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문학의 발전전략. 위기의 시조, 그냥 둘 것인가 / 박구하

1. 들어가며오늘의 주제를 "시조문학의 발전전략"이라고 했습니다만 지금 우리 시조문학은 어찌 보면 생사기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어 '발전' 이전에 '생존'의 전략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시조는 우리 것이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니 반드시 살려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너무 들어서 신물이 나고 또 그런 감상적인 이유만 가지고는 왜 우리가 시조를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납득할 만한 이론,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시조가 더 이상 문학으로서 행세를 못하거나 시조문학이 우리 생활에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면 우리는 오늘 이런 세미나를 가질 필요도 없고 시조를 씁네 하고 고심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2. 시조문학의 가치시조문학의 발전전략 이전에 시조는 과연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학인가, 발전시킬 가치가 있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 시조를 써오면서도 "왜 쓰는지, 왜 써야하는지, 자신의 작품이 어떤 기여를 하는지" 하는, 시조문학의 가치에 대한 자기확신 내지 논리를 확립하고 시조를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의외로 많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것이라고 다 좋고 우리 것이니까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아전인수격입니다. 무릇 가치란 어떤 필요성과 기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정서에 맞고 또 자유시를 포함하여 다른 문학장르가 하지 못하는 특유의 역할과 기능성이 있을 때 시조는 가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 기능과 역할, 정서에의 적합성 등이 없어지거나 변질된다면 시조의 존재가치는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시조의 기능성과 관련하여 시조는 만능선수인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시조로 표현 못할 것이 없다고도 하지만 시와 소설이 다르듯이 역시 "시조로 표현할 것과 시로 표현할 것이 따로 있다"고 한 박재삼 시인의 말처럼 시조는 산문시와 달리 그 자체로 한계가 있는 장르라고 할 것입니다. 21세기 첨단의 시대로 갈수록 시는 짧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에서 시조는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경제원리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가장 첨단적인 장르라 하겠습니다. 그만큼 가치가 점증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조가 생성된 지 7백년이라고들 하는데 그 오랜 동안 시조는 그 기본틀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런 예는 세계적으로 극히 드뭅니다. 뒤에 말씀드리겠지만, 오늘날에 와서 그 틀을 변질시키려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3장6구라는 시조의 기본형식은 수백 년을 두고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시조라는 우탁(1263-1342)의 '탄로가'를 보아도 그 율격은 오늘날 율격 그대로입니다.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만물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이 말은 제 말이 아니고 지난 20여 년 동안 시조를 지원해 오고 계시는 통도사의 성파스님에게서 들은 법문입니다. 수레의 바퀴는 돌아도 그 중심축은 돌지 않는 것과 같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마음자리"는 불변이라 들었어요. 개인에게 개성이 있듯이 민족에게도 민족정서가 있고 민족혼이 있는 것입니다. 시대는 변하여도 이 민족정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identity)입니다. 이 아이덴티티는 우리가 사는 한 내버릴 수 없는 겁니다. 우리 민족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로서 시조가 존재하고 그것이 현 시점에서도 우리의 미적 감정에 부합된다면, 그리하여 현대인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다면 시조는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같은 우리 것이라도 신라 향가나 고려 경기체가, 조선의 가사문학은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그 장르가 못나서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추구할만한 가치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리하여 향수층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멸절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가사문학보다 더 오래된 시조는 어떻습니까? 아직 살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3장6구라는 시조의 틀이 시대의 흐름에 상관없이 우리 정서에 맞아 떨어져 시조의 생산과 소비가 병존해 왔기 때문입니다. 시조를 쓰는 이나 읽는 이가 계속 있는 한 시조의 존재가치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조는 그 자체로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를 쓰고 읊고 읽어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존재합니다. 그 그릇으로 구운, 즉 3장6구로 지은 시조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문학적 감흥을 충족시켜준다면 시조의 가치는 분명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조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수월성을 갖추고 있다면 그 시조는 생존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시조는 가치 없는 골동품으로 치부되고 만다는 말입니다. 예컨대 황진이의 시조를 봅시다. 지금도 그녀가 남긴 시조 어느 부분을 읽어봐도 갓 건진 생선처럼 피둥피둥 살아있지 않습니까? 고려청자나 이조백자가 옛날 것입니다만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없어지기는커녕 옛 색깔을 재현해내려고 도예가들이 기를 쓰고 노력하는 것을 보십시오. 도자기의 그 미적인 아름다움이나 실용성이 오늘의 현실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소용되는 바가 없다면 아무도 도자기를 생산하거나 구매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조의 존재가치 내지 존속 여부는 바로 시조의 작품성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우수한 시조 작품이 많이 나오면 많이 나올수록 우리 시조는 그 생명력이 왕성하게 이어질 것입니다. 3. 시조문학의 정체성그러면 그 가치의 정체는 무엇인가, 즉 시조의 정체성에 대해 알아봅시다. 시조의 정체성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크게 음악성과 회화성, 사회성과 서정성으로 고찰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시간관계상 시조의 형식과 관련한 음악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작품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시조들은 지난 6,7,8월의 《월간문학》에 제가 월평으로 인용했던 예입니다. ① 나무는 언제나 베풀고 있다. 산소(酸素)를 만들어 주고,그늘을 만들어 주고, 날짐승 쉬어가라 하고, 산사태(山沙汰)를/ 막아주고 있다. 집을 짓는 기둥이 되고, 종이를 만들 수 있고, 맑고 향긋한 향기(香氣)를 내뿜어주고, 홍수(洪水)로부터 사람을 지켜준다.// 묘목(苗木)이 자라나서 큰 숲을 이루리라.//언제나 베푸는 삶을 얹어놓고 있니라. (김남준, 「나무처럼」전문, 시조시학 2004 봄호) ② 옹달샘 마주앉아 외태머리 땋을 적에밭 매던 앞집 오빠 휘파람 부는 뜻을 바람은 알았다해도 전 정말 몰랐어요 (김동진, 「몰랐어요」 첫 수 -시조월드 2004년 상반) ③ 소나기 지나간 숲길/ 엷은 햇살이 비친다.풀잎에 앉은 사마귀 한 마리/ 위장의 눈망울을 굴리다앞발의 발갈퀴를 쳐든다./ 온 숲 속이 고요하다.튼실한 등을 타고/ 몰래 오르는 수컷 사마귀뭔가 각오한 듯/ 덥석 암컷을 껴안는다.절정쯤 이르렀을까/ 잡아먹히고 마는 수컷의 운명 (김제현, '순명'전문 月刊文學 6월) ④ 길의 상처를 핥는 혓바닥 같이 고인 물다 버리고 뎅그러니 가장자리만 남은...그믐달/ 물웅덩이 속으로/ 미늘처럼 꽃힌다 (선안영, '거울' 전문, 시조시학 2004 봄호) ⑤ 볕고개 노을빛 하늘 저녁연기 몽글몽글할머니 아궁이엔 불꽃이 바알갛다해질녘 울타리 넘어가는 연보라빛 콩꼬투리 (울산 병영초등 5년 이효원 어린이시조시인, '외갓집' 전문) ⑥ 빨간 꼬리 탈싹탈싹 개울물 건드린다하얀 날개 파르르 개울을 만져본다잠자리 개울물이랑 친구 되고 싶단다 (중국 도문2소학교 6년 강혜경, '잠자리' 전문,) ⑦ 까치가 깍 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 듯이' 전문) ① 나무는 언제나 베풀고 있다. 산소(酸素)를 만들어 주고,그늘을 만들어 주고, 날짐승 쉬어가라 하고, 산사태(山沙汰)를/ 막아주고 있다. 집을 짓는 기둥이 되고, 종이를 만들 수 있고, 맑고 향긋한 향기(香氣)를 내뿜어주고, 홍수(洪水)로부터 사람을 지켜준다.// 묘목(苗木)이 자라나서 큰 숲을 이루리라.//언제나 베푸는 삶을 얹어놓고 있니라. (김남준, 「나무처럼」전문, 시조시학 2004 봄호)①은 시조라고 썼지만 시조라고 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닌 이런 것을 시조전문지에서 그것도 "정예시조시인작품"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작품이라 할 수도 없지만)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양산하는 시조시인이 있고 이를 버젓이 정예작품으로 발표하고 게재해주는 잡지가 있는 현실에서 무슨 시조의 가치를 찾겠습니까? 저는 법을 전공했습니다만 아무리 정의로운 법도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시조임을 포기하는 현실에서 누가 시조의 가치나 정체성을 찾아주겠습니까? ② 옹달샘 마주앉아 외태머리 땋을 적에밭 매던 앞집 오빠 휘파람 부는 뜻을 바람은 알았다해도 전 정말 몰랐어요 (김동진, 「몰랐어요」 첫 수 -시조월드 2004년 상반)②는 다소 복고적인 냄새가 나지만 음악성을 말하고자 인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조는 음악성을 잃고 (무시당하고) 회화성 위주로 나가고 있는데 이는 과연 옳은 방향일까요? 시조는 크게 "읊는 시조"와 "그린 시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읊는 시조"는 기본적으로 노래로서 쉽게 읽히고 바로 가슴에 전달되지만 "그린 시조"는 한번 읊고 바로 이해하기 어렵고 혼자서 몇 번이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어보고 때로는 전문가나 비평가의 해설을 들어야 합니다.④ 길의 상처를 핥는 혓바닥 같이 고인 물다 버리고 뎅그러니 가장자리만 남은...그믐달/ 물웅덩이 속으로/ 미늘처럼 꽃힌다 (선안영, '거울' 전문, 시조시학 2004 봄호)④를 보십시오. 이것이 이미지 시 즉 "그린 시조"인데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갑니까? 시조가 율격을 잃고 "그린 시조"로 간다면 굳이 자유시와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문제는 너무 전문적으로 들어가므로 이만 합니다만 한마디만 부언하면 흔히 시조에서 율격을 벗어나면 시조가 아니라고들 하는데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율격, 율격" 하면서 율격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까요? 그것은 바로 이 음악성, 즉 리듬감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이점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기계적으로 자수율 내지 음보율만 지키면 시조가 되는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파격을 하거나 탈격을 해도 문학성만 잃지 않으면 시조가 되는 줄 알지요. 그래 억지로 그 율격의 제한 속에 이미지를 짜 맞추느라고 낑낑대고 있는데 이거 정말이지 웃기는 얘깁니다. 자수율이 음악성을 살리라고 있는 것인데 그 음악성은 무시하고 음악성과는 상관없는 잣대로(즉 율격으로) 회화성을 살리려고 하니 제대로 되겠습니까? 3·4 3·4 또는 4·4 4·4하다가 종장에 가서 3·5 또는 4·3으로 바뀌는 것은 어떤 회화적 구도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적 리듬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것은 문학적으로 응축, 도약, 해방, 결구 등의 기법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율격이지요. 이런 전차를 모르고서는 아무리 시력이 오래 된 시인일지라도 종장을 제대로 못 씁니다. 종장의 자수는 맞지만 율격이 틀린 예는 중견 내지 중진 시인들의 작품 속에 얼마든지 있어요. 그 실례를 제가 이번 《월간문학》 8월 호에 뽑아놓았어요.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율격은 쉽게 말하면 시조를 쓰는 도굽니다. 시어를 제어하는 도구지요. 그림 그릴 때는 온갖 붓과 물감이 다 있어야 하는데 몇 가지 도구만 가지고 그리라고 제한해 버리면 그 그림이 온당하겠습니까? 노래는 7음계만 있으면 됩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조합으로 어떤 멜로디도 하모니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음악은 그보다 더 적은 음, 즉 5음계나 3음계로 온갖 우리의 한과 정서를 다 표현합니다. 시조의 자수율은 말하자면 바로 그런 겁니다. 서양의 7음계나 우리의 5음계가 악곡을 짓는 도구이듯이 "시조"라는 노래를 짓는 도구가 바로 율격이고 "3장6구"는 오선보와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시조란 3장6구라는 오선보에 율격이란 도구로 쓴 악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악보에 적힌 가사가 바로 시조라는 문학이지요. 그러므로 시조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사만을 볼 때는 문학이지만 그 가사는 노랫말이므로 생래적으로 음악인 것입니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인데 제가 어디서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오늘 처음 발설하는 것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시조가 무엇인지 똑똑히 짚고 넘어갑시다. '시조'를 '時調'가 아닌 "詩調"니, "時調詩"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말입니다. 시조는 한민족 전통의 시로서 시조의 별칭으로 '傳統詩'라거나 '한국정형시'라고 하는 것은 모르겠으나 '時調詩'니 '詩調'니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時調에서 '時'는 당대, 지금, current, contemporary 라는 뜻이요 '調'는 노래, 곡조, 멜로디, 리듬, 악곡, key 뭐 이런 뜻입니다. 옛날에는 시조가 노래로 쓴 문학이었지 노래와 동떨어진 시조는 없었습니다. 즉 시조의 어머니는 곡조요, 아버지는 가사였던 셈이지요. 이 곡조와 가사를 합쳐서 '時調'라고 불렀던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 시조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시조가 회화성에 치우치는 것은 과연 옳은 방향인가 하는 점을 우리가 깊이 상고해 봐야합니다. 그러므로 시조를 음악성과 분리해 놓는다면 그것은 반쪽 시조로서 이미 변질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보십시오. 리듬을 무시한 무잡한 연시조나 장시조(속칭 사설시조)를 남발하고, 혼합(짬뽕)시조를 유포시키고, '時調詩' 니 '詩調' 니 하는 신조어를 내세우고, 시조를 난해한 "그림시조"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시조의 음악성을 되살려야 합니다. 음악성이야말로 시조의 정체성입니다. 일찍이 음악성 있는 시와 비음악적인 시를 두고 어느 쪽이냐 하면 전자가 더 감흥이 많고 독자도 많은 것으로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야구에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시조단은 하루빨리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조는 문자로 쓴 노래입니다. ② 옹달샘 마주앉아 외태머리 땋을 적에밭 매던 앞집 오빠 휘파람 부는 뜻을 바람은 알았다해도 전 정말 몰랐어요 (김동진, 「몰랐어요」 첫 수 -시조월드 2004년 상반)자, ②를 다시 보십시오. 그저 술술 읽으면 리듬감이 출렁출렁 살아나고 뜻도 쉽게 전달되면서 어딘지 아련한 토속적인 정취가 우리 감성의 뇌관을 건드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⑤ 볕고개 노을빛 하늘 저녁연기 몽글몽글할머니 아궁이엔 불꽃이 바알갛다해질녘 울타리 넘어가는 연보라빛 콩꼬투리 (울산 병영초등 5년 이효원 어린이시조시인, '외갓집' 전문) ⑥ 빨간 꼬리 탈싹탈싹 개울물 건드린다하얀 날개 파르르 개울을 만져본다잠자리 개울물이랑 친구 되고 싶단다 (중국 도문2소학교 6년 강혜경, '잠자리' 전문,) ⑦ 까치가 깍 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 듯이' 전문)이런 음악성은 어린이시조(⑤,⑥), 동시조(⑦)에 특히 많아요. 아주 좋은 현상이지요. 이 음악성은 어디서 옵니까? 바로 시조의 자수율과 음보율에서 오는 것입니다. 3·4 3·4의 자수율은 읊으면 뭔가 절로 꿈틀꿈틀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③ 소나기 지나간 숲길/ 엷은 햇살이 비친다.풀잎에 앉은 사마귀 한 마리/ 위장의 눈망울을 굴리다앞발의 발갈퀴를 쳐든다./ 온 숲 속이 고요하다.튼실한 등을 타고/ 몰래 오르는 수컷 사마귀뭔가 각오한 듯/ 덥석 암컷을 껴안는다.절정쯤 이르렀을까/ 잡아먹히고 마는 수컷의 운명 (김제현, '순명'전문 月刊文學 6월) 그런데 ③을 보십시오. 이 작품은 내용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지만 전통적 자수율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파격을 보이고 있어요. 잘 읽으면 의미율로는 4음보의 보법으로 읽히지만 5음절 이상 되는 과음보가 무려 12군데나 됩니다. 이렇게 과음보가 많으면 시조 특유의 리듬감과 율격상의 도약과 반전효과가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로는 시조의 지평을 넓힌다고 하지만 이런 시조를 쓰면 시조의 정체성을 흔들 위험성이 큽니다. 또, 그것이 거부감 없이 시조시인에게 차츰 퍼지게 되면 경제학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언제 소리 소문 없이 시조는 가사문학처럼 그 명맥을 잃게 될지 모릅니다. 4. 시조문학의 현실이제 우리는 조그만, 그러나 아주 소중한 결론 하나를 이끌어냈습니다. 즉, 시조를 "잘" 써야, 시조를 "시조이게" 써야 시조가 살아남는다는 결론 말입니다. 이 평범한 말이 그대로 오늘날 시조문학의 생존전략이자 발전전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목하 우리 시조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작품의 질이 뛰어납니까? 우수한 시조시인이 많이 나기를 합니까? 치열한 시조정신이 있습니까? 문단이나 자유시단에서 시조를 제대로 대우해 줍니까? 시조협회가 창설된 지 40년이 흘렀어도 시조회관 하나 있습니까? 제대로 된 협회 사무실이 하나 있습니까? 전문 월간지가 하나 있습니까? 시조에 관한 문학이론이 제대로 서 있습니까? 제대로 된 번역이나 비평이 있습니까? 교육계의 배려나 독지가의 지원이 있습니까? 이처럼 지금 우리 시조에는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 그러면 '있는 것'은 없을까요? 왜요? 있는 것도 많습니다. 시기와 질투와 아집과 편가르기가 있습니다. 자기 비하와 타인 폄하와 냉대와 냉소가 있습니다. 특정인에 의한 신춘문예 심사독점, 각종 문학상 수상독점과 정실주의, 인상비평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조단은 사람의 인체로 말하면 골병 든 병신꼴을 하고 있어요. 머리부분은 볼 줄 모르니 눈멀고 들을 줄 모르니 귀먹고 비판할 줄 모르니 벙어리인 3불능 농맹아요, 몸체는 열정과 사랑과 의욕의 피가 부족한 빈혈증과 혼자만의 독식으로 소화불량증에 당뇨병자이며, 하체는 실천할 줄 모르는 앉은뱅이요, 절름발이에 단 한번의 외부충격에도 와장창 무너지는 골다공증환자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시조단에는 신춘문예 출신이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고 등단하신 지 오래된 원로시인들도 많이 계십니다만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그분들이 각광을 받은 만큼 시조단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습니까? 청사에 길이 남을 시조작품 하나 쓰셨습니까? 아, 아직 진행중이라고요? 그건 그렇다 치고 현재 시조발전을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하고 계십니까?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다 나름대로 시조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임을 압니다. 적어도 이런 세미나에 참석한다는 것도 분명 시조를 사랑하는 일 중의 하나에 들어갈 테니까요. 그러나 진짜로 시조를 사랑하는 일은 여기 오시는 일 말고도 많습니다.비근한 예를 들면 시조시인들 치고 돈을 내고 시조집이나 전문잡지를 구독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매체에 이름내기에 급급하고, 온갖 일에 다 간섭하고, 온갖 상은 다 타야하고, 온갖 모임에서 폼 잡는 일에 연연해하는 사례는 많습니다.여러분, 시조시인이 암만 가난하다해도 시조전문지 하나 정기구독 못할 만큼 가난합니까? 지금 20년 이상 된 시조전문잡지《현대시조》가 재정난으로 이번 여름호를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못하고 폐간되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과거 연극이 어려울 때 뜻있는 사람은 연극계를 지원하기 위해 공짜 초대권을 받아도 돈을 내고 보았는데 시조잡지도 돈 내고 보고 주위에 적극 구독하도록 소개하는 것이 시조사랑의 출발이자 시조시인의 최소한의 의무일 것입니다. 요즘 책이 안 팔린다 안 팔린다 하지만 잡지, 그것도 문학잡지, 그것도 시조잡지만큼 안 팔리는 책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광고가 잘 들어옵니까? 원고료 없이 좋은 글 기대할 수 있습니까? 거듭 말하지만 시조시인이라면 시조잡지 한두 권은 자기 돈으로 구독해주는 것이 시조사랑의 출발입니다. 5. 시조문학의 발전전략우리 시조단의 문제점은 벌써 진단이 되어 있고 다들 알고 있는 사실들이라 제가 굳이 중언부언하지 않겠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 중 두 가지만 들겠습니다 첫째 시조의 고급화만이 시조의 살길입니다. 시조는 원래 고급제품이었고 상류사회의 전매특허품으로서 출발하여 점차 국민문학으로 발전되었던 것인데 조선조 말엽에 와서 상스럽고 잡스런 장시조가 나오면서 물이 흐려지더니 현대에 와서 시조의 지평을 넓힌답시고 일부 시인들이 장시조를 남발하고 게다가 내용까지 성담론 같은 저속한 이야기 등을 다루거나 단시조에 중시조나 장시조를 섞어 만든 기형적인 짬뽕시조를 창안하고 이런 것들을 신춘문예나 신인상에 당선시키는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시조는 저질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허접데기 소재라고 시조로 못 쓸 것은 아니지만 문학적으로 고양되지 않은 생짜배기 토설은 역겨울 뿐입니다. 거기다가 무슨 실험이다 전위다 하여 고유의 형식까지 무시하거나 파괴하려고 드는데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얼마 전 영남대의 박태일 교수는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라는 글에서 지금 우리 지역문단을 횡행하는 것은 '아마추어리즘'과 '정실주의'임을 지적했습니다. 또 이호철 소설가는 얼마 전 "패거리문학"이라는 책을 내었는데 거기서 문인들이 글은 안 쓰고 몰려다니며 패거리나 짓고 패거리 중의 일원 즉, "one of them" 이 아니면 행세 못하는 문단실태를 개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조사회도 예외 없이 '죽은 시인의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중이 염불을 못하면 중이 아니듯 시인이 시를 못 쓰거나 쓴다 해도 수준 이하, 상식 이하의 시를 쓴다면 시인이 아닙니다. 시조는 시가 된 후에 다시 시조가 되어야 하는 이중의 작업이므로 시인보다 시조시인은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시조는 형식상 율격에 맞아야 하고 내용상 격조가 있으면서도 문학성이 높아야 합니다. 이런 좋은 시조를 못 쓰겠거든 좋은 시조를 쓸 수 있는 여건 조성에 동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은 시조를 쓰지 마십시오. 더 이상 시조의 물을 흐리지 말고 한사람의 시조 애독자로 남아 있는 것이 훨씬 시조단에 득이 됩니다. 둘째 시조의 노령화 탈피 즉 청년화입니다. 요새 웰빙 시대를 맞아 젊은 부부들이 아기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는다고 하는데 어느 집이든 아기 울음이 들리지 않는 집에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청소년층에는 시조지망생이 줄어들고 정년퇴직자나 늙은 신인은 넘쳐납니다. 지금 시조시인이 1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 연령분포는 40대 이상이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이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이 점이 우리 시조단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늙어서 들어와도 시조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시조계에 들어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어릴 때부터 시조를 배워 그 가락을 알고 있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시조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시조교육을 받았고 시조 몇 수 정도는 늘 외우고 살아온 세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초·중등교육은 어떠합니까? 시조를 고리타분한 옛 유물쯤으로나 아는 것이 오늘날 교사나 학생들의 공통된 인식입니다. 시조인구의 노령화는 시조작품의 노쇠화로 바로 연결이 되고 후진을 키우지 않은 채 우리 세대마저 가고 나면 시조는 생산자도 소비자도 공멸하여 고사해 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꿈나무를 육성하는 일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극히 최근까지 우리 시조단에 아무도 이 문제를 심도 있거론하거나 어떤 운동을 벌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장 눈앞의 과실 따먹기만 좋아하고 상이든 뭐든 '누가 안주나' 하고 쳐다 볼 뿐이었습니다. 그 많은 문학상 중에 꿈나무 시조상이 몇 개나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 하나도 없습니다. 겨우 무슨 무슨 백일장에서 학생부 장원을 뽑아 공책이나 시조집 한두 권 주는 것으로 끝나는 정도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저는 미국에 있는 김호길 시인을 비롯해 일부 뜻있는 시조시인들과 함께 수년 전부터 울산에서 어린이시조 육성운동을 펼쳐왔으며, 작년에는 부산에서 세계시조사랑축제를 가져 현재까지 총4기 400여명의 세계어린이시조시인을 배출하였습니다. 이들이 다 시조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들은 커서 시조가 무엇인지 알고 주위에 시조를 알리는 우군이 되거나 스스로 시조의 애호인이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욱 많은 어린이시조시인을 배출할 것입니다. 지금 마땅한 후원자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개인 사재를 털어 이 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게 어디 어느 개인이 할 사업입니까? 정말로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 운동은 국가단체에서 맡아 거국적으로 교육하고 지도해야할 사업입니다. 오늘 날 부산시조협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도 우연히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개인의 희생적 노력이 기틀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1970년대 부산시내 교사시조운동을 주도했던 당시 장학사 살매 김태홍 선생이 바로 그 분입니다. 여기서 저는 또 하나의 시사점을 발견합니다. 한 사람의 교육자, 한 사람의 교사가 시조운동을 하면 그 파급효과가 생각보다 엄청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현재 교직에 계시거나 교직 출신 시인님들이 많이 참석하신 줄 아는데 여러분들이야말로 시조문학의 발전전략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시조를 가르쳐야만 우리 시조가 살아남습니다. 지금 교육부의 높은 양반들은 이 점을 잘 모릅니다. 교과서에 시조가 없거나 교과과정에 없다고 해서 안 가르쳐서는안 됩니다. 일제시대 때 정규시간에 조선역사나 조선어과정이 있어서 가르쳤습니까? 오늘 여기 계신 분들도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해 오셨겠지만 그 노력을 앞으로 보다 가시적으로 활성화 해주시기 바랍니다. 요새는 전국 각지에서 동시조에 주목하여 동시조 전문지도 나오고 있지만 책보다는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시조교실을 열어 시조를 가르칠 교사를 육성하여야 할 때입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전·현직 교사를 중심으로 전국 시조교실을 열어 어린이시조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하다보니 중앙조직이 필요하여 작년에 한국 최초로 사단법인 세계시조사랑협회를 창설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당장은 허허벌판에 씨 뿌리는 일이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치어를 방류하는 것과 같습니다. 언젠가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것을, 또 모천으로 회귀할 것을 기대해 보지만 그것은 우리가 죽고 난 먼 후대의 일일 수 있습니다. 당장의 영광은 없을지라도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조를 생존시키고 발전시키는 위대한 전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울산에서 불을 지핀 이 운동은 지금 부산으로 옮아붙어 전국으로 확산 중에 있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동참하여 같이 나아간다면 부산이 "시조의 메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시조의 세계화를 위하여 여러 번 중국에도 건너가 연변, 심양, 북경 등지에 있는 조선족 시인·작가를 만나 이 운동을 역설하고 40여명이 참석한 중국연변작가협회에서 강연도 하면서 동참을 호소한 바 이번에 중국 6개 도시에서 50여 명의 학생들이 시조작품을 보내왔는데 그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이것은 그곳 학교의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시조창작교실을 열고 지도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산의 경우, (울산도 마찬가집니다만) 실망스러운 것은 지금의 어린이시조운동이 작년 한번 반짝하다가 금년에는 약간 주춤한 것 같습니다. 작년에 열성적이던 분들이 금년에는 개인사정이 생겨 손을 떼시면서 일시적으로 생긴 공백으로 보고 싶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이것은 따로 경비나 월급을 주지 못하니 자발적인 자원봉사가 아니면 계속할 수 없는 사업입니다. 청소년시조운동의 성패는 일선교사 여러분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이 다시 한번 시조의 불을 당겨주시지 않으렵니까? 이것이 한 두 해 하다말 그런 운동이 아니 잖습니까? 6. 나오며지금까지 길게 말씀드렸지만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결론이라야 이미 앞서 한 말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만약 이것저것 다 그만 두고 지금 이대로 시조를 방치하거나 방관해 둔다면 어찌 될까요? 그냥 두어도 시조는 자생력이 있어 쉬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조현실이 시조협회가 창설되던 40여 년 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듯이 버려두면 그저 개밥에 도토리 식으로 무관심과 냉대 속에 뒹굴다가 언젠가 용도 폐기되어 시렁 위에 얹히고 말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 시조의 발전을 위해서는 뛰어난 작품이 "어서"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근대의 소월이나 조운, 노산, 이호우 같은 걸출한 시인이 나오든지 일본의 바쇼 같은 하이꾸인이나 비교적 최근의 다와라마치 같은 뛰어난 여류 단가인이 나오면 시조는 발전하지 말라고 해도 발전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조시인 중에 그런 분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없다면 우리는 어린 꿈나무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시조사랑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시조시인의 의무이자 소명입니다. 올해도 곳곳에서 시조행사가 많이 열립니다만 실천 없는 세미나만 백 번 천 번하면 뭐합니까? 세미나를 단순한 친목도모로만 끝내지 말고 시조의 위상을 돌아보고 우리가 할 바를 깨닫고 깨달았으면 실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도 부산시조협회가 작년에 "교사시조 직무연수"를 한 것은 우리 시조사에 남을 큰 업적입니다. 이것은 활용여하에 따라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편가르기가 유행입니다만 시조에 관한 한 우리는 누가 뭐라든 그 누구의 편도 아닌 '시조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시조의 편이 되어 꿈나무를 키우는 것이 우보천리행의 오늘의 주제 '시조문학의 발전전략'입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시조의 세계화는 우수한 시조시인이 나오고 우수한 작품이 나오면 저절로 될 것이고 거기다가 아직도 미흡한 시조번역이 덩달아 활발해지면 노벨상도 시조부문에서 나올 것을 저는 확신입니다.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2004.8.15 합천 해인사에서 개최된 부산시조협회 여름세미나에서 한 주제발표문입니다.

ㆍ작성자	검정삿갓
ㆍ작성일	2005/05/08 (일) 15:23
ㆍ분 류	시조

ㆍ조회: 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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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문학의 발전전략. 위기의 시조, 그냥 둘 것인가 / 박구하

1. 들어가며
오늘의 주제를 "시조문학의 발전전략"이라고 했습니다만 지금 우리 시조문학은 어찌 보면 생사기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어 '발전' 이전에 '생존'의 전략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시조는 우리 것이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니 반드시 살려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너무 들어서 신물이 나고 또 그런 감상적인 이유만 가지고는 왜 우리가 시조를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납득할 만한 이론,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시조가 더 이상 문학으로서 행세를 못하거나 시조문학이 우리 생활에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면 우리는 오늘 이런 세미나를 가질 필요도 없고 시조를 씁네 하고 고심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2. 시조문학의 가치
시조문학의 발전전략 이전에 시조는 과연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학인가, 발전시킬 가치가 있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 시조를 써오면서도 "왜 쓰는지, 왜 써야하는지, 자신의 작품이 어떤 기여를 하는지" 하는, 시조문학의 가치에 대한 자기확신 내지 논리를 확립하고 시조를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의외로 많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것이라고 다 좋고 우리 것이니까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아전인수격입니다. 무릇 가치란 어떤 필요성과 기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정서에 맞고 또 자유시를 포함하여 다른 문학장르가 하지 못하는 특유의 역할과 기능성이 있을 때 시조는 가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 기능과 역할, 정서에의 적합성 등이 없어지거나 변질된다면 시조의 존재가치는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시조의 기능성과 관련하여 시조는 만능선수인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시조로 표현 못할 것이 없다고도 하지만 시와 소설이 다르듯이 역시 "시조로 표현할 것과 시로 표현할 것이 따로 있다"고 한 박재삼 시인의 말처럼 시조는 산문시와 달리 그 자체로 한계가 있는 장르라고 할 것입니다. 21세기 첨단의 시대로 갈수록 시는 짧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에서 시조는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경제원리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가장 첨단적인 장르라 하겠습니다. 그만큼 가치가 점증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조가 생성된 지 7백년이라고들 하는데 그 오랜 동안 시조는 그 기본틀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런 예는 세계적으로 극히 드뭅니다. 뒤에 말씀드리겠지만, 오늘날에 와서 그 틀을 변질시키려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3장6구라는 시조의 기본형식은 수백 년을 두고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시조라는 우탁(1263-1342)의 '탄로가'를 보아도 그 율격은 오늘날 율격 그대로입니다.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만물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이 말은 제 말이 아니고 지난 20여 년 동안 시조를 지원해 오고 계시는 통도사의 성파스님에게서 들은 법문입니다. 수레의 바퀴는 돌아도 그 중심축은 돌지 않는 것과 같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마음자리"는 불변이라 들었어요. 개인에게 개성이 있듯이 민족에게도 민족정서가 있고 민족혼이 있는 것입니다. 시대는 변하여도 이 민족정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identity)입니다. 이 아이덴티티는 우리가 사는 한 내버릴 수 없는 겁니다. 우리 민족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로서 시조가 존재하고 그것이 현 시점에서도 우리의 미적 감정에 부합된다면, 그리하여 현대인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다면 시조는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같은 우리 것이라도 신라 향가나 고려 경기체가, 조선의 가사문학은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그 장르가 못나서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추구할만한 가치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리하여 향수층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멸절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가사문학보다 더 오래된 시조는 어떻습니까? 아직 살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3장6구라는 시조의 틀이 시대의 흐름에 상관없이 우리 정서에 맞아 떨어져 시조의 생산과 소비가 병존해 왔기 때문입니다.

시조를 쓰는 이나 읽는 이가 계속 있는 한 시조의 존재가치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조는 그 자체로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를 쓰고 읊고 읽어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존재합니다. 그 그릇으로 구운, 즉 3장6구로 지은 시조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문학적 감흥을 충족시켜준다면 시조의 가치는 분명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조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수월성을 갖추고 있다면 그 시조는 생존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시조는 가치 없는 골동품으로 치부되고 만다는 말입니다.
예컨대 황진이의 시조를 봅시다. 지금도 그녀가 남긴 시조 어느 부분을 읽어봐도 갓 건진 생선처럼 피둥피둥 살아있지 않습니까?

고려청자나 이조백자가 옛날 것입니다만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없어지기는커녕 옛 색깔을 재현해내려고 도예가들이 기를 쓰고 노력하는 것을 보십시오. 도자기의 그 미적인 아름다움이나 실용성이 오늘의 현실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소용되는 바가 없다면 아무도 도자기를 생산하거나 구매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조의 존재가치 내지 존속 여부는 바로 시조의 작품성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우수한 시조 작품이 많이 나오면 많이 나올수록 우리 시조는 그 생명력이 왕성하게 이어질 것입니다.

3. 시조문학의 정체성
그러면 그 가치의 정체는 무엇인가, 즉 시조의 정체성에 대해 알아봅시다.
시조의 정체성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크게 음악성과 회화성, 사회성과 서정성으로 고찰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시간관계상 시조의 형식과 관련한 음악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작품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시조들은 지난 6,7,8월의 《월간문학》에 제가 월평으로 인용했던 예입니다.

② 옹달샘 마주앉아 외태머리 땋을 적에
밭 매던 앞집 오빠 휘파람 부는 뜻을
바람은 알았다해도 전 정말 몰랐어요 (김동진, 「몰랐어요」 첫 수 -시조월드 2004년 상반)

③ 소나기 지나간 숲길/ 엷은 햇살이 비친다.
풀잎에 앉은 사마귀 한 마리/ 위장의 눈망울을 굴리다
앞발의 발갈퀴를 쳐든다./ 온 숲 속이 고요하다.
튼실한 등을 타고/ 몰래 오르는 수컷 사마귀
뭔가 각오한 듯/ 덥석 암컷을 껴안는다.
절정쯤 이르렀을까/ 잡아먹히고 마는 수컷의 운명 (김제현, '순명'전문 月刊文學 6월)

④ 길의 상처를 핥는 혓바닥 같이 고인 물
다 버리고 뎅그러니 가장자리만 남은...
그믐달/ 물웅덩이 속으로/ 미늘처럼 꽃힌다 (선안영, '거울' 전문, 시조시학 2004 봄호)

⑤ 볕고개 노을빛 하늘 저녁연기 몽글몽글
할머니 아궁이엔 불꽃이 바알갛다
해질녘 울타리 넘어가는 연보라빛 콩꼬투리 (울산 병영초등 5년 이효원 어린이시조시인, '외갓집' 전문)

⑥ 빨간 꼬리 탈싹탈싹 개울물 건드린다
하얀 날개 파르르 개울을 만져본다
잠자리 개울물이랑 친구 되고 싶단다 (중국 도문2소학교 6년 강혜경, '잠자리' 전문,)

⑦ 까치가 깍 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 듯이' 전문)

① 나무는 언제나 베풀고 있다. 산소(酸素)를 만들어 주고,
그늘을 만들어 주고, 날짐승 쉬어가라 하고, 산사태(山沙汰)를/ 막아주고 있다. 집을 짓는
기둥이 되고, 종이를 만들 수 있고, 맑고 향긋한 향기(香氣)를 내뿜어주고, 홍수(洪水)로부터
사람을 지켜준다.// 묘목(苗木)이 자라나서 큰 숲을 이루리라.//
언제나 베푸는 삶을 얹어놓고 있니라. (김남준, 「나무처럼」전문, 시조시학 2004 봄호)

①은 시조라고 썼지만 시조라고 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닌 이런 것을 시조전문지에서 그것도 "정예시조시인작품"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작품이라 할 수도 없지만)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양산하는 시조시인이 있고 이를 버젓이 정예작품으로 발표하고 게재해주는 잡지가 있는 현실에서 무슨 시조의 가치를 찾겠습니까? 저는 법을 전공했습니다만 아무리 정의로운 법도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시조임을 포기하는 현실에서 누가 시조의 가치나 정체성을 찾아주겠습니까?

② 옹달샘 마주앉아 외태머리 땋을 적에
밭 매던 앞집 오빠 휘파람 부는 뜻을
바람은 알았다해도 전 정말 몰랐어요 (김동진, 「몰랐어요」 첫 수 -시조월드 2004년 상반)

②는 다소 복고적인 냄새가 나지만 음악성을 말하고자 인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조는 음악성을 잃고 (무시당하고) 회화성 위주로 나가고 있는데 이는 과연 옳은 방향일까요? 시조는 크게 "읊는 시조"와 "그린 시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읊는 시조"는 기본적으로 노래로서 쉽게 읽히고 바로 가슴에 전달되지만 "그린 시조"는 한번 읊고 바로 이해하기 어렵고 혼자서 몇 번이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어보고 때로는 전문가나 비평가의 해설을 들어야 합니다.

④ 길의 상처를 핥는 혓바닥 같이 고인 물
다 버리고 뎅그러니 가장자리만 남은...
그믐달/ 물웅덩이 속으로/ 미늘처럼 꽃힌다 (선안영, '거울' 전문, 시조시학 2004 봄호)

④를 보십시오. 이것이 이미지 시 즉 "그린 시조"인데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갑니까?
시조가 율격을 잃고 "그린 시조"로 간다면 굳이 자유시와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문제는 너무 전문적으로 들어가므로 이만 합니다만 한마디만 부언하면 흔히 시조에서 율격을 벗어나면 시조가 아니라고들 하는데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율격, 율격" 하면서 율격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까요? 그것은 바로 이 음악성, 즉 리듬감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이점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기계적으로 자수율 내지 음보율만 지키면 시조가 되는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파격을 하거나 탈격을 해도 문학성만 잃지 않으면 시조가 되는 줄 알지요. 그래 억지로 그 율격의 제한 속에 이미지를 짜 맞추느라고 낑낑대고 있는데 이거 정말이지 웃기는 얘깁니다.

자수율이 음악성을 살리라고 있는 것인데 그 음악성은 무시하고 음악성과는 상관없는 잣대로(즉 율격으로) 회화성을 살리려고 하니 제대로 되겠습니까? 3·4 3·4 또는 4·4 4·4하다가 종장에 가서 3·5 또는 4·3으로 바뀌는 것은 어떤 회화적 구도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적 리듬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것은 문학적으로 응축, 도약, 해방, 결구 등의 기법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율격이지요. 이런 전차를 모르고서는 아무리 시력이 오래 된 시인일지라도 종장을 제대로 못 씁니다. 종장의 자수는 맞지만 율격이 틀린 예는 중견 내지 중진 시인들의 작품 속에 얼마든지 있어요. 그 실례를 제가 이번 《월간문학》 8월 호에 뽑아놓았어요.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율격은 쉽게 말하면 시조를 쓰는 도굽니다. 시어를 제어하는 도구지요. 그림 그릴 때는 온갖 붓과 물감이 다 있어야 하는데 몇 가지 도구만 가지고 그리라고 제한해 버리면 그 그림이 온당하겠습니까?

노래는 7음계만 있으면 됩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조합으로 어떤 멜로디도 하모니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음악은 그보다 더 적은 음, 즉 5음계나 3음계로 온갖 우리의 한과 정서를 다 표현합니다. 시조의 자수율은 말하자면 바로 그런 겁니다. 서양의 7음계나 우리의 5음계가 악곡을 짓는 도구이듯이 "시조"라는 노래를 짓는 도구가 바로 율격이고 "3장6구"는 오선보와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시조란 3장6구라는 오선보에 율격이란 도구로 쓴 악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악보에 적힌 가사가 바로 시조라는 문학이지요. 그러므로 시조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사만을 볼 때는 문학이지만 그 가사는 노랫말이므로 생래적으로 음악인 것입니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인데 제가 어디서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오늘 처음 발설하는 것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시조가 무엇인지 똑똑히 짚고 넘어갑시다.
'시조'를 '時調'가 아닌 "詩調"니, "時調詩"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말입니다. 시조는 한민족 전통의 시로서 시조의 별칭으로 '傳統詩'라거나 '한국정형시'라고 하는 것은 모르겠으나 '時調詩'니 '詩調'니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時調에서 '時'는 당대, 지금, current, contemporary 라는 뜻이요 '調'는 노래, 곡조, 멜로디, 리듬, 악곡, key 뭐 이런 뜻입니다. 옛날에는 시조가 노래로 쓴 문학이었지 노래와 동떨어진 시조는 없었습니다. 즉 시조의 어머니는 곡조요, 아버지는 가사였던 셈이지요. 이 곡조와 가사를 합쳐서 '時調'라고 불렀던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 시조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시조가 회화성에 치우치는 것은 과연 옳은 방향인가 하는 점을 우리가 깊이 상고해 봐야합니다. 그러므로 시조를 음악성과 분리해 놓는다면 그것은 반쪽 시조로서 이미 변질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보십시오.
리듬을 무시한 무잡한 연시조나 장시조(속칭 사설시조)를 남발하고, 혼합(짬뽕)시조를 유포시키고, '時調詩' 니 '詩調' 니 하는 신조어를 내세우고, 시조를 난해한 "그림시조"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시조의 음악성을 되살려야 합니다. 음악성이야말로 시조의 정체성입니다. 일찍이 음악성 있는 시와 비음악적인 시를 두고 어느 쪽이냐 하면 전자가 더 감흥이 많고 독자도 많은 것으로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야구에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시조단은 하루빨리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조는 문자로 쓴 노래입니다.

② 옹달샘 마주앉아 외태머리 땋을 적에
밭 매던 앞집 오빠 휘파람 부는 뜻을
바람은 알았다해도 전 정말 몰랐어요 (김동진, 「몰랐어요」 첫 수 -시조월드 2004년 상반)

자, ②를 다시 보십시오. 그저 술술 읽으면 리듬감이 출렁출렁 살아나고 뜻도 쉽게 전달되면서 어딘지 아련한 토속적인 정취가 우리 감성의 뇌관을 건드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⑦ 까치가 깍 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 듯이' 전문)

이런 음악성은 어린이시조(⑤,⑥), 동시조(⑦)에 특히 많아요. 아주 좋은 현상이지요. 이 음악성은 어디서 옵니까?
바로 시조의 자수율과 음보율에서 오는 것입니다. 3·4 3·4의 자수율은 읊으면 뭔가 절로 꿈틀꿈틀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③을 보십시오. 이 작품은 내용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지만 전통적 자수율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파격을 보이고 있어요. 잘 읽으면 의미율로는 4음보의 보법으로 읽히지만 5음절 이상 되는 과음보가 무려 12군데나 됩니다. 이렇게 과음보가 많으면 시조 특유의 리듬감과 율격상의 도약과 반전효과가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로는 시조의 지평을 넓힌다고 하지만 이런 시조를 쓰면 시조의 정체성을 흔들 위험성이 큽니다. 또, 그것이 거부감 없이 시조시인에게 차츰 퍼지게 되면 경제학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언제 소리 소문 없이 시조는 가사문학처럼 그 명맥을 잃게 될지 모릅니다.

4. 시조문학의 현실
이제 우리는 조그만, 그러나 아주 소중한 결론 하나를 이끌어냈습니다. 즉, 시조를 "잘" 써야, 시조를 "시조이게" 써야 시조가 살아남는다는 결론 말입니다. 이 평범한 말이 그대로 오늘날 시조문학의 생존전략이자 발전전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목하 우리 시조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작품의 질이 뛰어납니까? 우수한 시조시인이 많이 나기를 합니까? 치열한 시조정신이 있습니까? 문단이나 자유시단에서 시조를 제대로 대우해 줍니까? 시조협회가 창설된 지 40년이 흘렀어도 시조회관 하나 있습니까? 제대로 된 협회 사무실이 하나 있습니까? 전문 월간지가 하나 있습니까? 시조에 관한 문학이론이 제대로 서 있습니까? 제대로 된 번역이나 비평이 있습니까? 교육계의 배려나 독지가의 지원이 있습니까?

이처럼 지금 우리 시조에는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
그러면 '있는 것'은 없을까요? 왜요? 있는 것도 많습니다. 시기와 질투와 아집과 편가르기가 있습니다. 자기 비하와 타인 폄하와 냉대와 냉소가 있습니다. 특정인에 의한 신춘문예 심사독점, 각종 문학상 수상독점과 정실주의, 인상비평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조단은 사람의 인체로 말하면 골병 든 병신꼴을 하고 있어요. 머리부분은 볼 줄 모르니 눈멀고 들을 줄 모르니 귀먹고 비판할 줄 모르니 벙어리인 3불능 농맹아요, 몸체는 열정과 사랑과 의욕의 피가 부족한 빈혈증과 혼자만의 독식으로 소화불량증에 당뇨병자이며, 하체는 실천할 줄 모르는 앉은뱅이요, 절름발이에 단 한번의 외부충격에도 와장창 무너지는 골다공증환자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시조단에는 신춘문예 출신이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고 등단하신 지 오래된 원로시인들도 많이 계십니다만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그분들이 각광을 받은 만큼 시조단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습니까? 청사에 길이 남을 시조작품 하나 쓰셨습니까? 아, 아직 진행중이라고요? 그건 그렇다 치고 현재 시조발전을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하고 계십니까?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다 나름대로 시조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임을 압니다. 적어도 이런 세미나에 참석한다는 것도 분명 시조를 사랑하는 일 중의 하나에 들어갈 테니까요. 그러나 진짜로 시조를 사랑하는 일은 여기 오시는 일 말고도 많습니다.

비근한 예를 들면 시조시인들 치고 돈을 내고 시조집이나 전문잡지를 구독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매체에 이름내기에 급급하고, 온갖 일에 다 간섭하고, 온갖 상은 다 타야하고, 온갖 모임에서 폼 잡는 일에 연연해하는 사례는 많습니다.여러분, 시조시인이 암만 가난하다해도 시조전문지 하나 정기구독 못할 만큼 가난합니까? 지금 20년 이상 된 시조전문잡지《현대시조》가 재정난으로 이번 여름호를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못하고 폐간되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과거 연극이 어려울 때 뜻있는 사람은 연극계를 지원하기 위해 공짜 초대권을 받아도 돈을 내고 보았는데 시조잡지도 돈 내고 보고 주위에 적극 구독하도록 소개하는 것이 시조사랑의 출발이자 시조시인의 최소한의 의무일 것입니다. 요즘 책이 안 팔린다 안 팔린다 하지만 잡지, 그것도 문학잡지, 그것도 시조잡지만큼 안 팔리는 책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광고가 잘 들어옵니까? 원고료 없이 좋은 글 기대할 수 있습니까? 거듭 말하지만 시조시인이라면 시조잡지 한두 권은 자기 돈으로 구독해주는 것이 시조사랑의 출발입니다.

5. 시조문학의 발전전략
우리 시조단의 문제점은 벌써 진단이 되어 있고 다들 알고 있는 사실들이라 제가 굳이 중언부언하지 않겠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 중 두 가지만 들겠습니다

첫째 시조의 고급화만이 시조의 살길입니다.
시조는 원래 고급제품이었고 상류사회의 전매특허품으로서 출발하여 점차 국민문학으로 발전되었던 것인데 조선조 말엽에 와서 상스럽고 잡스런 장시조가 나오면서 물이 흐려지더니 현대에 와서 시조의 지평을 넓힌답시고 일부 시인들이 장시조를 남발하고 게다가 내용까지 성담론 같은 저속한 이야기 등을 다루거나 단시조에 중시조나 장시조를 섞어 만든 기형적인 짬뽕시조를 창안하고 이런 것들을 신춘문예나 신인상에 당선시키는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시조는 저질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허접데기 소재라고 시조로 못 쓸 것은 아니지만 문학적으로 고양되지 않은 생짜배기 토설은 역겨울 뿐입니다. 거기다가 무슨 실험이다 전위다 하여 고유의 형식까지 무시하거나 파괴하려고 드는데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얼마 전 영남대의 박태일 교수는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라는 글에서 지금 우리 지역문단을 횡행하는 것은 '아마추어리즘'과 '정실주의'임을 지적했습니다. 또 이호철 소설가는 얼마 전 "패거리문학"이라는 책을 내었는데 거기서 문인들이 글은 안 쓰고 몰려다니며 패거리나 짓고 패거리 중의 일원 즉, "one of them" 이 아니면 행세 못하는 문단실태를 개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조사회도 예외 없이 '죽은 시인의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중이 염불을 못하면 중이 아니듯 시인이 시를 못 쓰거나 쓴다 해도 수준 이하, 상식 이하의 시를 쓴다면 시인이 아닙니다. 시조는 시가 된 후에 다시 시조가 되어야 하는 이중의 작업이므로 시인보다 시조시인은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시조는 형식상 율격에 맞아야 하고 내용상 격조가 있으면서도 문학성이 높아야 합니다. 이런 좋은 시조를 못 쓰겠거든 좋은 시조를 쓸 수 있는 여건 조성에 동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은 시조를 쓰지 마십시오. 더 이상 시조의 물을 흐리지 말고 한사람의 시조 애독자로 남아 있는 것이 훨씬 시조단에 득이 됩니다.

둘째 시조의 노령화 탈피 즉 청년화입니다.
요새 웰빙 시대를 맞아 젊은 부부들이 아기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는다고 하는데 어느 집이든 아기 울음이 들리지 않는 집에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청소년층에는 시조지망생이 줄어들고 정년퇴직자나 늙은 신인은 넘쳐납니다. 지금 시조시인이 1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 연령분포는 40대 이상이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이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이 점이 우리 시조단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늙어서 들어와도 시조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시조계에 들어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어릴 때부터 시조를 배워 그 가락을 알고 있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시조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시조교육을 받았고 시조 몇 수 정도는 늘 외우고 살아온 세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초·중등교육은 어떠합니까? 시조를 고리타분한 옛 유물쯤으로나 아는 것이 오늘날 교사나 학생들의 공통된 인식입니다.

시조인구의 노령화는 시조작품의 노쇠화로 바로 연결이 되고 후진을 키우지 않은 채 우리 세대마저 가고 나면 시조는 생산자도 소비자도 공멸하여 고사해 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꿈나무를 육성하는 일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극히 최근까지 우리 시조단에 아무도 이 문제를 심도 있거론하거나 어떤 운동을 벌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장 눈앞의 과실 따먹기만 좋아하고 상이든 뭐든 '누가 안주나' 하고 쳐다 볼 뿐이었습니다. 그 많은 문학상 중에 꿈나무 시조상이 몇 개나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 하나도 없습니다. 겨우 무슨 무슨 백일장에서 학생부 장원을 뽑아 공책이나 시조집 한두 권 주는 것으로 끝나는 정도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저는 미국에 있는 김호길 시인을 비롯해 일부 뜻있는 시조시인들과 함께 수년 전부터 울산에서 어린이시조 육성운동을 펼쳐왔으며, 작년에는 부산에서 세계시조사랑축제를 가져 현재까지 총4기 400여명의 세계어린이시조시인을 배출하였습니다. 이들이 다 시조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들은 커서 시조가 무엇인지 알고 주위에 시조를 알리는 우군이 되거나 스스로 시조의 애호인이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욱 많은 어린이시조시인을 배출할 것입니다. 지금 마땅한 후원자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개인 사재를 털어 이 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게 어디 어느 개인이 할 사업입니까? 정말로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 운동은 국가단체에서 맡아 거국적으로 교육하고 지도해야할 사업입니다.

오늘 날 부산시조협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도 우연히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개인의 희생적 노력이 기틀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1970년대 부산시내 교사시조운동을 주도했던 당시 장학사 살매 김태홍 선생이 바로 그 분입니다. 여기서 저는 또 하나의 시사점을 발견합니다. 한 사람의 교육자, 한 사람의 교사가 시조운동을 하면 그 파급효과가 생각보다 엄청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현재 교직에 계시거나 교직 출신 시인님들이 많이 참석하신 줄 아는데 여러분들이야말로 시조문학의 발전전략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시조를 가르쳐야만 우리 시조가 살아남습니다. 지금 교육부의 높은 양반들은 이 점을 잘 모릅니다. 교과서에 시조가 없거나 교과과정에 없다고 해서 안 가르쳐서는안 됩니다.

일제시대 때 정규시간에 조선역사나 조선어과정이 있어서 가르쳤습니까? 오늘 여기 계신 분들도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해 오셨겠지만 그 노력을 앞으로 보다 가시적으로 활성화 해주시기 바랍니다. 요새는 전국 각지에서 동시조에 주목하여 동시조 전문지도 나오고 있지만 책보다는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시조교실을 열어 시조를 가르칠 교사를 육성하여야 할 때입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전·현직 교사를 중심으로 전국 시조교실을 열어 어린이시조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하다보니 중앙조직이 필요하여 작년에 한국 최초로 사단법인 세계시조사랑협회를 창설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당장은 허허벌판에 씨 뿌리는 일이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치어를 방류하는 것과 같습니다. 언젠가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것을, 또 모천으로 회귀할 것을 기대해 보지만 그것은 우리가 죽고 난 먼 후대의 일일 수 있습니다. 당장의 영광은 없을지라도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조를 생존시키고 발전시키는 위대한 전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울산에서 불을 지핀 이 운동은 지금 부산으로 옮아붙어 전국으로 확산 중에 있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동참하여 같이 나아간다면 부산이 "시조의 메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시조의 세계화를 위하여 여러 번 중국에도 건너가 연변, 심양, 북경 등지에 있는 조선족 시인·작가를 만나 이 운동을 역설하고 40여명이 참석한 중국연변작가협회에서 강연도 하면서 동참을 호소한 바 이번에 중국 6개 도시에서 50여 명의 학생들이 시조작품을 보내왔는데 그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이것은 그곳 학교의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시조창작교실을 열고 지도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산의 경우, (울산도 마찬가집니다만) 실망스러운 것은 지금의 어린이시조운동이 작년 한번 반짝하다가 금년에는 약간 주춤한 것 같습니다. 작년에 열성적이던 분들이 금년에는 개인사정이 생겨 손을 떼시면서 일시적으로 생긴 공백으로 보고 싶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이것은 따로 경비나 월급을 주지 못하니 자발적인 자원봉사가 아니면 계속할 수 없는 사업입니다. 청소년시조운동의 성패는 일선교사 여러분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이 다시 한번 시조의 불을 당겨주시지 않으렵니까? 이것이 한 두 해 하다말 그런 운동이 아니 잖습니까?

6. 나오며
지금까지 길게 말씀드렸지만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결론이라야 이미 앞서 한 말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만약 이것저것 다 그만 두고 지금 이대로 시조를 방치하거나 방관해 둔다면 어찌 될까요? 그냥 두어도 시조는 자생력이 있어 쉬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조현실이 시조협회가 창설되던 40여 년 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듯이 버려두면 그저 개밥에 도토리 식으로 무관심과 냉대 속에 뒹굴다가 언젠가 용도 폐기되어 시렁 위에 얹히고 말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 시조의 발전을 위해서는 뛰어난 작품이 "어서"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근대의 소월이나 조운, 노산, 이호우 같은 걸출한 시인이 나오든지 일본의 바쇼 같은 하이꾸인이나 비교적 최근의 다와라마치 같은 뛰어난 여류 단가인이 나오면 시조는 발전하지 말라고 해도 발전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조시인 중에 그런 분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없다면 우리는 어린 꿈나무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시조사랑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시조시인의 의무이자 소명입니다. 올해도 곳곳에서 시조행사가 많이 열립니다만 실천 없는 세미나만 백 번 천 번하면 뭐합니까? 세미나를 단순한 친목도모로만 끝내지 말고 시조의 위상을 돌아보고 우리가 할 바를 깨닫고 깨달았으면 실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도 부산시조협회가 작년에 "교사시조 직무연수"를 한 것은 우리 시조사에 남을 큰 업적입니다. 이것은 활용여하에 따라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편가르기가 유행입니다만 시조에 관한 한 우리는 누가 뭐라든 그 누구의 편도 아닌 '시조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시조의 편이 되어 꿈나무를 키우는 것이 우보천리행의 오늘의 주제 '시조문학의 발전전략'입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시조의 세계화는 우수한 시조시인이 나오고 우수한 작품이 나오면 저절로 될 것이고 거기다가 아직도 미흡한 시조번역이 덩달아 활발해지면 노벨상도 시조부문에서 나올 것을 저는 확신입니다.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2004.8.15 합천 해인사에서 개최된 부산시조협회 여름세미나에서 한 주제발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