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인가 창작인가 / 이시환 － ◀ 원문보기 클릭 ▶

서지월의 ‘진달래 산천’과 김승해의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의 관계 분석 / 이시환1. 서지월의 ‘진달래 산쳔’에 대하여진달래 산천 / 서지월 진달래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 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 소리 쿵쿵쿵쿵 가슴 두들겨 옵니다. 기름진 땅 착한 백성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난 듯 큰일난 듯 발병이 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 떨기 꽃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태백 달 밝은 밤 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어머니 누나들 그런 날의 山川草木 얄리얄리 얄랴셩 얄랴리 얄라, 쿵쿵쿵쿵 물방아 돌리며 달을 보고 흰 적삼에 한껏 붉은 진달래꽃물 들었었지요 서지월의 작품 ‘진달래 산천’은, 4연 16행으로 짜여진 서정시이나 4음보 외형률을 느끼게 하는 정형시에 가깝다. 그리고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는 틀 안에서 의미가 전개되고 있다. 곧, 제1연은 ‘초가집 한 채’가 어떤 정황 속에 놓여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고, 제2연은 ‘착한 백성’과 ‘아리랑 고개’로 제유(提喩)되고 있는, 우리 역사 속에서의 가난과 수난으로 점철된 한민족의 삶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1연의 ‘진달래꽃’, ‘초가집 한 채’, ‘다듬이 소리’가 제2연의 ‘백성’, ‘아리랑고개’로 연계되어 그 의미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제3연은 의미 전개상에 큰 변화가 일어난 곳으로서, 작품의 중요한 소재인 ‘진달래꽃’과, ‘다듬이 소리’와 ‘초가집 한 채’로 제유되는 백성의 삶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곧, 진달래꽃이 오천 년을 흘러온 우리의 역사 그 자체이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라면, 그 역사 그 정체성이라는 나무에 매달려 피어있는 꽃송이 하나 하나는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백성들은 ‘이태백의 풍류’를 알고 일상 속에서 즐겨 왔다는 것이다. 제3연의 ‘다듬이 소리’는 제4연의 ‘물방아’ 돌리는 일과 함께 생활이자 풍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비유어이다. 그리고 제4연은 제3연에서 말한 풍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드러낸 결구(結構)로서, 백의민족의 소박한, 자연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삶이 역사 속에서 진행되어 왔음을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겉으로는 진달래꽃을 노래한 듯 보이나 실은 과거 우리 민족의, 특히 여성의 한 맺힌, 그렇지만 친자연적 환경 속에서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소박한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진달래꽃을 우리 민족 내지는 민족사와 동일시함으로써 가능해지고 있고, 그 동일시는 진달래꽃의 붉은 빛깔과 그것이 실제로 조상들의 삶터와 가깝게 있어왔다는 그것의 분포도에 연유하고 있다. 특히, 진달래꽃의 붉음은 온순하고 착하지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면면이 역사를 이루어온 한민족 가운데에서도 여성의 끈질긴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그래서 굳어져 버린 관념 속의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서 시인은 청산별곡의 후렴구와 아리랑과 기타 민요 등에 의존하고 있고, 또한 <초가집 - 다듬이 소리 - 물방아 - 달 -진달래>라는 축과 <버선발 - 흰 적삼 - 어머니 누나 - 백성 - 아리랑고개 - 진달래>라는 두 축으로 의미를 전개시키고 있지만 이는 역사 속에서 고정된 상상력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시인의 뛰어난 감각적 인식능력이 반영된 부분이 있다면 “한 떨기 꽃 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라는 어구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표현은 이미 먼저 쓴 시인들이 있고, 그 뒤로 유사한 표현들이 양산되어 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군가가 먼저 썼다고 해서 쓰지 말라거나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뒤 문맥상에 그 표현이 어느 정도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다음이 그런 표현의 신선도일 것이다. 두 번째 쓰이는 문장은 첫 번째 쓰인 문장보다 감응이 떨어질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예를 들자면, 조지훈의 작품 ‘승무’에서 하늘에 떠 있는 달은 하나뿐인데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라고 표현한 것이나, 서지월의 작품 ‘진달래 산천’에서 “한 떨기 꽃 속에 초가집 한 채씩”이 있다고 한 것이나, 문제의 신춘문예 당선작인 김승해의 ‘소백산에 사과가 많다’에서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절 한 채 들었다”라거나 “나무는 한 알 사과마다 편종 하나 달려는 것인데”라는 일련의 표현들은 다 같다고 나는 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시인의 진정한 능력은 지금껏 남들이 쓰지 않은 문장을 먼저 짓는 일일 것이라고. 그러나 이처럼 뛰어난 감각적 인식능력이 반영된 표현들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져다가 새로운, 혹은 유사한 시들을 지어내는 경향은 -인터넷시대인 요즈음 아주 두드러지고 있어 모방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지만- 변화 발전이라는 역사 속으로 용해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 분명한 모방과 표절이 항존하고 있지만 말이다. 2. 김승해의 작‘소백산엔 사과가 많다’에 대하여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 / 김 승 해 소백산엔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절 한 채 들었다 푸른 사과 한 알, 들어 올리는 일은 절 한 채 세우는 일이라 사과 한 알 막 들어 올린 산, 금세 품이 헐렁하다 나무는 한 알 사과마다 편종 하나 달려는 것인데 종마다 귀 밝은 소리 하나 달려는 것인데 가지 끝 편종 하나 또옥 따는 순간 가지 끝 작은 편종 소리는 종루에 쏟아지는 자잘한 햇살 실핏줄 팽팽한 뿌리로 모아 풍경 소리를 내고 운판 소리를 내고 급기야 안양루 대종 소리를 내고 만다 어쩌자고 소백산엔 사과가 저리 많아 귀 열어 산문(山門) 소식 엿듣게 하는가 김승해의 작품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는 전체 3연 18행으로 짜여진 자유시이다. 이 작품에서는 두 가지 큰 전제가 있어서 -물론, 그것은 시인의 일방적인 판단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전개시킬 수가 있었다. 그 두 가지 큰 전제란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절 한 채 들었다.(제2행)’라는 판단과 ‘나무는 한 알 사과마다/편종 하나 달려는 것인데/종마다 귀 밝은 소리 하나 달려는 것인데’라는 판단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큰 판단이 전제가 되어 나머지 작은 판단들을 전개시켜 시인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작은 판단들이란 무엇인가? 곧, 첫 번째 큰 판단에서 파생되는 작은 판단들은, 푸른 사과 한 알을 들어 올리는 일은 절 한 채를 세우는 일이고, 사과 한 알을 들어 올려 산의 품이 헐렁해졌다는 것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 큰 판단에서 파생되고 있는 작은 판단들은, 가지 끝에 매달린 편종 하나를 또옥 따는 순간 가지 끝에서 나는 작은 편종 소리는 종루에 쏟아지는 자잘한 햇살이고, 나무는 실핏줄 팽팽한 뿌리로 모아(무엇을 모은다는 것인지 그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어 임의로 유추해야 하지만) 풍경 소리를 내고, 또한 운판 소리를 내고, 급기야는 안양루 대종 소리를 낸다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시인은 사과나무를 절[사찰]과, 그리고 사과를 편종과 각각 동일시하고 있으며, 또한 사과 따는 일을 종을 치는 일로 동일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종을 친다는 것은 ‘귀 밝은 소리’라는 어구와 ‘햇살’, ‘풍경소리’, ‘운판소리’, ‘대종소리’ 등 일련의 시어들이 내포하고 있는, 불명확한 의미로 부여하고 있다. 단지, 여기서 사과를 땄을 때에 나는 편종 소리가 종루에 쏟아지는 자잘한 햇살로 감각적 전이(轉移), 곧 공감각적 표현이 이루어지고 있다. 흔히 시인들과 평자들에게는 그런 표현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시 그렇다면, 그 동일시라는 것 때문에 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는데 문제는 그 동일시 자체가 시인의 일방적인, 주관적인 판단이며, 그 판단들 간에 인과관계가 명료하지 않아 모호한 상태에서 독자들이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장치 자체가 표현의 한 가지 기교라면 기교이겠으나 나에게는 상투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런 판단을 내리게 했는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궁극적으로 시인이 무엇을 말했는가가 바로 나의 판단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곧, 이 작품의 결구(結構)인 “어쩌자고 소백산엔 사과가 저리 많아/귀 열어 산문(山門) 소식 엿듣게 하는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인은 소백산에 사과가 많아서 산문(山門) 소식을 엿듣게 됐다고 스스로 감탄하는 것이지, 아니면 후회하는 것인지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시인이 말한 ‘산문 소식’이라는 시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인데, 그것은 사과나무에서 한 알의 사과를 따는 일이 종을 치는 일이고, 종을 치는 일은 소리[법문: 부처의 가르침]를 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 보면, 산에는 절이 있고 절에서는 종을 치는 일을 하듯이, 소백산에는 사과나무가 있고, 그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 하나 하나는 작은 편종 하나 하나가 되고, 사과나무가 힘을 모아 편종을 치면 결국엔 대종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여, 시인은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를 통해서 편종을 떠올렸고, 그 편종을 통해서 소리 내는 절 안의 풍경, 운판, 대종 등을 떠올린 셈이다. 아마도 평자는 시인의 그런 생각 자체를 커다란 깨달음 정도로 판단한 모양이다. 나에게는 상투적인, 좋다고 여기는 시를 쓰기 위해 꾸미고 직조해 내는 문장으로 구축되는, 책임질 수 없는 진실로 여겨질 뿐인데... 특히, 문학에서는 먼 거리에 있는 자연현상들 간의 관계를 가까운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그것을 -불가(佛家)의 사상과 무관하지 않지만- 어떤 철학적 기반을 둔 상상력의 표현으로 높이 평가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예를 들면, 미당의 작품인 ‘국화 옆에서’에서 소쩍새가 울고, 청둥 번개가 치는 현상과 국화가 피는 현상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지만 크게 보아 밀접한 상관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것이나, 이 작품에서처럼 사과나무가 사과를 통해서 대종소리를 낸다고 보는 것 등이다.그러나 이제는 한번쯤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유형의 시들이 영문으로 번역되었을 때에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가를. 그리고 작품의 겉모양새만 바뀌어가고 있지 대상을 보는 철학적 안목이나 시각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우리 시인들은 다 같이 고민해 보아야 할 줄로 믿는다. 어떤 이는 김승해의 이 작품이 이보다 먼저 중앙일보에 소개된 서지월의 작품 ‘개나리 산천’을 모방 내지는 표절을 하였다고 주장하나 내가 볼 때에는 중앙일보에서 주관한 제4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김기택의 작품 ‘어떻게 기억해냈을까’를 모방한 작품이라는 판단이 든다. 미리 말하지만, 시인은 중앙일보를 통해서 시를 공부하고 응모는 조선일보에 한 영민함을 보이고, 그 영민함이 서지월의 작품에서 감각적인 인식능력이 돋보이는 어구에서 착안하여 유사한 표현을 낳았고, 김기택의 작품을 통해서는 창작의 모티브인 사과를 얻었고, 그 작품이 높이 평가되어지는 이유랄까 부분을 나름대로 이해, 수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높이 평가 되어지는 이유와 부분이란 한 편의 시에서 시인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 하는 지에 대한 이해이다. 곧, 시의 주된 내용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삶에 긍정적인 의미와 꿈을 주어야 하고, 그런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현상의 질서나 아름다움에 대한 지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현방식은 인간 삶과 자연과의 관계 설정이 단정적인 진술보다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부추기면서 작품의 주제를 어렵지 않게 인지시키는 그 범위 내에서의 모호성이 있는 간접 표현과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3. 모방과 표절에 대하여우리가 시를 짓다보면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거에 읽었던 남의 작품의 어구(語句)나 문장(文章)을 쓰고, 그 같은 사실이 지각되는 순간 스스로 놀라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남의 작품의 영향을 받아서 무의식적으로 빌려 쓰고서도 그가 나의 것을 가져갔다고 말하기도 한다. 독서의 내용은 뇌의 저장창고에 있다가 필요시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나는 비의도적인, 무의식적인 모방이라고 하고 싶다. 이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교육적인 존재이기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그런 모방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창적인 문장을 지어내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어제의 것을 전제로 하여 오늘 변화 발전하는 과정이고, 그 모습으로서 여기고 싶다.반면, 특정인의 특정 작품을 접하고서 아주 감동적이다거나 자신이 쓰고자하는 작품 내용 전개상에 필요하여 어구나 문장을 원작자의 허락없이 가져가 사용하되, 그대로 혹은 그 일부를 변형시켜 사용하는 것은 의도적인, 의식적인 모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창작하는 과정에서 이도 불가피한 면이 없지는 않으며, 그럴 때에는 반드시 원작자의 이름과 작품명을 어떠한 형태로든 밝혀야 하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이요, 양식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빌려 쓰는 어구나 문장이 자신의 작품 앞뒤 문맥 속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기여하고 있느냐이다. 남의 어구나 문장을 빌려 쓰고도 원작보다 못하다면 단순한 모방이라 단정질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지 않고 원작과 다르게 활용되었거나 더 깊은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면 창조적 모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시인들은 보잘것 없는 남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그 속의 특별한 어구나 문장에서 창작의 모티브를 제공받아 원작보다 더 깊은, 아니 원작과 전혀 다른 작품을 창작해 내는데 바로 그런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대체로, 모방은 창작을 위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며, 어느 정도의 창의성을 띠게 마련이다. 따라서 모방은 얼마든지 있을 수는 있으나 모방작이 최초의 창작품보다 높게 평가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표절은 말 그대로 남의 시구나 문장을 포함하여 작품의 구조나 내용 등의 일부나 전부를 원작자의 양해나 허가 없이 자기의 것으로 몰래 사용하는 것이므로 창의성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과 같아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훔치는 자 스스로는 그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라 훔친 물건(작품 속의 문장이나 구조나 내용 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변형시켜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훔쳤다는 사실을 피해보려 애를 쓰는 경향을 띤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어디까지를 표절로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왕왕 설전을 펴거나 법적 시비거리가 되기도 한다. 개인에게는 근원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또 같은 느낌,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더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거나 특정 작품의 중요 어구, 문장, 중요한 내용, 이야기 전개상의 구조, 기타 두드러진 특징 등을 몰래 가져가 자기의 것으로 사용, 발표하는 행위는 원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과거로부터 있어 온, 특히 서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창작의 한 기법으로서 특정 작품의 구성요소를 변용하여 유사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패러디(parody)가 인정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패러디에 의한 작품이 아무리 재미있고, 원작보다 감동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원작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작가의 창의적 노력과 능력에 대해서는 원작자보다 높게 평가되어서는 곤란하다.문제의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김승해의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는 이미 언급했듯이 서지월의 중요 문장을 변형시켜 쓰고 있고, 제4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김기택의 ‘어떻게 기억해 냈을까’의 ‘사과’를 통해서 직접적인 모티브를 얻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고, 작품의 주제나 내용 전개상의 구조 등에 있어서도 ‘의도적인’ 모방의 흔적이 역력하다고 보아진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창의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 표절로 단정짓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개인적으로 나에게는 누가 누구의 작품을 모방 내지는 표절을 했느냐 안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사한 작품들을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하는 심사위원들의 안목과 논리적 판단력과 독서력에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응모자 내지는 시인들의 창의성과 독창성 판단을 못하거나 가볍게 여긴 결과가 아닌가 싶다. 동시에 시의 겉모습과 그 치장에 비중을 두는 우리 시단의 한 경향을 읽을 수 있고, 그런 현상은 자칫 시인의 진실을 간과해 버릴 우려가 크다.(끝) 출처: http://www.sentencei.com/membership/view.php?code=novel&fid=31&num=28&ref=28&re_st=0&re_le=0&offset=1&keyfield=

ㆍ작성자	검정삿갓
ㆍ작성일	2005/08/27 (토)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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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 류	기타

ㆍ조회: 3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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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인가 창작인가 / 이시환

서지월의 ‘진달래 산천’과 김승해의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의 관계 분석 / 이시환

1. 서지월의 ‘진달래 산쳔’에 대하여

진달래 산천 / 서지월
진달래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 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 소리
쿵쿵쿵쿵 가슴 두들겨 옵니다.

기름진 땅 착한 백성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난 듯 큰일난 듯 발병이 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 떨기 꽃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태백 달 밝은 밤 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어머니 누나들 그런 날의 山川草木
얄리얄리 얄랴셩 얄랴리 얄라,
쿵쿵쿵쿵 물방아 돌리며 달을 보고
흰 적삼에 한껏 붉은 진달래꽃물 들었었지요

서지월의 작품 ‘진달래 산천’은, 4연 16행으로 짜여진 서정시이나 4음보 외형률을 느끼게 하는 정형시에 가깝다. 그리고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는 틀 안에서 의미가 전개되고 있다. 곧, 제1연은 ‘초가집 한 채’가 어떤 정황 속에 놓여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고, 제2연은 ‘착한 백성’과 ‘아리랑 고개’로 제유(提喩)되고 있는, 우리 역사 속에서의 가난과 수난으로 점철된 한민족의 삶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1연의 ‘진달래꽃’, ‘초가집 한 채’, ‘다듬이 소리’가 제2연의 ‘백성’, ‘아리랑고개’로 연계되어 그 의미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제3연은 의미 전개상에 큰 변화가 일어난 곳으로서, 작품의 중요한 소재인 ‘진달래꽃’과, ‘다듬이 소리’와 ‘초가집 한 채’로 제유되는 백성의 삶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곧, 진달래꽃이 오천 년을 흘러온 우리의 역사 그 자체이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라면, 그 역사 그 정체성이라는 나무에 매달려 피어있는 꽃송이 하나 하나는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백성들은 ‘이태백의 풍류’를 알고 일상 속에서 즐겨 왔다는 것이다. 제3연의 ‘다듬이 소리’는 제4연의 ‘물방아’ 돌리는 일과 함께 생활이자 풍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비유어이다.

그리고 제4연은 제3연에서 말한 풍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드러낸 결구(結構)로서, 백의민족의 소박한, 자연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삶이 역사 속에서 진행되어 왔음을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겉으로는 진달래꽃을 노래한 듯 보이나 실은 과거 우리 민족의, 특히 여성의 한 맺힌, 그렇지만 친자연적 환경 속에서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소박한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진달래꽃을 우리 민족 내지는 민족사와 동일시함으로써 가능해지고 있고, 그 동일시는 진달래꽃의 붉은 빛깔과 그것이 실제로 조상들의 삶터와 가깝게 있어왔다는 그것의 분포도에 연유하고 있다. 특히, 진달래꽃의 붉음은 온순하고 착하지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면면이 역사를 이루어온 한민족 가운데에서도 여성의 끈질긴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그래서 굳어져 버린 관념 속의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서 시인은 청산별곡의 후렴구와 아리랑과 기타 민요 등에 의존하고 있고, 또한 <초가집 - 다듬이 소리 - 물방아 - 달 -진달래>라는 축과 <버선발 - 흰 적삼 - 어머니 누나 - 백성 - 아리랑고개 - 진달래>라는 두 축으로 의미를 전개시키고 있지만 이는 역사 속에서 고정된 상상력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시인의 뛰어난 감각적 인식능력이 반영된 부분이 있다면 “한 떨기 꽃 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라는 어구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표현은 이미 먼저 쓴 시인들이 있고, 그 뒤로 유사한 표현들이 양산되어 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군가가 먼저 썼다고 해서 쓰지 말라거나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뒤 문맥상에 그 표현이 어느 정도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다음이 그런 표현의 신선도일 것이다.

두 번째 쓰이는 문장은 첫 번째 쓰인 문장보다 감응이 떨어질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예를 들자면, 조지훈의 작품 ‘승무’에서 하늘에 떠 있는 달은 하나뿐인데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라고 표현한 것이나, 서지월의 작품 ‘진달래 산천’에서 “한 떨기 꽃 속에 초가집 한 채씩”이 있다고 한 것이나, 문제의 신춘문예 당선작인 김승해의 ‘소백산에 사과가 많다’에서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절 한 채 들었다”라거나 “나무는 한 알 사과마다 편종 하나 달려는 것인데”라는 일련의 표현들은 다 같다고 나는 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시인의 진정한 능력은 지금껏 남들이 쓰지 않은 문장을 먼저 짓는 일일 것이라고. 그러나 이처럼 뛰어난 감각적 인식능력이 반영된 표현들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져다가 새로운, 혹은 유사한 시들을 지어내는 경향은 -인터넷시대인 요즈음 아주 두드러지고 있어 모방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지만- 변화 발전이라는 역사 속으로 용해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 분명한 모방과 표절이 항존하고 있지만 말이다.

2. 김승해의 작‘소백산엔 사과가 많다’에 대하여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 / 김 승 해
소백산엔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절 한 채 들었다
푸른 사과 한 알, 들어 올리는 일은
절 한 채 세우는 일이라
사과 한 알
막 들어 올린 산, 금세 품이 헐렁하다

나무는 한 알 사과마다
편종 하나 달려는 것인데
종마다 귀 밝은 소리 하나 달려는 것인데
가지 끝 편종 하나 또옥 따는 순간
가지 끝 작은 편종 소리는
종루에 쏟아지는 자잘한 햇살
실핏줄 팽팽한 뿌리로 모아
풍경 소리를 내고
운판 소리를 내고
급기야 안양루 대종 소리를 내고 만다

어쩌자고 소백산엔 사과가 저리 많아
귀 열어 산문(山門) 소식 엿듣게 하는가

김승해의 작품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는 전체 3연 18행으로 짜여진 자유시이다. 이 작품에서는 두 가지 큰 전제가 있어서 -물론, 그것은 시인의 일방적인 판단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전개시킬 수가 있었다. 그 두 가지 큰 전제란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절 한 채 들었다.(제2행)’라는 판단과 ‘나무는 한 알 사과마다/편종 하나 달려는 것인데/종마다 귀 밝은 소리 하나 달려는 것인데’라는 판단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큰 판단이 전제가 되어 나머지 작은 판단들을 전개시켜 시인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작은 판단들이란 무엇인가? 곧, 첫 번째 큰 판단에서 파생되는 작은 판단들은, 푸른 사과 한 알을 들어 올리는 일은 절 한 채를 세우는 일이고, 사과 한 알을 들어 올려 산의 품이 헐렁해졌다는 것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 큰 판단에서 파생되고 있는 작은 판단들은, 가지 끝에 매달린 편종 하나를 또옥 따는 순간 가지 끝에서 나는 작은 편종 소리는 종루에 쏟아지는 자잘한 햇살이고, 나무는 실핏줄 팽팽한 뿌리로 모아(무엇을 모은다는 것인지 그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어 임의로 유추해야 하지만) 풍경 소리를 내고, 또한 운판 소리를 내고, 급기야는 안양루 대종 소리를 낸다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시인은 사과나무를 절[사찰]과, 그리고 사과를 편종과 각각 동일시하고 있으며, 또한 사과 따는 일을 종을 치는 일로 동일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종을 친다는 것은 ‘귀 밝은 소리’라는 어구와 ‘햇살’, ‘풍경소리’, ‘운판소리’, ‘대종소리’ 등 일련의 시어들이 내포하고 있는, 불명확한 의미로 부여하고 있다. 단지, 여기서 사과를 땄을 때에 나는 편종 소리가 종루에 쏟아지는 자잘한 햇살로 감각적 전이(轉移), 곧 공감각적 표현이 이루어지고 있다. 흔히 시인들과 평자들에게는 그런 표현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시 그렇다면, 그 동일시라는 것 때문에 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는데 문제는 그 동일시 자체가 시인의 일방적인, 주관적인 판단이며, 그 판단들 간에 인과관계가 명료하지 않아 모호한 상태에서 독자들이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장치 자체가 표현의 한 가지 기교라면 기교이겠으나 나에게는 상투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런 판단을 내리게 했는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궁극적으로 시인이 무엇을 말했는가가 바로 나의 판단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곧, 이 작품의 결구(結構)인 “어쩌자고 소백산엔 사과가 저리 많아/귀 열어 산문(山門) 소식 엿듣게 하는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인은 소백산에 사과가 많아서 산문(山門) 소식을 엿듣게 됐다고 스스로 감탄하는 것이지, 아니면 후회하는 것인지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시인이 말한 ‘산문 소식’이라는 시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인데, 그것은 사과나무에서 한 알의 사과를 따는 일이 종을 치는 일이고, 종을 치는 일은 소리[법문: 부처의 가르침]를 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 보면, 산에는 절이 있고 절에서는 종을 치는 일을 하듯이, 소백산에는 사과나무가 있고, 그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 하나 하나는 작은 편종 하나 하나가 되고, 사과나무가 힘을 모아 편종을 치면 결국엔 대종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여, 시인은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를 통해서 편종을 떠올렸고, 그 편종을 통해서 소리 내는 절 안의 풍경, 운판, 대종 등을 떠올린 셈이다.

아마도 평자는 시인의 그런 생각 자체를 커다란 깨달음 정도로 판단한 모양이다. 나에게는 상투적인, 좋다고 여기는 시를 쓰기 위해 꾸미고 직조해 내는 문장으로 구축되는, 책임질 수 없는 진실로 여겨질 뿐인데... 특히, 문학에서는 먼 거리에 있는 자연현상들 간의 관계를 가까운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그것을 -불가(佛家)의 사상과 무관하지 않지만- 어떤 철학적 기반을 둔 상상력의 표현으로 높이 평가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예를 들면, 미당의 작품인 ‘국화 옆에서’에서 소쩍새가 울고, 청둥 번개가 치는 현상과 국화가 피는 현상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지만 크게 보아 밀접한 상관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것이나, 이 작품에서처럼 사과나무가 사과를 통해서 대종소리를 낸다고 보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번쯤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유형의 시들이 영문으로 번역되었을 때에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가를. 그리고 작품의 겉모양새만 바뀌어가고 있지 대상을 보는 철학적 안목이나 시각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우리 시인들은 다 같이 고민해 보아야 할 줄로 믿는다.

어떤 이는 김승해의 이 작품이 이보다 먼저 중앙일보에 소개된 서지월의 작품 ‘개나리 산천’을 모방 내지는 표절을 하였다고 주장하나 내가 볼 때에는 중앙일보에서 주관한 제4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김기택의 작품 ‘어떻게 기억해냈을까’를 모방한 작품이라는 판단이 든다. 미리 말하지만, 시인은 중앙일보를 통해서 시를 공부하고 응모는 조선일보에 한 영민함을 보이고, 그 영민함이 서지월의 작품에서 감각적인 인식능력이 돋보이는 어구에서 착안하여 유사한 표현을 낳았고, 김기택의 작품을 통해서는 창작의 모티브인 사과를 얻었고, 그 작품이 높이 평가되어지는 이유랄까 부분을 나름대로 이해, 수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높이 평가 되어지는 이유와 부분이란 한 편의 시에서 시인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 하는 지에 대한 이해이다. 곧, 시의 주된 내용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삶에 긍정적인 의미와 꿈을 주어야 하고, 그런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현상의 질서나 아름다움에 대한 지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현방식은 인간 삶과 자연과의 관계 설정이 단정적인 진술보다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부추기면서 작품의 주제를 어렵지 않게 인지시키는 그 범위 내에서의 모호성이 있는 간접 표현과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3. 모방과 표절에 대하여
우리가 시를 짓다보면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거에 읽었던 남의 작품의 어구(語句)나 문장(文章)을 쓰고, 그 같은 사실이 지각되는 순간 스스로 놀라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남의 작품의 영향을 받아서 무의식적으로 빌려 쓰고서도 그가 나의 것을 가져갔다고 말하기도 한다. 독서의 내용은 뇌의 저장창고에 있다가 필요시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나는 비의도적인, 무의식적인 모방이라고 하고 싶다. 이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교육적인 존재이기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그런 모방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창적인 문장을 지어내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어제의 것을 전제로 하여 오늘 변화 발전하는 과정이고, 그 모습으로서 여기고 싶다.

반면, 특정인의 특정 작품을 접하고서 아주 감동적이다거나 자신이 쓰고자하는 작품 내용 전개상에 필요하여 어구나 문장을 원작자의 허락없이 가져가 사용하되, 그대로 혹은 그 일부를 변형시켜 사용하는 것은 의도적인, 의식적인 모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창작하는 과정에서 이도 불가피한 면이 없지는 않으며, 그럴 때에는 반드시 원작자의 이름과 작품명을 어떠한 형태로든 밝혀야 하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이요, 양식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빌려 쓰는 어구나 문장이 자신의 작품 앞뒤 문맥 속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기여하고 있느냐이다. 남의 어구나 문장을 빌려 쓰고도 원작보다 못하다면 단순한 모방이라 단정질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지 않고 원작과 다르게 활용되었거나 더 깊은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면 창조적 모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시인들은 보잘것 없는 남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그 속의 특별한 어구나 문장에서 창작의 모티브를 제공받아 원작보다 더 깊은, 아니 원작과 전혀 다른 작품을 창작해 내는데 바로 그런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모방은 창작을 위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며, 어느 정도의 창의성을 띠게 마련이다. 따라서 모방은 얼마든지 있을 수는 있으나 모방작이 최초의 창작품보다 높게 평가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표절은 말 그대로 남의 시구나 문장을 포함하여 작품의 구조나 내용 등의 일부나 전부를 원작자의 양해나 허가 없이 자기의 것으로 몰래 사용하는 것이므로 창의성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과 같아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훔치는 자 스스로는 그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라 훔친 물건(작품 속의 문장이나 구조나 내용 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변형시켜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훔쳤다는 사실을 피해보려 애를 쓰는 경향을 띤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어디까지를 표절로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왕왕 설전을 펴거나 법적 시비거리가 되기도 한다. 개인에게는 근원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또 같은 느낌,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더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거나 특정 작품의 중요 어구, 문장, 중요한 내용, 이야기 전개상의 구조, 기타 두드러진 특징 등을 몰래 가져가 자기의 것으로 사용, 발표하는 행위는 원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과거로부터 있어 온, 특히 서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창작의 한 기법으로서 특정 작품의 구성요소를 변용하여 유사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패러디(parody)가 인정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패러디에 의한 작품이 아무리 재미있고, 원작보다 감동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원작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작가의 창의적 노력과 능력에 대해서는 원작자보다 높게 평가되어서는 곤란하다.

문제의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김승해의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는 이미 언급했듯이 서지월의 중요 문장을 변형시켜 쓰고 있고, 제4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김기택의 ‘어떻게 기억해 냈을까’의 ‘사과’를 통해서 직접적인 모티브를 얻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고, 작품의 주제나 내용 전개상의 구조 등에 있어서도 ‘의도적인’ 모방의 흔적이 역력하다고 보아진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창의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 표절로 단정짓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누가 누구의 작품을 모방 내지는 표절을 했느냐 안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사한 작품들을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하는 심사위원들의 안목과 논리적 판단력과 독서력에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응모자 내지는 시인들의 창의성과 독창성 판단을 못하거나 가볍게 여긴 결과가 아닌가 싶다. 동시에 시의 겉모습과 그 치장에 비중을 두는 우리 시단의 한 경향을 읽을 수 있고, 그런 현상은 자칫 시인의 진실을 간과해 버릴 우려가 크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