃과 새소리는 시의 제재이다. 시는 새로운 발견에 대한 경이와 목소리이다. 이 새날은 바로 현재 시점의 올봄과 올여름이다. 이 새로운 꽃과 새소리에도 시를 쓸 수 없는 상황을 화자는 한탄하고 있다.
가까이 멀리에서 제서 쌍져울다 외로 울다 연달아 울다 둑 끈쳤다 다시 운다 그소리 단조하고 같은 양 해도 자세 들으면 이놈의 소리 저놈 의 소리 다 다르구나 「풀버레」
같은 산수화조를 보더라도 그것이 다 다른 줄로 아는 이라야 한다. 옛시조 에서나 어느 시기에서 보면 산수화조를 그대로 머릿속에 넣어두고는 어느 산수화조를 보든지 한모양으로 하여 그게 그거라 해서는 아닌된다.<夫物之不齊,物之情也>라 하는 말과 같이 무슨 물건이든지 그것이 다른 성격이 있다. 이 다른 성격을 보고 아는 그 사람이 곧 시인일 수 있다.
그러나 화자는 이러한 빈궁의 상황에서 "그 얼마 다를까마는"이라고 오히려 그 다름을 부정하고 있다. 그 상이점이나 따지는 것은 현상황에서 사치에 불과하다. 이슨 시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곧 이어서 "새롭다고 않는가"로 이 부정을 부정한다. 새롭다고 말하는 것은 관습이요 세상이다. 작년과 올해의 꽃맵시가 다르고 새소리가 다른 것은 몰라도 새봄에 새 희망을 갖고 씨앗을 뿌리고 그 여름에 결실을 꿈꾸면서 곡식을 가꾸는 것은 농부의 소망이다.
원자탄을 만든다 해도 지구는 그대로인다 원자탄을 만든다 해도 생명은 못 만든다 로 이 중장은 양걸침말을 이루고 있다. 태양과 지구 수소탄과 원자탄 등 거대한 태양계와 거대한 파괴력을 말하자마자 곧 냉이꽃 한두 송이가 이어진다. 이런 대조의 아이러니는 우리의 시선을 그 하찮은 냉이꽃에 집중시키도록 이를 강조한다. 냉이는 가장 먼저 나오는 봄나물이다. 겨울을 나는 동안 벌써 양식이 떨어진 집에서는 이른 봄 냉이를 캐다 쌀 몇 알 넣고 멀건죽을 끊여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는 춘궁기의 양식이다.
어떠한 전쟁의 능력도 하찮은 냉이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도 이를 파괴할 수도 없다. 이것이 이 작품의 표면적인 의미이다. 이 작품은 많은 동어반복을 하고 있다. 이렇한 동어반복뿐만 아니라1.2연의 초장과 중장이 대구를 이루어 우리 시에는 없는 각운 이상의 효과를 낸다. 그리고 각연의 종장 끝어절은 가람 시에 흔한 "-다"어미가 아닌 "-고나,-는가,-을까" 등으로 그리고 3연의 초장도 "-ㄴ가"로 맺고 있다. 이는 감탄과 설의 이지만 설의 역시 감탄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영탄조일 수밖에 없다.
이 영탄은 의견과 주장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내용 속에는 어떤 풍경이 은폐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시 현실의 모습이다. 가람 후기시에는 그 서정 속에 서경이 앙금되어 떠 있는 것이다.
4. 결 말 이상으로 우리는 가람 시의 전기 즉 가람시조집의 세계와 후기 즉 가람문선의 후기 시편의 세계를 각각 한 편씩의 시를 해석하면서 살펴보았다. 한편의 시가 시인의 시의 세계를 대표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시인도 생활인인 이상 그의 시작품에는 여러 세계가 전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제재를 가지고 그의 시의 세계를 논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제재를 가지고 그의 시의 세계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이도 필요하지만 시에 깃들인 사상,서적 기법 등 여러가지가 그 척도가 될 것이다.
가람의 시 세계는 이 제재와 사상과 기법이 서로 쌍을 이룬다. 전기의 자연과 후기의 인생, 전기으 선비 정신과 후기의 생활인의 정신,전기의 서경과 후기의 서정이 함께 따로 따로 하나으 범주를 이루면서 그의 시조시가 전개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서경과 서정이다. 극단적인 서경은 즉물시가 되고 극단적인 서정은 영탄시가 된다. 그러나 가람은 그 서경 속에 그보다 더 내밀한 서정을 은폐하고 그 서정 속에 그보다 더 돌출된 서경을 폐쇄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서경이 곧 서정이요 서정이 바로 서경이다.
이병기 대표 작품
대성암 / 젖 / 별 / 난초4 / 고향으로 돌아가자
대성암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서리 빨간 딸기 파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쪽이 발 끝에 부딪치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뫼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깊은 바위굴에 솟아나는 맑은 샘을 위로 뚫린 구멍 내려오던 공양미를 이제도 의상을 더불어 신라시절 말한다
별이 쨍쨍하고 하늘도 말갛더니 설레는 바람끝에 구름은 서들대고 거뭇한 먼산 머리에 비가 몰아 들온다.
출처 : 네이버 오픈백과 / 이병기의 문학세계 ☜
반론 짓는 시조 읽는 시조를 강조한 나머지 부르는 시조와의 화해를 전연 고려하지 않은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시조의 과거가 창(唱)의 흐름이었다는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연작의 문제인데, 과거의 것은 각수(各首)가 독립된 상태였던 것을 제목의 기능을 살리고 현대시작법을 도입하여 여러 수가 서로 의존하면서 전개, 통일되도록 짓자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창작으로 실천하여 완성한 이가 이병기 자신이었고, 오늘날 형태의 발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엄격히 보면 시조의 전통적 연작법으로서는 어긋나는 것이다.
출처 : 시조를 혁신하자 /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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