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의 언어 의식과 시어 선택/백수인

- ≪가람시조집≫을 중심으로 - 백 수 인 /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목 차 Ⅰ. 서론 Ⅱ. 시조 혁신과 시어 1. 색채어의 활용과 변용 2. 고유어의 활용과 변용 3. 방언의 활용 4. 옛말 되살려 쓰기 Ⅲ. 마무리 Ⅰ. 서론가람 이병기만큼 우리말, 우리 글 사랑을 통해 우리 민족의 얼을 북돋은 시인도 드물다. 그는 일제치하 한성사범학교 재학 시절에 한글학자 주시경을 스승으로 모시고 “조선어문법”을 공부했으며, 그 정신을 돈독히 이어 받았다. 한성사범 졸업 후 여러 공립보통학교에서 조선어와 조선문학, 조선어 작문 등을 후학에게 가르쳤다. 1921년 조선어연구회에 참여했고, 1922년부터 휘문고보, 보성고보 등에서 조선어 작문을 가르쳤다. 그는 1926년 동아일보에 <시조란 무엇인가?>를 발표하여 시조 이론을 폈을 뿐만 아니라, 시조 창작을 통해 우리말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1930년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 1934년 진단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약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간단한 전기적 사실만으로도 그는 정신과 이론, 그리고 실제를 겸비한 국문학자이며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가람은 시조의 현대화를 통해 우리 민족 고유의 시가 형태인 시조를 현대에 계승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시조의 현대화는 <시조혁신론> 등 그의 시조에 대한 이론과 주장에서 비롯되었다.가람은 시조 창작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말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해야 하며, 어법, 문법, 맞춤법을 익히고 고금의 시가와 소설을 읽어 우리말의 성질, 형태, 묘미, 미감 등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시어란 우리말 중에서 씀직한 말을 뽑아 낸 것이며, 이는 시인 자신의 감각으로 분별하여 뽑아 써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특히, 표준어 지방어를 포함한 현대어는 물론 고어에서도 말을 캐어 시어로 다듬어 써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그의 시어관은 그의 시조혁신론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시조는 시의 한 형식이기 때문에 결국 언어로 표현되는 예술이다. 따라서 시조의 미적 효과는 언어를 통하여 발휘될 수밖에 없다. 시어는 리듬의 효과를 위한 ‘소리’, 혹은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연상’ 때문에 선택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가 낱말들의 유기적 관계로 짜여진 구조이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언어가 선택된다는 점이다. 특히 시조와 같이 일정한 틀을 가진 양식에서의 시어 선택은 문맥 이외의 구속력을 갖기 마련이다. 따라서, 시조에서의 시어 선택은 시인의 의식을 더욱 첨예하게 반영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이러한 측면에서 가람의 언어의식이 그의 시조에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 있는가를 살피는 일은 그의 시인 정신에 접근하는 의의 있는 일이라 하겠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의 전기시조 작품을 집대성한 ≪가람시조집≫(문장사, 1939)을 대상으로 시어 선택을 통한 언어 의식 구현 양상을 살피고자 한다.Ⅱ. 시조 혁신과 시어가람의 시조혁신론은 그의 글 <시조는 혁신하자>(동아일보, 1932.1.7)에서 주창한 시조 현대화의 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혁신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고시조이다. 그렇다고 고시조의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형태의 시조를 창조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는 민족 고유의 시형식인 시조시를 현대에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지속’의 의미와 현대에 알맞은 내용, 형식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야 한다는 ‘변혁’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가 내세운 방안은 실감실정(實感實情)을 표현하자, 취재의 범위를 확장하자, 용어의 수삼(數三)은 사용하지 말자, 격조(格調)의 변화를 꾀하자, 연작(連作)을 쓰자, 쓰는 법과 읽는 법을 신시와 같이 하자 등 여섯으로 나누어 설명되고 있다. 이 항목들을 언어의식과 관련시켜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다.첫째, 실감실정을 표현하자는 것은 시조의 내용과 관련된다. 시인 자신의 실생활에서 얻어진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주관적 서정과 객관적 서경이 시조의 내용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시조의 내용은 시인의 체험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고시조 가운데는 시적 대상에 대한 지은이 자신의 진솔한 감정의 표현보다는 공상적인 것, 한문투의 관용구, 교훈적 내용, 한시의 모방 등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둘째, 취재의 범위를 확장하자는 것은 시조의 소재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시조는 대체로 “시어가 추상적이고 존재적인 울 속에 枯淡美 아니면 山水畵美로 계열화된다.” 이러한 고시조가 갖는 소재의 편협성은 유교적 이념 탓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시조를 현대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편협성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 가람의 생각이다.셋째, 용어의 수삼은 세 가지 용어로 집약된 시어 선택에 관한 주장이다. 즉, 시어 선택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을 지적한 것으로 ‘한문투어 지양’, ‘套語排除’, ‘현대적 시어 수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문투어 지양’은 고시조에 흔히 쓰이는 ‘月沈三更’, ‘滿庭桃花’, ‘深山絶景’과 같은 한문구의 사용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투어 배제’는 고시조 종장에 자주 나타나는 ‘아희야’, ‘아마도’, ‘어즈버’, ‘어찌타’ 등이나 장의 종결에 나타나는 ‘-고야’, ‘-는구나’, ‘-가 하노라’ 등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주장이다. ‘현대적 시어 수용’은 생활의 변화에 따라 자연히 생기는 신조어 등 현대적 감각에 맞는 시어를 쓰자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시어 선택을 통한 현대 시조의 변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넷째, 격조의 변화는 곡조가 무너진 현대시조에서는 고시조가 지녔던 그 곡조의 자리에 시조의 품격이 유지되는 대치물을 놓아야 하는데, 그 대치물이 바로 '격조'라는 것이다. 이는 시조 장르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즉, 시조를 음악이 아닌 문학의 시각에서 인식하고, 의미와 운율의 복합적 상태인 격조를 통한 다양한 변이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다섯째, 연작을 쓰자는 주장은 현대의 복잡한 생활상을 담는 그릇으로 단수 시조형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 한 수의 시조로 완전한 예술적 문학으로 현대화시키기에는 시형의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연시조를 단시조가 갖는 압축미와 간결미, 장시조가 지닌 분방함과 사실성 등의 장점을 두루 취한 현대시조의 이상적 형태로 생각한 것이다. 이와 같은 “가람의 시조 형태론은 현대 자유시 시대에도 시조시가 공존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여섯째, 쓰는 법, 읽는 법은 시조는 제 가락에 맞추어 써야 하고, 잘 玩味하도록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중․종장을 3행, 6행 등 자유롭게 쓰되 시조의 전통적 주체의식을 갖는 형태를 잘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표기법에 있어서 시조다운 시조가 될 수 있도록 그 내용과 형식이 잘 조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람은 전통적인 맥을 이어 온 ‘부르고 듣는 시’에서 새로운 형태의 ‘쓰고 읽는 시’로의 확실한 변화를 인식하여, 이를 그의 시조론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이와 같이 가람은 한편으로는 시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현대에 알맞게 시조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조의 혁신이나 현대화는 어디까지나 이 양식이 갖는 전통성과 상호 견제하는 가운데 시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가 시조 창작에서 시어를 선택하여 부려쓰는 것은 시조의 현대화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가람의 시어를 색채어, 고유어, 방언, 옛말로 나누어 그 양상을 살펴보기로 한다.1. 색채어의 활용과 변용우리말 색채어 형용사는 고유 색채어인 ‘검다, 희다, 누르다, 푸르다, 붉다’ 등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기본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어휘 분화와 분절을 통해서 색상의 정도, 안색표현, 혼색표현, 색조형태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가람의 시조에는 이러한 다섯 가지 빛깔에 대한 우리말 표현을 독특하게 활용하여 시조의 맛을 더하고 있다. 단순한 색채어의 표현뿐만 아니라, 색채들을 대비함으로써 실감 있는 서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그의 ‘新生한’ ‘寫生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에서 색채어 표현은 묘사와 서경에 기여하며, 또한 시인의 사물 인식에 대한 색채적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운 옛날 자최 물어도 알이 없고 벍언뫼 검은 바위 파란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大聖庵> 셋째 수이 작품에는 ‘벍언’, ‘검은’, ‘파란’, ‘하얀’ 등의 네 가지 색채어가 들어 있다. 특히 이 중 ‘벍언’은 ‘붉다’라는 기본 색채어를 색상의 정도와 어감을 고려하여 감각적으로 활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조는 시적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붉은, 검은, 푸른, 흰 빛깔을 조화롭게 대비시켜 그 효과를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시조 작품 속에 색채어로 표현된 어휘가 들어 있는 章을 추려 빛깔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검다> 城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 나고(大聖庵) 트이는 깜언 虛空에 봉이 새로 솟는다(迦葉峯) 옷처럼 검은 몸둥이 빛은 아니 나드니라(그리운 그날 二) 별과 바람 끝에 검을대로 검은 그손(曙海를 묻고) 머언뫼 껌언 바위도 옹기 종기 보이다(故土) 검은 방ㅅ장 안에 밤은 고히 가려 있다(戱題三) 검읏한 먼산 머리에 비가 몰아 들온다(道峯) 검고 영이 지고 늙고도 병든 몸이(垂松)‘검다’는 ‘검은’, ‘깜언’, ‘검을대로 검은’, ‘껌언’, ‘검읏한’ ‘검고’ 등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검을대로 검은’과 ‘검읏한’은 색상의 정도에 따른 표현이고, ‘깜언’과 ‘껌언’은 어감에 따른 빛깔의 뉘앙스를 나타내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예이다. <희다> 물소리 끊어지고 힌 구름 일어나고(溪谷) 푸른닢 욱어지고 히고 붉은 꽃도 피어(道峯)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피고(蘭草四) 푸른 잎 사이 사이 힌숭이 붉은 숭이(함박꽃) 하얀玉 깎아 세운듯 봉하나이 솟았네(天磨山峽) 앙상한 白樺서리 눈인양 돌도 히고(迦葉峯) 엷어 지는 안개, 해는 달처럼 히고(月出山) 하얀한 장지문 우에 그리나니 水墨畵를(水仙花) 빛나는 파란 닢새 파란 대공 하이한 꽃(玉簪花) 홀로 우뚝하여 파란 닢 하얀 껍질(白松) 골마다 한모양으로 힌바다이 되었다(扶蘇山) 눈같은 모래 비알 솔은 항시 푸르러라(曙海를 묻고) 바위도 히기도 히고 물은 몹시 프르다(叢石亭)‘희다’는 그의 시에서 ‘히다’를 기본형으로 간주하여 ‘힌’, ‘히기도 히고’ 등으로 나타나지만, ‘하얀’, ‘하얀한’, ‘하이한’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하얀한’, ‘하이한’은 흰 빛깔에 대한 가람만의 창조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활용하고 있는 데에는 한편으로 시조 리듬을 염두에 두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화로운 어감을 고려한 듯하다. 그의 시조에서 흰 빛깔은 단독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개 푸른(靑, 綠), 붉은 빛과 어울려 대비적으로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누르다> 빩앙이 노랑이로 어엿비 단장하고(戱題四, 분꽃) 몹시 얽은 얼굴 푸르고 누르지만(戱題四, 여지)≪가람시조집≫에서 노란색 계열의 표현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단 두 군데 나온다. ‘노랑이’는 분꽃을 의인화하기 위해 명사형을 선택한 것이고, ‘누르지만’은 여지의 아름답지 못한 겉모습의 묘사를 위해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노랑이’는 양성모음의 밝은 음조를 드러내고, ‘누르지만’은 음성 모음으로 어둡고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푸르다> 푸른닢 욱어지고 히고 붉은 꽃도 피어(道峯) 푸른 잎 사이 사이 힌숭이 붉은 숭이(함박꽃) 한손에 해를 가리고 푸른 虛空 바라본다(溪谷) 푸른 뫼와 숲울 해골이 거의로다(追悼二) 몹시 얽은 얼굴 푸르고 누르지만(戱題四, 여지) 御苑 넓은 언덕 버들은 푸르르고(봄 二) 가로선 애나무들 싱싱히 푸르도다(바람) 눈같은 모래 비알 솔은 항시 푸르러라(曙海를 묻고) 바위도 히기도 히고 물은 몹시 프르다(叢石亭) 조각 조각이 파란 하늘 트이고(月出山) 빛나는 파란 닢새 파란 대공 하이한 꽃(玉簪花) 홀로 우뚝하여 파란 닢 하얀 껍질(백송) 파란 못물 우에 비오리 한雌雄이(봄 二) 욱어진 파란 닢들을 사르랸들 하여라(戱題四, 맨드람이) 퍼런 닢 짙은 그늘 살고 있는 퍼런 버레(葡萄)가람 시조에서의 색채어 중 가장 빈번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 ‘푸르다’의 활용이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푸르다’는 ‘푸른’, ‘푸르고’, ‘푸르르고’, ‘푸르도다’, ‘푸르러라’, ‘프르다’, ‘파란’, ‘퍼런’ 등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푸르다’의 표현 대상은 ‘닢’, ‘나무’, ‘버들’, ‘솔’ 등 식물이 대부분이고, 가끔 ‘물’, ‘허공’, ‘하늘’이 되기도 한다. <붉다> 푸른닢 욱어지고 히고 붉은 꽃도 피어(道峯) 푸른 잎 사이 사이 힌숭이 붉은 숭이(함박꽃) 울고난 그눈과 같이 지는 달도 붉어라(돌아가신날) 벌리는 그입술 안은 연연히도 붉어라(戱題四, 여지) 풀섭 바위서리 밝안 딸기 패랑이꽃(大聖庵) 새로 드는 丹楓닢마다 밝안하고(萬瀑洞) 저건너 벍언 담머리 서있는 白松나무(白松) 벍언 모래 비알 풀한닢 아니 나고(周時經先生의 묻엄) 햇살이 쏘는 곳에 벍언한 봉이 솟고(扶蘇山) 곱게도 드는 단풍 봉마다 빩어지고(天磨山峽) 빩앙이 노랑이로 어엿비 단장하고(戱題四, 분꽃)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피고(蘭草四)대개 '붉다'는 ‘붉은’, ‘붉으니’, ‘붉어서’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가람은 이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붉은 외에도 ‘밝안’, ‘밝안하고’, ‘벍언’, ‘벍언한’, ‘빩어지고’, ‘빩앙이’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발갛다’, ‘벌겋다’, ‘빨갛다’ 등의 활용과 변용이다. 특히 시인에게 붉은 빛으로 인식된 대상은 ‘꽃’, ‘달’, 입술로 은유된 열매(여지), ‘딸기’, ‘단풍’, ‘모래 비알’, ‘봉’ 등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가람은 색채어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변용,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조의 시적 이미지 창조와 묘사와 서경을 실감 있게 표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가람이 한자어 계열의 색채어를 지양하고 고유어 계열의 색채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말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는 데에 기여 한 것으로 판단된다.2. 고유어의 활용과 변용현대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고유어보다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가람은 이러한 언어 현실을 인식하고 한자어를 제한하여 쓸 것을 제안했다. 즉 명사, 부사, 접속사로 된 것만 한자로 쓰고 동사, 형용사, 기타 말에는 한자말을 쓰지 말자고 했다. 나아가 “한자어의 명사, 혹은 부사, 접속사는 그대로 쓰겠다 하였으나 이것도 그리 남용할 것이 아니다. 될 수 있으면 순연한 우리말을 찾아 쓰거나 순연한 우리말처럼 된 것을 쓸 것이다.”라고 하여 고유어 사용을 더욱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이 그의 시조 창작에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를 살펴 보자 점읏한 西山머리 달은 이미 넘어가고 거리에 어린 안개 등ㅅ불은 조올고 있고 발자윽 헤뜨는 소리 가지온듯 멀어라 버들과 소나무 사이 으늑고 휘임한 그곳 서로 속살이며 쌍쌍히 오고 가고 등하나 아니 비치고 밤은 정히 깊었다 그립든 그이 하나 오날이나 맞나려니 험한 고개 넘어 어두운 골을 들어 온밤을 헤매이다가 도로 집을 드노라 -“밤 (二)” 전문이 작품에서 한자어는 ‘西山’, ‘등ㅅ불’, ‘쌍쌍히’, ‘등’, ‘정히’, ‘험한’의 여섯 개가 있다. 이들은 그의 주장대로 모두 명사, 부사, 형용사이고 우리말처럼 쓰이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밖의 시어들을 살펴 보면 가람은 이 시조에서 고유어를 가려 쓰고 있고, 때로는 묘미를 살리기 위해 고유어를 세심하게 변용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밑줄 친 시어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점읏한’은 ‘저물다’를 변용하여 쓴 말로 ‘저문 듯 한’의 뜻이고, ‘헤뜨는’은 ‘덤벙거리는’의 의미를 가진 고유어이다. ‘으늑고’는 ‘으늑하다’에서 ‘하’를 생략하고 활용한 말로 ‘잔잔하고 은근하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휘임한’은 현대의 바른 표기로는 ‘휘움한’으로 ‘약간 휘어져 있는’의 뜻을 지닌 순우리말이다. ‘속살이며’는 ‘속살거리며’의 변용으로 ‘낮은 목소리로 자꾸 속삭이며’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이 밖에도 고유어를 활용․변용하여 시어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많다. 그 구체적인 예를 살피자면 다음과 같다. 성그시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大聖庵) 가다가 닥어도 보며 휘휘한줄 모르겠다(大聖庵) 나붓이 그등을 숙이고 강이 또한 보인다(道峯) 손에 이아치고 바람으로 시달리다(梅花) 뒤에 좁은 언덕 그늘이 먼여 들고(뜰) 어린 잠을 깨어 버들 눈 먼여 뜨고 제먼여 봄인양하고 새움 돋아 나온다(芭蕉) 얼뜨인 개구리 마자 몸을 떨고 둥개인다(봄) 한마당 좁읏한 곳이 강을 문득 이루다(소나기)이처럼 가람은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캐내어 활용하거나, 그것을 시조시의 형태에 알맞게 변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3. 방언의 활용시에서의 방언 활용은 시어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다. 가람은 일찍이 현대 표준어, 고어와 함께 방언을 다듬어 시어로 써야 한다고 했다. 시어로서의 방언은 표준어가 가질 수 없는 의미와 음악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특히 방언은 향토적 서정을 더하는 시적 효과를 갖기도 한다. 따라서 가람은 방언을 시어로 취택해 다듬어 쓰기를 권장하였고, 스스로도 많은 작품에 방언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예를 살피자면 다음과 같다. 서대는 다람쥐가 길을 자주 알리우고(迦葉峯) 설레는 바람 끝에 구름은 서들대고(大聖庵) 미미히 이는 골바람 되오 상긋 하도다(萬瀑洞) 발자윽 헤뜨는 소리 가지온듯 멀어라 그앞에 바위 엉서리 물은 불어 흐른다(道峯) 헝기고 또 헝기어 알알이 닦인 모래(溪谷) 투술한 전북껍질 발달아 등에 대고(水仙花) 맵시며 차림차리 澹粧한 美人이다(玉簪花) 보낸 설흔네해 하잔흠이 아니리라(追悼二) 해만 설풋하면 우는 풀버레 그밤을 다하도록 울고 운다(풀버레) 담모르 굴어 오는 매미 소리 더욱 맑고(소나기) 논밭 한모르엔 조고마한 모정이다(故土) 으슷한 골을 찾어 성모르로 돌아가니(밤 一) 봉재 한모롱이 남어 있는 天文臺(戱題二) 실낱 만치도 볕은 아니 비쳐 든다(시름) 벍언 모래 비알 풀한닢 아니 나고(周時經先生의 묻엄) 눈같은 모래 비알 솔은 항시 푸르러라(曙海를 묻고)4. 옛말 되살려 쓰기가람은 “새로 들어오는 외래어는 함부로 쓰면서 제 조상들이 오래 써 오던 말을 못 쓸 이유가 어디 있느냐? 死語라도 부활시켜 쓰자.”고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다음의 일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조금도 어려워함이 없이 되지 못한 문자를 함부로 쓴다. ‘꼭’이라 할 데를 ‘절대로’이라느니, ‘억지’라 할 데를 ‘강제’라느니, 말마다 고린내나는 한문문자 투성이다. 흔히 여인들은 한문자나 배워 알면 더할 수 없는 자랑으로 여기고 쓰는 것이다. 그러나 쓰지 않아야 될 데에 쓰는 것이 안되었다. 일본말을 배우면 일본말로만, 영어를 배우면 영어로만 지껄이고 싶은가 보다.이처럼 가람은 한자어, 일본어, 영어를 함부로 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우리말 지키는 일을 우리의 책무로 여겼다. 따라서, 가람이 옛말을 되살려 시어로 다듬어 쓰자고 주장한 데는 몇 가지의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외래어 배격, 전통 계승, 시어 확장 등이 그것이다. 사니 산가하여 살음에 조이는 마음 괴오든 오누도 벙그러이 지내는 이날 이곳에 님을 뫼심이 다행하다 하더니 비인 손을 들고 궂은 길을 홀로 나서 이고비 저고비 어려운 고비 넘어 보람이 보이려 할제 어이 여혀 가신고 남기신 그자최에 피와 땀은 잦었느니 쓰리고 저리고 느꺼움 만이리오 다시금 그길을 밟아 이으실이 없으료 -<追悼(一) -故李重乾君-> 전문가람과 함께 “조선어연구회” 동인으로 활동했던 이중건을 추도하기 위한 이 작품은 동료애와 애도의 정을 세 수 연작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옛말은 밑줄 친 ‘괴오든’, ‘뫼심’, ‘-제’, ‘자최’ 등이다. 현대어로 고치면 ‘사랑하던’, ‘모심’, ‘적’ 혹은 ‘때’, ‘자취’가 될 것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 도처에는 옛말을 의도적으로 적절히 살려 쓴 예가 허다하다. 조고만 들건너 에두른 뫼와 뫼히(道峯) 들마다 에운 바다, 바다에도 뫼히로고(月出山) 깊고 깊은 뫼히 숲도 그리 그윽하다(光陵) 푸른 뫼와 숲울 해골이 거의로다(追悼二) 진펄밭 옹곳 캐고 뫼를 올라 고사리 꺾고(그리운 그날 二) 이제야 七山바다이 아믈 아믈 보이누나(海佛庵) 골마다 한모양으로 힌바다이 되었다(扶蘇山) 하얀玉 깎아 세운듯 봉하나이 솟았네(天磨山峽) 다만, 이 흐르는 물이 긋지 아니 하도다(朴淵瀑布) 봉마다 골마다 제여곰 다른 모양(迦葉峯) 제여곰 수줍은 듯이 고개 절로 숙인다(함박꽃) 저른 처마 안에 드는 해는 되오 길다(뜰) 어느 뉘(世) 다시 보오리 자최 잃은 그梅花(梅花) 외오 두고 두고 그립어 하든 그대(그 뜻) 몸이 한가로우매 도로혀 병은 잦다(고곰) 어드런 술을 마시어 이대도록 취하리(瑞香)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람의 옛말 사용은 ‘뫼’, ‘뉘’, ‘자최’ 등 명사뿐만 아니라, 조사, 동사, 부사, 형용사 등 다양하다. 조사 ‘-가’ 대신 옛말 조사 ‘-히’, ‘-이’를 쓰고 있는 경우는 ‘뫼히’, ‘바다이’, ‘하나이’에서 볼 수 있고, 동사로는 ‘긋지’(그치지)가 있다. 그리고, ‘제여곰’, ‘되오’, ‘외오’, ‘도로혀’는 부사로 현대어로는 ‘제각기’, ‘매우’, ‘외따로’, ‘도리어’로 풀이할 수 있다. ‘어드런’은 형용사로 ‘어떠한’의 의미이다. 제목에서 보이는 ‘고곰’은 ‘학질’의 옛말이다.이처럼 가람은 한편으로는 시조의 현대화를 실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옛말을 되살려 시적 언어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말의 언어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옛말이 지니고 있는 축적된 역사성을 시어로 되살리려는 시도로 보인다.Ⅲ. 마무리이상에서 가람이 시조혁신론을 통해 주장한 시조론이 그의 시어 선택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가람이 펼친 시조론의 골간은 ‘혁신’과 ‘전통 계승’이다. ‘혁신’과 ‘전통 계승’의 두 개념은 상호 대립적인 듯 보이지만, 가람에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신문학의 기세에 몰려 시조가 소멸 위기에 처하게 된 당시에는 시조를 혁신하는 일이 곧 전통을 계승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혁신’에 해당하는 것은 시조의 현대화이며, 이는 곧 ‘전통 계승’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가 생각한 현대화 방안 중 핵심은 시어 선택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핀 ‘색채어의 활용과 변용’, ‘고유어의 활용과 변용’, ‘방언의 활용’, ‘옛말 되살려 쓰기’ 등이 그것이다. 가람은 색채어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변용, 활용하고 있다. 이는 시조의 시적 이미지 창조와 묘사와 서경을 실감 있게 표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한자어 계열의 색채어를 지양하고 고유어 계열의 색채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말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는 데에 기여 한 것으로 판단된다. 가람은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캐내어 시적 언어로 활용하거나, 그것을 시조시의 형태에 알맞게 변용하고 있다. 가람은 방언을 시어로 취택해 다듬어 쓰기를 권장하였고, 스스로도 많은 작품에 방언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시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가람은 한편으로는 시조의 현대화를 실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옛말을 되살려 시적 언어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말의 언어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옛말이 지니고 있는 축적된 역사성을 시어로 되살리려는 시도로 보인다.이러한 방법들은 시조시에서 시어 영역의 확장에 기여했고, 한편으로는 현대시조의 전통 계승에 이바지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옛말 되살려 쓰기’는 시조 창작을 통해 민족의 언어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의 반영으로 보인다. 이는 가람이 시조 창작을 통해 구현한 우리말 사랑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출 처 : 장흥문학관-시문학관 / 가람의 언어 의식과 시어 선택 ☜

ㆍ작성자	검정삿갓
ㆍ작성일	2007/01/10 (수) 23:51
ㆍ분 류	시조
ㆍ파일1	가람의_언어의식.hwp (48KB) (Down:500)

ㆍ조회: 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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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언어 의식과 시어 선택/백수인

- ≪가람시조집≫을 중심으로 -
백 수 인 /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목    차

Ⅰ. 서론
Ⅱ. 시조 혁신과 시어
    1. 색채어의 활용과 변용
    2. 고유어의 활용과 변용
    3. 방언의 활용
    4. 옛말 되살려 쓰기
Ⅲ. 마무리

Ⅰ. 서론
가람 이병기만큼 우리말, 우리 글 사랑을 통해 우리 민족의 얼을 북돋은 시인도 드물다. 그는 일제치하 한성사범학교 재학 시절에 한글학자 주시경을 스승으로 모시고 “조선어문법”을 공부했으며, 그 정신을 돈독히 이어 받았다. 한성사범 졸업 후 여러 공립보통학교에서 조선어와 조선문학, 조선어 작문 등을 후학에게 가르쳤다. 1921년 조선어연구회에 참여했고, 1922년부터 휘문고보, 보성고보 등에서 조선어 작문을 가르쳤다. 그는 1926년 동아일보에 <시조란 무엇인가?>를 발표하여 시조 이론을 폈을 뿐만 아니라, 시조 창작을 통해 우리말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1930년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 1934년 진단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약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간단한 전기적 사실만으로도 그는 정신과 이론, 그리고 실제를 겸비한 국문학자이며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람은 시조의 현대화를 통해 우리 민족 고유의 시가 형태인 시조를 현대에 계승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시조의 현대화는 <시조혁신론> 등 그의 시조에 대한 이론과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가람은 시조 창작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말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해야 하며, 어법, 문법, 맞춤법을 익히고 고금의 시가와 소설을 읽어 우리말의 성질, 형태, 묘미, 미감 등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시어란 우리말 중에서 씀직한 말을 뽑아 낸 것이며, 이는 시인 자신의 감각으로 분별하여 뽑아 써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특히, 표준어 지방어를 포함한 현대어는 물론 고어에서도 말을 캐어 시어로 다듬어 써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그의 시어관은 그의 시조혁신론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조는 시의 한 형식이기 때문에 결국 언어로 표현되는 예술이다. 따라서 시조의 미적 효과는 언어를 통하여 발휘될 수밖에 없다. 시어는 리듬의 효과를 위한 ‘소리’, 혹은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연상’ 때문에 선택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가 낱말들의 유기적 관계로 짜여진 구조이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언어가 선택된다는 점이다. 특히 시조와 같이 일정한 틀을 가진 양식에서의 시어 선택은 문맥 이외의 구속력을 갖기 마련이다. 따라서, 시조에서의 시어 선택은 시인의 의식을 더욱 첨예하게 반영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람의 언어의식이 그의 시조에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 있는가를 살피는 일은 그의 시인 정신에 접근하는 의의 있는 일이라 하겠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의 전기시조 작품을 집대성한 ≪가람시조집≫(문장사, 1939)을 대상으로 시어 선택을 통한 언어 의식 구현 양상을 살피고자 한다.

Ⅱ. 시조 혁신과 시어
가람의 시조혁신론은 그의 글 <시조는 혁신하자>(동아일보, 1932.1.7)에서 주창한 시조 현대화의 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혁신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고시조이다. 그렇다고 고시조의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형태의 시조를 창조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는 민족 고유의 시형식인 시조시를 현대에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지속’의 의미와 현대에 알맞은 내용, 형식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야 한다는 ‘변혁’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가 내세운 방안은 실감실정(實感實情)을 표현하자, 취재의 범위를 확장하자, 용어의 수삼(數三)은 사용하지 말자, 격조(格調)의 변화를 꾀하자, 연작(連作)을 쓰자, 쓰는 법과 읽는 법을 신시와 같이 하자 등 여섯으로 나누어 설명되고 있다. 이 항목들을 언어의식과 관련시켜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실감실정을 표현하자는 것은 시조의 내용과 관련된다. 시인 자신의 실생활에서 얻어진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주관적 서정과 객관적 서경이 시조의 내용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시조의 내용은 시인의 체험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고시조 가운데는 시적 대상에 대한 지은이 자신의 진솔한 감정의 표현보다는 공상적인 것, 한문투의 관용구, 교훈적 내용, 한시의 모방 등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 취재의 범위를 확장하자는 것은 시조의 소재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시조는 대체로 “시어가 추상적이고 존재적인 울 속에 枯淡美 아니면 山水畵美로 계열화된다.” 이러한 고시조가 갖는 소재의 편협성은 유교적 이념 탓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시조를 현대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편협성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 가람의 생각이다.

셋째, 용어의 수삼은 세 가지 용어로 집약된 시어 선택에 관한 주장이다. 즉, 시어 선택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을 지적한 것으로 ‘한문투어 지양’, ‘套語排除’, ‘현대적 시어 수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문투어 지양’은 고시조에 흔히 쓰이는 ‘月沈三更’, ‘滿庭桃花’, ‘深山絶景’과 같은 한문구의 사용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투어 배제’는 고시조 종장에 자주 나타나는 ‘아희야’, ‘아마도’, ‘어즈버’, ‘어찌타’ 등이나 장의 종결에 나타나는 ‘-고야’, ‘-는구나’, ‘-가 하노라’ 등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주장이다. ‘현대적 시어 수용’은 생활의 변화에 따라 자연히 생기는 신조어 등 현대적 감각에 맞는 시어를 쓰자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시어 선택을 통한 현대 시조의 변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넷째, 격조의 변화는 곡조가 무너진 현대시조에서는 고시조가 지녔던 그 곡조의 자리에 시조의 품격이 유지되는 대치물을 놓아야 하는데, 그 대치물이 바로 '격조'라는 것이다. 이는 시조 장르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즉, 시조를 음악이 아닌 문학의 시각에서 인식하고, 의미와 운율의 복합적 상태인 격조를 통한 다양한 변이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연작을 쓰자는 주장은 현대의 복잡한 생활상을 담는 그릇으로 단수 시조형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 한 수의 시조로 완전한 예술적 문학으로 현대화시키기에는 시형의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연시조를 단시조가 갖는 압축미와 간결미, 장시조가 지닌 분방함과 사실성 등의 장점을 두루 취한 현대시조의 이상적 형태로 생각한 것이다. 이와 같은 “가람의 시조 형태론은 현대 자유시 시대에도 시조시가 공존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여섯째, 쓰는 법, 읽는 법은 시조는 제 가락에 맞추어 써야 하고, 잘 玩味하도록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중․종장을 3행, 6행 등 자유롭게 쓰되 시조의 전통적 주체의식을 갖는 형태를 잘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표기법에 있어서 시조다운 시조가 될 수 있도록 그 내용과 형식이 잘 조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람은 전통적인 맥을 이어 온 ‘부르고 듣는 시’에서 새로운 형태의 ‘쓰고 읽는 시’로의 확실한 변화를 인식하여, 이를 그의 시조론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가람은 한편으로는 시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현대에 알맞게 시조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조의 혁신이나 현대화는 어디까지나 이 양식이 갖는 전통성과 상호 견제하는 가운데 시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가 시조 창작에서 시어를 선택하여 부려쓰는 것은 시조의 현대화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람의 시어를 색채어, 고유어, 방언, 옛말로 나누어 그 양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색채어의 활용과 변용
우리말 색채어 형용사는 고유 색채어인 ‘검다, 희다, 누르다, 푸르다, 붉다’ 등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기본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어휘 분화와 분절을 통해서 색상의 정도, 안색표현, 혼색표현, 색조형태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가람의 시조에는 이러한 다섯 가지 빛깔에 대한 우리말 표현을 독특하게 활용하여 시조의 맛을 더하고 있다. 단순한 색채어의 표현뿐만 아니라, 색채들을 대비함으로써 실감 있는 서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그의 ‘新生한’ ‘寫生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에서 색채어 표현은 묘사와 서경에 기여하며, 또한 시인의 사물 인식에 대한 색채적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운 옛날 자최 물어도 알이 없고
     벍언뫼 검은 바위 파란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大聖庵> 셋째 수

이 작품에는 ‘벍언’, ‘검은’, ‘파란’, ‘하얀’ 등의 네 가지 색채어가 들어 있다. 특히 이 중 ‘벍언’은 ‘붉다’라는 기본 색채어를 색상의 정도와 어감을 고려하여 감각적으로 활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조는 시적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붉은, 검은, 푸른, 흰 빛깔을 조화롭게 대비시켜 그 효과를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시조 작품 속에 색채어로 표현된 어휘가 들어 있는 章을 추려 빛깔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검다>
     城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 나고(大聖庵)
     트이는 깜언 虛空에 봉이 새로 솟는다(迦葉峯)
     옷처럼 검은 몸둥이 빛은 아니 나드니라(그리운 그날 二)
     별과 바람 끝에 검을대로 검은 그손(曙海를 묻고)
     머언뫼 껌언 바위도 옹기 종기 보이다(故土)
     검은 방ㅅ장 안에 밤은 고히 가려 있다(戱題三)
     검읏한 먼산 머리에 비가 몰아 들온다(道峯)
     검고 영이 지고 늙고도 병든 몸이(垂松)

‘검다’는 ‘검은’, ‘깜언’, ‘검을대로 검은’, ‘껌언’, ‘검읏한’ ‘검고’ 등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검을대로 검은’과 ‘검읏한’은 색상의 정도에 따른 표현이고, ‘깜언’과 ‘껌언’은 어감에 따른 빛깔의 뉘앙스를 나타내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예이다.

     <희다>
     물소리 끊어지고 힌 구름 일어나고(溪谷)
     푸른닢 욱어지고 히고 붉은 꽃도 피어(道峯)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피고(蘭草四)
     푸른 잎 사이 사이 힌숭이 붉은 숭이(함박꽃)
     하얀玉 깎아 세운듯 봉하나이 솟았네(天磨山峽)
     앙상한 白樺서리 눈인양 돌도 히고(迦葉峯)
     엷어 지는 안개, 해는 달처럼 히고(月出山)
     하얀한 장지문 우에 그리나니 水墨畵를(水仙花)
     빛나는 파란 닢새 파란 대공 하이한 꽃(玉簪花)
     홀로 우뚝하여 파란 닢 하얀 껍질(白松)
     골마다 한모양으로 힌바다이 되었다(扶蘇山)
     눈같은 모래 비알 솔은 항시 푸르러라(曙海를 묻고)
     바위도 히기도 히고 물은 몹시 프르다(叢石亭)

‘희다’는 그의 시에서 ‘히다’를 기본형으로 간주하여 ‘힌’, ‘히기도 히고’ 등으로 나타나지만, ‘하얀’, ‘하얀한’, ‘하이한’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하얀한’, ‘하이한’은 흰 빛깔에 대한 가람만의 창조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활용하고 있는 데에는 한편으로 시조 리듬을 염두에 두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화로운 어감을 고려한 듯하다. 그의 시조에서 흰 빛깔은 단독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개 푸른(靑, 綠), 붉은 빛과 어울려 대비적으로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누르다>
     빩앙이 노랑이로 어엿비 단장하고(戱題四, 분꽃)
     몹시 얽은 얼굴 푸르고 누르지만(戱題四, 여지)

≪가람시조집≫에서 노란색 계열의 표현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단 두 군데 나온다. ‘노랑이’는 분꽃을 의인화하기 위해 명사형을 선택한 것이고, ‘누르지만’은 여지의 아름답지 못한 겉모습의 묘사를 위해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노랑이’는 양성모음의 밝은 음조를 드러내고, ‘누르지만’은 음성 모음으로 어둡고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푸르다>
     푸른닢 욱어지고 히고 붉은 꽃도 피어(道峯)
     푸른 잎 사이 사이 힌숭이 붉은 숭이(함박꽃)
     한손에 해를 가리고 푸른 虛空 바라본다(溪谷)
     푸른 뫼와 숲울 해골이 거의로다(追悼二)
     몹시 얽은 얼굴 푸르고 누르지만(戱題四, 여지)
     御苑 넓은 언덕 버들은 푸르르고(봄 二)
     가로선 애나무들 싱싱히 푸르도다(바람)
     눈같은 모래 비알 솔은 항시 푸르러라(曙海를 묻고)
     바위도 히기도 히고 물은 몹시 프르다(叢石亭)
     조각 조각이 파란 하늘 트이고(月出山)
     빛나는 파란 닢새 파란 대공 하이한 꽃(玉簪花)
     홀로 우뚝하여 파란 닢 하얀 껍질(백송)
     파란 못물 우에 비오리 한雌雄이(봄 二)
     욱어진 파란 닢들을 사르랸들 하여라(戱題四, 맨드람이)
     퍼런 닢 짙은 그늘 살고 있는 퍼런 버레(葡萄)

가람 시조에서의 색채어 중 가장 빈번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 ‘푸르다’의 활용이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푸르다’는 ‘푸른’, ‘푸르고’, ‘푸르르고’, ‘푸르도다’, ‘푸르러라’, ‘프르다’, ‘파란’, ‘퍼런’ 등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푸르다’의 표현 대상은 ‘닢’, ‘나무’, ‘버들’, ‘솔’ 등 식물이 대부분이고, 가끔 ‘물’, ‘허공’, ‘하늘’이 되기도 한다.

     <붉다>
     푸른닢 욱어지고 히고 붉은 꽃도 피어(道峯)
     푸른 잎 사이 사이 힌숭이 붉은 숭이(함박꽃)
     울고난 그눈과 같이 지는 달도 붉어라(돌아가신날)
     벌리는 그입술 안은 연연히도 붉어라(戱題四, 여지)
     풀섭 바위서리 밝안 딸기 패랑이꽃(大聖庵)
     새로 드는 丹楓닢마다 밝안하고(萬瀑洞)
     저건너 벍언 담머리 서있는 白松나무(白松)
     벍언 모래 비알 풀한닢 아니 나고(周時經先生의 묻엄)
     햇살이 쏘는 곳에 벍언한 봉이 솟고(扶蘇山)
     곱게도 드는 단풍 봉마다 빩어지고(天磨山峽)
     빩앙이 노랑이로 어엿비 단장하고(戱題四, 분꽃)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피고(蘭草四)

대개 '붉다'는 ‘붉은’, ‘붉으니’, ‘붉어서’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가람은 이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붉은 외에도 ‘밝안’, ‘밝안하고’, ‘벍언’, ‘벍언한’, ‘빩어지고’, ‘빩앙이’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발갛다’, ‘벌겋다’, ‘빨갛다’ 등의 활용과 변용이다. 특히 시인에게 붉은 빛으로 인식된 대상은 ‘꽃’, ‘달’, 입술로 은유된 열매(여지), ‘딸기’, ‘단풍’, ‘모래 비알’, ‘봉’ 등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가람은 색채어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변용,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조의 시적 이미지 창조와 묘사와 서경을 실감 있게 표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가람이 한자어 계열의 색채어를 지양하고 고유어 계열의 색채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말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는 데에 기여 한 것으로 판단된다.

2. 고유어의 활용과 변용
현대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고유어보다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가람은 이러한 언어 현실을 인식하고 한자어를 제한하여 쓸 것을 제안했다. 즉 명사, 부사, 접속사로 된 것만 한자로 쓰고 동사, 형용사, 기타 말에는 한자말을 쓰지 말자고 했다. 나아가 “한자어의 명사, 혹은 부사, 접속사는 그대로 쓰겠다 하였으나 이것도 그리 남용할 것이 아니다. 될 수 있으면 순연한 우리말을 찾아 쓰거나 순연한 우리말처럼 된 것을 쓸 것이다.”라고 하여 고유어 사용을 더욱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이 그의 시조 창작에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를 살펴 보자

   점읏한 西山머리 달은 이미 넘어가고
    거리에 어린 안개 등ㅅ불은 조올고 있고
     발자윽 헤뜨는 소리 가지온듯 멀어라

     버들과 소나무 사이 으늑고 휘임한 그곳
     서로 속살이며 쌍쌍히 오고 가고
     등하나 아니 비치고 밤은 정히 깊었다

     그립든 그이 하나 오날이나 맞나려니
     험한 고개 넘어 어두운 골을 들어
     온밤을 헤매이다가 도로 집을 드노라
                            -“밤 (二)” 전문

이 작품에서 한자어는 ‘西山’, ‘등ㅅ불’, ‘쌍쌍히’, ‘등’, ‘정히’, ‘험한’의 여섯 개가 있다. 이들은 그의 주장대로 모두 명사, 부사, 형용사이고 우리말처럼 쓰이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밖의 시어들을 살펴 보면 가람은 이 시조에서 고유어를 가려 쓰고 있고, 때로는 묘미를 살리기 위해 고유어를 세심하게 변용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밑줄 친 시어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점읏한’은 ‘저물다’를 변용하여 쓴 말로 ‘저문 듯 한’의 뜻이고, ‘헤뜨는’은 ‘덤벙거리는’의 의미를 가진 고유어이다. ‘으늑고’는 ‘으늑하다’에서 ‘하’를 생략하고 활용한 말로 ‘잔잔하고 은근하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휘임한’은 현대의 바른 표기로는 ‘휘움한’으로 ‘약간 휘어져 있는’의 뜻을 지닌 순우리말이다. ‘속살이며’는 ‘속살거리며’의 변용으로 ‘낮은 목소리로 자꾸 속삭이며’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밖에도 고유어를 활용․변용하여 시어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많다. 그 구체적인 예를 살피자면 다음과 같다.

     성그시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大聖庵)
     가다가 닥어도 보며 휘휘한줄 모르겠다(大聖庵)
     나붓이 그등을 숙이고 강이 또한 보인다(道峯)
     손에 이아치고 바람으로 시달리다(梅花)
     뒤에 좁은 언덕 그늘이 먼여 들고(뜰)
     어린 잠을 깨어 버들 눈 먼여 뜨고
     제먼여 봄인양하고 새움 돋아 나온다(芭蕉)
     얼뜨인 개구리 마자 몸을 떨고 둥개인다(봄)
     한마당 좁읏한 곳이 강을 문득 이루다(소나기)

이처럼 가람은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캐내어 활용하거나, 그것을 시조시의 형태에 알맞게 변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방언의 활용
시에서의 방언 활용은 시어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다. 가람은 일찍이 현대 표준어, 고어와 함께 방언을 다듬어 시어로 써야 한다고 했다. 시어로서의 방언은 표준어가 가질 수 없는 의미와 음악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특히 방언은 향토적 서정을 더하는 시적 효과를 갖기도 한다. 따라서 가람은 방언을 시어로 취택해 다듬어 쓰기를 권장하였고, 스스로도 많은 작품에 방언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예를 살피자면 다음과 같다.

   서대는 다람쥐가 길을 자주 알리우고(迦葉峯)
    설레는 바람 끝에 구름은 서들대고(大聖庵)
     미미히 이는 골바람 되오 상긋 하도다(萬瀑洞)
     발자윽 헤뜨는 소리 가지온듯 멀어라
     그앞에 바위 엉서리 물은 불어 흐른다(道峯)
     헝기고 또 헝기어 알알이 닦인 모래(溪谷)
     투술한 전북껍질 발달아 등에 대고(水仙花)
     맵시며 차림차리 澹粧한 美人이다(玉簪花)
     보낸 설흔네해 하잔흠이 아니리라(追悼二)
     해만 설풋하면 우는 풀버레 그밤을 다하도록 울고 운다(풀버레)
     담모르 굴어 오는 매미 소리 더욱 맑고(소나기)
     논밭 한모르엔 조고마한 모정이다(故土)
     으슷한 골을 찾어 성모르로 돌아가니(밤 一)
     봉재 한모롱이 남어 있는 天文臺(戱題二)
     실낱 만치도 볕은 아니 비쳐 든다(시름)
     벍언 모래 비알 풀한닢 아니 나고(周時經先生의 묻엄)
     눈같은 모래 비알 솔은 항시 푸르러라(曙海를 묻고)

4. 옛말 되살려 쓰기
가람은 “새로 들어오는 외래어는 함부로 쓰면서 제 조상들이 오래 써 오던 말을 못 쓸 이유가 어디 있느냐? 死語라도 부활시켜 쓰자.”고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다음의 일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조금도 어려워함이 없이 되지 못한 문자를 함부로 쓴다. ‘꼭’이라 할 데를 ‘절대로’이라느니, ‘억지’라 할 데를 ‘강제’라느니, 말마다 고린내나는 한문문자 투성이다. 흔히 여인들은 한문자나 배워 알면 더할 수 없는 자랑으로 여기고 쓰는 것이다. 그러나 쓰지 않아야 될 데에 쓰는 것이 안되었다. 일본말을 배우면 일본말로만, 영어를 배우면 영어로만 지껄이고 싶은가 보다.

이처럼 가람은 한자어, 일본어, 영어를 함부로 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우리말 지키는 일을 우리의 책무로 여겼다. 따라서, 가람이 옛말을 되살려 시어로 다듬어 쓰자고 주장한 데는 몇 가지의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외래어 배격, 전통 계승, 시어 확장 등이 그것이다.

   사니 산가하여 살음에 조이는 마음
    괴오든 오누도 벙그러이 지내는 이날
     이곳에 님을 뫼심이 다행하다 하더니

     비인 손을 들고 궂은 길을 홀로 나서
     이고비 저고비 어려운 고비 넘어
     보람이 보이려 할제 어이 여혀 가신고

     남기신 그자최에 피와 땀은 잦었느니
     쓰리고 저리고 느꺼움 만이리오
     다시금 그길을 밟아 이으실이 없으료
       -<追悼(一) -故李重乾君-> 전문

가람과 함께 “조선어연구회” 동인으로 활동했던 이중건을 추도하기 위한 이 작품은 동료애와 애도의 정을 세 수 연작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옛말은 밑줄 친 ‘괴오든’, ‘뫼심’, ‘-제’, ‘자최’ 등이다. 현대어로 고치면 ‘사랑하던’, ‘모심’, ‘적’ 혹은 ‘때’, ‘자취’가 될 것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 도처에는 옛말을 의도적으로 적절히 살려 쓴 예가 허다하다.

     조고만 들건너 에두른 뫼와 뫼히(道峯)
     들마다 에운 바다, 바다에도 뫼히로고(月出山)
     깊고 깊은 뫼히 숲도 그리 그윽하다(光陵)
     푸른 뫼와 숲울 해골이 거의로다(追悼二)
     진펄밭 옹곳 캐고 뫼를 올라 고사리 꺾고(그리운 그날 二)
     이제야 七山바다이 아믈 아믈 보이누나(海佛庵)
     골마다 한모양으로 힌바다이 되었다(扶蘇山)
     하얀玉 깎아 세운듯 봉하나이 솟았네(天磨山峽)
     다만, 이 흐르는 물이 긋지 아니 하도다(朴淵瀑布)
     봉마다 골마다 제여곰 다른 모양(迦葉峯)
     제여곰 수줍은 듯이 고개 절로 숙인다(함박꽃)
     저른 처마 안에 드는 해는 되오 길다(뜰)
     어느 뉘(世) 다시 보오리 자최 잃은 그梅花(梅花)
     외오 두고 두고 그립어 하든 그대(그 뜻)
     몸이 한가로우매 도로혀 병은 잦다(고곰)
     어드런 술을 마시어 이대도록 취하리(瑞香)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람의 옛말 사용은 ‘뫼’, ‘뉘’, ‘자최’ 등 명사뿐만 아니라, 조사, 동사, 부사, 형용사 등 다양하다. 조사 ‘-가’ 대신 옛말 조사 ‘-히’, ‘-이’를 쓰고 있는 경우는 ‘뫼히’, ‘바다이’, ‘하나이’에서 볼 수 있고, 동사로는 ‘긋지’(그치지)가 있다. 그리고, ‘제여곰’, ‘되오’, ‘외오’, ‘도로혀’는 부사로 현대어로는 ‘제각기’, ‘매우’, ‘외따로’, ‘도리어’로 풀이할 수 있다. ‘어드런’은 형용사로 ‘어떠한’의 의미이다. 제목에서 보이는 ‘고곰’은 ‘학질’의 옛말이다.

이처럼 가람은 한편으로는 시조의 현대화를 실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옛말을 되살려 시적 언어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말의 언어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옛말이 지니고 있는 축적된 역사성을 시어로 되살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Ⅲ. 마무리
이상에서 가람이 시조혁신론을 통해 주장한 시조론이 그의 시어 선택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가람이 펼친 시조론의 골간은 ‘혁신’과 ‘전통 계승’이다. ‘혁신’과 ‘전통 계승’의 두 개념은 상호 대립적인 듯 보이지만, 가람에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신문학의 기세에 몰려 시조가 소멸 위기에 처하게 된 당시에는 시조를 혁신하는 일이 곧 전통을 계승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혁신’에 해당하는 것은 시조의 현대화이며, 이는 곧 ‘전통 계승’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가 생각한 현대화 방안 중 핵심은 시어 선택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핀 ‘색채어의 활용과 변용’, ‘고유어의 활용과 변용’, ‘방언의 활용’, ‘옛말 되살려 쓰기’ 등이 그것이다. 가람은 색채어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변용, 활용하고 있다. 이는 시조의 시적 이미지 창조와 묘사와 서경을 실감 있게 표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한자어 계열의 색채어를 지양하고 고유어 계열의 색채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말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는 데에 기여 한 것으로 판단된다.

가람은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캐내어 시적 언어로 활용하거나, 그것을 시조시의 형태에 알맞게 변용하고 있다. 가람은 방언을 시어로 취택해 다듬어 쓰기를 권장하였고, 스스로도 많은 작품에 방언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시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가람은 한편으로는 시조의 현대화를 실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옛말을 되살려 시적 언어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말의 언어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옛말이 지니고 있는 축적된 역사성을 시어로 되살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러한 방법들은 시조시에서 시어 영역의 확장에 기여했고, 한편으로는 현대시조의 전통 계승에 이바지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옛말 되살려 쓰기’는 시조 창작을 통해 민족의 언어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의 반영으로 보인다. 이는 가람이 시조 창작을 통해 구현한 우리말 사랑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출 처 : 장흥문학관-시문학관 / 가람의 언어 의식과 시어 선택 ☜

이병기는 '마사오카시키'가 아니다.

이제 산문시조가 도래하는가/임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