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형식 실험의 의지와 민중적 세계관   3. 국민문학파와 KAPF사이에서의 균형감각   4. 결론

1. 서론
1900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난 조운은 전남지방의 근대문학을 태동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 그가 영광중학원에 교사로 재직시 만든《自由藝苑》이라는 문학서클은 전남지방 최초의 문학동인이었으며, 그가 1924년 『조선문단』에 발표한〈초승달이 재넘을 때〉란 작품은 이 지방 최초의 근대시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또한 그는 그가 주력한 현대시조 분야에서도 이 지방의 선구적 인물이었다. 六堂, 鷺山, 嘉藍으로 이어지는 시조문학 부흥의 기수 틈에 어울려 그들 중의 누구보다 시조를 혁신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근대성의 시조 문학 수준을 몇 단계 끌어 올린 것으로 문학사적 의의를 부여받고 있다.

2) 그러나 이러한 평가들은 극히 최근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그는 1919년 공립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고 3일1운동에 가담했고,

3) 1934년에는 항일민족자각운동의 일환으로《갑술구락부》를 결성, 각종 문화운동을 주도했으며, 1937년에는 ‘영광체육단’ 사건으로 1년 7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1945년 해방이 된 지 이틀 후인 8월 17에는 건준 영광 지부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으로 나섰다.

4) 이후 조운은 1949년 가족과 함께 월북함으로써 1988년 월북작가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의 작품은 문학사적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해방이후 해금될 때까지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해 이루어진 연구로는 이태극,5) 한춘섭,6) 박을수,7) 임선묵8)의 단편적인 언급만이 있었을 뿐이며, 해금 이후에 이루어진 연구의 경우에도 조운의 생애와 발표작품에 대한 전기적이고 서지적인 고찰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9) 전기적 사실과 함께 그의 작품에 대해서 비교적 깊이 있게 논의한 것으로는 조창환10), 곽동훈,11) 여동구12), 김종호13)의 논문이 있다. 이들의 논문은 조운의 시조가 지닌 형식에 구조주의적 방법으로 접근함으로써 그의 시조가 고시조나 여타의 현대시조와 갈라서는 형식적 변별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조창환은, 조운의 문학적 업적은 시조 양식의 규범성을 자유로운 형태미에 의해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자유시의 내재율에 접근시켰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고, 그것이 현대시조의 양식적 진폭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14) 그러나 이들의 논의는 조운의 시조가 독특한 시행 배열 방식을 지니고 있음을 밝혀내긴 했지만, 그러한 형태가 산출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까지는 천착하지 못 했다.

당시에 창작된 시조들은 작가에 따라 그 형태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현대시조 작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六堂의 《百八煩惱》에 실린 시조들은 모두 고시조와 달리 6행3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15) 鷺山은 兩章형태를 시도했고, 嘉藍은 연시조를 주로 썼다. 이들은 모두 조선주의의 본령이 시조임을 주장하고 시조부흥에 앞장섰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실제 창작 경향과 시조의 형태면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이 시기에 시조가 시조창 위주의 노래에서 읽는 ‘시’로 변화한데서 비롯됐다. 단순히 3장이나 5장 형태로만 구분되던 것이, 이 시기에 와서는 근대시처럼 행과 연의 구분이 생기게 된다. 이에 따라 창작과 연구 양 측면에서 시조의 형식에 대한 탐구가 이어졌다.

이렇게 근대에 들어 서로 다른 형식의 시조가 시도되었던 이유에 대해, 김윤식은 시조에 대한 도남 평론과 가람 시조학, 이호우 시조학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그러한 형식의 차이가 작가가 지닌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됨을 밝힌 바 있다.

16) 그에 따르면, 당시 시도되었던 (A)연작형(대체로 3首型)과 (B)단수형(單首型)의 두 시조 형식의 존재양식은
①멋을 기반으로 하는 詞章派적 선비계층의식과
②단순, 명백한 주자학적 철학관에 의거한 道學派적 선비계층의식에 대응된다.

17) 여기서 ‘연작형’이라 함은 현대시조의 ‘형식초과’ 경향을, ‘단수형’은 고시조의 정형시적 성격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18) 그는 현대시조의 형식을
①정형시를 초과하려는 경향,
②정형시를 고집하려는 경향,
③정형시에 미달한 형식으로 구분하고, 그 형식의 바탕이 된 의식을 주자학적 세계관의 테두리 안에서 논하고 있는 것이다.

조운의 시조 형식은 김윤식이 밝힌 연작형과 단수형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수형 작품이 연작형 작품보다 그 수가 월등히 많다. 그런데 조운의 시조는 그 형태, 즉 독특한 시행 배열 방식으로 인해 정형시의 추구라는 단수형의 경향과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 그 형태와 내용 모두에서 주자학적 세계관으로는 설명할 없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그의 시조는 그 독특한 형태로 인해, 정형시를 초과하거나 정형시를 추구하려는 경향과는 또 다른 어떤 지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운 시조의 위치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1920년대에 전개된 시조부흥운동이 3.1운동 이후에 고조된 민족주의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조부흥운동은 주자학적 세계관에 앞서 민족주의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자학적 세계관이 부활하게 된 배후에는 민족주의가 놓여 있으며, 주자학적 세계관은 민족주의 지향의 하위 유형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가람 시조학이나 이호우의 시조학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주자학적 세계관의 배후에는 복고적이며 보수적인 민족주의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조운의 시조는 민족주의의 지향 속에서 산출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가람, 이호우의 시조와 동일하지만, 주자학적 세계관으로 설명될 수 없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본고는 골드만의 견해19)를 따라 먼저 조운의 시조 형식과 그의 계층의식을 검토하고 그 형식과 계층의식이 결합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결합이 1920년대를 관통했던 민족주의의 지향 속에서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는 지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2. 형식실험의 의지와 민중적 세계관
조운은 1921년부터 6～7년간에 걸쳐 약 43편의 자유시를 발표했다. 시와 시조를 함께 쓰던 그는 1925년 5월『조선문단』에 시조〈法聖浦 十二景〉을 발표하면서 시조에 관한 관심을 높이다가 1927년경부터는 시조만을 창작하게 된다. 이때부터 쓰여진 시조들 중에서 73편을 가려 뽑아 1947년 출간한 것이 조운의 유일한 시조집인《조운시조집》이다.

이 시조집에 실려 있는 시조 중에서 14편은 시조집 출간 이전에 다른 지면에 발표되었던 것들인데, 이 중에는 일부 개작된 것들이 있어 조운 시의 형식적 특성을 살피는 실마리가 된다.

     뷘방만 녀기고서 함부로 지꺼리든
     처마에 새 두 마리 기침에 다라난다
     열없어 나려지는 티끌만 물그럼이 보노라
                                      <獨坐〉全文20)

     뷘방만 여기고서
     함부로 수뚸리든
     처마에 새 두 마리
     기침에 달아난다
     열쩍어
     나려지는 먼지만
     물그럼이 보노라 
        <獨居〉全文21)

두 시조를 비교해 보면, 두 번째 시조는 똑같은 시조를 시행 배열과 어휘 면에서 약간 손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쓰여진〈獨坐〉는 조운 시조의 형식 중에서 매우 드문 유형에 속한다. 이러한 형식으로 쓰여진 작품은《조운시조집》과 그 외의 지면에 발표된 조운의 전 작품을 통틀어 이 〈獨坐〉와 1932년 12월에 동아일보에 발표된 〈달도 노엽다〉의 단 두 편이 있을 뿐이다.

〈獨坐〉가《조운시조집》에 수록되면서 바뀐〈獨居〉의 형식은 조운의 시조 형식을 대표하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조는〈獨居〉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단시조의 한 장을 한 연의 형태로 배열하고, 한 장을 다시 1행, 2행, 3행 등으로 다양하게 나눠쓰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이 시기 시조 시인들이 실험했던 6행3연이나 양장, 연작 등과는 달리 조운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적 형식은 조운이 남긴 80편의 시조 중에서 60여 편에서 나타나 그의 시조 형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獨坐〉에서〈獨居〉로의 개작은, 이 당시 정형시를 추구했던 작가들이 주로 썼던 3행1연이나 6행3연의 형태와 뚜렷이 구분되는 것으로서, 정형시에 머물지 않으려는 그의 시조 형식 실험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렬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사용했던 시조의 형식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것은 고시조와 유사한 형식으로 쓰여진 연작형을 들 수 있다. 연작으로 쓰여진〈善竹橋〉〈湖月〉〈石潭新吟〉과 같은 시조들은 기행시편에 속하는 것으로, 기행시조가 연작으로 쓰여지는 것은 고시조에서도 보편적인 일이었다.

고시조에서의 연작은〈五倫歌〉〈訓戒子孫歌〉등과 같이 유교적 덕목을 가르치기 위한 경우나〈高山九曲歌〉〈瀟湘八景〉등과 같이 일종의 기행시조로서 敍景을 담기 위한 경우에 주로 사용되었다.

22) 기행하는 기간이 길고 기행에서 얻은 각각의 대상에 대한 감흥을 보고하자니 자연 연작형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조운의 연작 기행시조 또한 그러한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행시조의 경우에는 보고해야 할 내용이 많아 시조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형식실험을 시도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고시조와 같은 연작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3) 그런데, 조운의 작품 중에는 기행시조가 아니면서도 연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조운시조집》의 4부 ‘停雲靄靄24)’에는 가족과 벗들에 대한 정을 읊은 14편의 작품들이 실려 있는데, 이 중에서〈비 맞고 찾아온 벗에게〉〈어머니 回甲에〉〈돌아다 뵈는 길〉〈病友를 두고〉〈停雲靄靄〉〈曙海야 芬麗야〉등은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어머니 回甲에〉는 늙으신 어머니에 대한 정과 안타까움을 읊은 것이고, 나머지 작품은 모두 최서해로 보이는 벗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들은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나 기행시조가 아닌데도 연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고시조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다.

    밤낮 마주 앉아 얘기 끝이 없었것다
    三年이 十年만하여 할말이 좀 많으리
    대하니 말도 눈물도 막혀 물그럼이 보기만.

    窓이나 발라주고 떠나오자 하던것이
    비 개인 밤바람은 몹시도 차고 차다
    蚊布가 눈에 밟히네 어이 갈꼬 어이 가.

    作別을 차마 못 마쳐「떠날 때 또 다녀가마」
    아예 못할 짓을! 이게 맘에 걸리네나
    찬 달이 기울었는데 상기 깨어 있는가?

    故鄕에 돌아가면 무어이라 이르를꼬
    깨물고 남은 찌겅이 病 안구어 내쳤는데
    그병도 맘은 못 새기드구 걱정 마소 하리라.
                        〈돌아다 뵈는 길25)〉全文

이 작품은 그 부제와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중병으로 외로이 누워 있는 친구 최서해를 찾아보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느낀 감회를 기록한 것이다. 고시조의 연작형이 대등한 것끼리의 병렬적 구성을 취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비해, 이 작품은 시간적 경과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또한 고시조의 연작형들과는 달리 벗에 대한 안쓰러움과 근심이라는 일상적 생활감정을 노래하면서도, 그것을 유교적인 교훈적 덕목과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 작품은 고시조의 연작형과는 다른 구성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고시조의 연작형과 구분되는, 조운의 연작형 시조가 지닌 독특함은 조운과 親交의 정을 나우었던 가람의 영향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람은 1932년 동아일보에 발표된「시조는 혁신하자」라는 글에서 고시조 풍의 혁신을 위한 몇 가지 창작이론을 제안했는데, 그의 주장은
1)實感實情을 찾자,
2)取材의 範圍를 확장하자,
3)用語의 數三(선택),
4)格調의 變化,
5)連作을 쓰자,
6)쓰는 법, 읽는 법 등의 여섯 가지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連作을 쓰자’는 주장은 가람 시조론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는 실제 창작에서도 당대의 누구보다도 많은 연작형 시조를 창작해냈다.

從來의 時調에는 한 首가 한 篇이 되게 하여 완전히 한 獨立한 생각을 表現하였다. 물론 이렇게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生活相은 예전보다도 퍽 複雜하여지고 새 刺戟을 많이 받게 됨에 따라 또한 作者의 成功도 가지 가지로 많을 것이다. 그것을 겨우 한 首 만으로 表現한다면, 아무리 그 線을 굵게 하더라도 될 수 없으며, 된대야 부자연하게 되고 말 것이니, 자연 그 表現方法을 展開시킬 수 밖에 없다. 워낙 時調形 그것부터가 얼마라도 展開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연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表現方法을 展開시키자는 것은 곧 連作을 쓰자 함이다. 그러면 連作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한 題目을 가지고 한 首 以上으로 몇 首까지든지를 지어 한 篇으로 하는데, 한 題目에 대하여 그 시간이나 위치는 같든 다르든, 다만 그 感情의 統一만 되게 하는 것이다.
 
26) 가람은 연작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로 생활현실의 복잡화를 들면서, 현대의 시조는 현대인의 복잡한 정서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시조는 혁신하자」의 첫 번째 주장인 ‘實感實情을 찾자’는 것과도 통하는 내용이다. 현대의 시조는 가상화된 관념세계나 이상화된 공간만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운의 위 시조〈돌아다 뵈는 길〉은 ‘實感實情’을 표현하자는 가람의 주장에 부합되는 연작형 시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는 가람이 연작의 원리로 제시한 ‘감정의 통일’도 이루어져 있다.27) 이 작품은 벗에 대한 안쓰러움과 이별의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작품 전체를 제어하면서 시간적 경과에 의해 구성된 각 연을 통일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조운의 시조 형식을 살펴 본 바에 따르면, 그의 시조 형식은 크게 단수형의 변형(각 장을 한 연으로 하고 각 장을 1행, 2행, 3행 등으로 배열한 것

28))과 연작형으로 나뉜다. 두 유형 중에서도 단수형의 변형이 연작형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서, 이러한 형식을 조운 시조의 대표적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수형의 변형은 앞서 김윤식이 제시한 현대시조가 현대성을 획득하면서도 주자학적 세계관을 담을 수 있는 두 가지 형식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조운 시조의 대표적 형식인 단수형의 변형은 연작형과 단수형, 즉 형식초과 경향과 정형시 추구 경향, 어느 것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특히 그의 시조는 6행 3연의 일관된 단수형을 쓴 이호우와는 달리 分行을 자유롭게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實感實情’을 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적 단수형 지향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그의 시조 형식은 어떤 세계관의 영향으로 산출된 것인가?

조운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먼저 참고해야 할 것은 조운의 이력이다. 가람이나 이호우가 선비적 취향을 지녔던 데 비해, 조운은 이들과는 다른 계층적 위치에 있었다. 본처가 아닌 소실 태생이었던 조운은 3.1운동에 참여했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초기 경향파 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최서해를 알게 되고, 그에게 자기 누이를 시집보내는 등 최서해가 죽을 때까지 그와 가장 막역한 사이로 지냈다.

국내에 돌아와서는 각종 농민회, 청년회, 문학동인 등에 관여하였으며, 1937년에는 그로 인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가 KAPF 계열에 가담했거나 동조한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해방이 되자마자 사회주의 계열에 의해 추진되었던 건준의 조직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그가 사회주의적 시각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949년 이루어진 그의 자진 월북 또한 그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

그는 가람과는 달리 문단의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 하고 월북하기 전까지 주로 고향인 영광에서 곤궁한 삶을 이어갔다.29) 때문에 그가 비록 시조를 쓰기는 했지만, 그의 계층의식은 가람과는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비ㅅ소리 잠ㅅ결에 듣고
    얼시구나 모ㅅ비로다

    아아 豊年일세
    잠든 채 무릎첫네
    오느라 작고 오려무나
    남실남실

    달도 서울달은
    애잔하고 애잔하니
    비도 서울비는
    부즈럽고 귀찬컨만
    나란게 農村아희라
    깃불밧게

    어제ㅅ날이 ??했으니
    보리ㅅ대를 널엇스리
    누나는 들여싸코
    어머니 뒷치울제
    那那는 마르ㅅ?헤서
    비야비야 노래하리

    감자움 마쳐노코
    올나가라 하시든걸
    불야불야 ?나옴에
    인사말도 못햇섯네
    내말이 비개인 뒷밧테
    ?이필까

    주르르 쏟는비가
    얼마마니 고엿슬고
    언덕밋 장고바미 
    이만해도 족하련만
    웃논은 건다랭이라
    좀납불지 엇덜지.
  (六. 一四 雨朝 서울)

〈모ㅅ비에 집생각이 난다30)〉全文

이 작품은 1925년 7월 동아일보에 발표된 것으로 이 해 6월 14일 아침 서울에서 비 오는 광경을 보고 쓴 시조이다. 서울에 사는 도시인들에게는 달도 애잔한 감상의 대상일 뿐이고 비도 귀찮은 것이지만, 이 작품의 화자는 비를 보고 무엇보다 먼저 논에 심어 놓은 모를 생각한다. 비와 달을 낭만적으로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가 화자에게는 없다. 그에게 있어 일기와 같은 자연현상은 모두 농사일로 환원될 뿐이다. 그는 ‘農村 아희’이기 때문이다. 조운은 가람과 달리 난초와 문갑, 연적, 벼루, 四君子, 술과 가얏고 같은 그런 멋, 소위 文人畵的인 세계에 탐닉했던 선비 유형의 계층에 속할 수 없었다.31) 그는 위 시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생을 자신이 농민이라는 의식 속에서 살았고, 그 의식 속에서 그의 항일농민운동과 건준 참여, 자진 월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시조가 지닌 형식이 주자학적 세계관에 의해 이루어진 현대시조의 두 양식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가 그 두 형식을 지탱했던 세계관과는 다른 입장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3. 국민문학파와 KAPF 사이에서의 균형감각
조운의 세계관이 농민적, 민중적 계층의식의 범주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가 선비적 계층의식의 소유자들이 주장했던 시조로 나아갔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본래 시조는 고려말 신흥사대부에 의해 발전된 장르로서, 조선조에 들어와서 사대부들의 관념과 정서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장르로 굳어졌다는 것이 통설이다.

32) 따라서 김윤식이 현대시조의 형식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그것이 주자학적 세계관의 두 유형에 대응되는 것임을 지적한 것은 온당한 이해였다. 그러나 시조는 양반 사대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조선후기에 들어 생겨난 사설시조는 유교적인 이성으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한 평민들의 해방적 사상과 사회의식에서 비롯되었다.

33) 실학사상의 유입과 사회구조의 변모에 따라 儒者 중심의 예술은 점증하는 평민들의 요구에 의해 변화를 겪게 된다. 문학은 이제 어느 특수층을 위해서만 적합한 활동이 아니게 되었으며 방대한 민중의 집단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34) 이와 같은 사정에 의해 시조는 평민층의 문학으로 변해갔으며, 그것의 대표격이라 할 사설시조의 형식 또한 전형적인 고시조 양식에서 이탈해 갔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제 현대시조가 취할 수 있는 도식에 한 가지 유형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즉
1)주자학적 세계관―도학파,
2)주자학적 세계관―사장파,
3)민중적 세계관의 세 가지 부류에서 현대시조는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운의 시조 형식은 세 가지 유형 중에서 ‘민중적 세계관―사설시조’의 위치에 놓여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조운의 시조 형식은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단수형의 변형이 대부분이며, 조선 후기의 사설시조와 같은 형식으로 쓰여진 작품은〈九龍瀑布〉한 편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몇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劫이나 轉化해야 金剛에 물이 되나! 金剛에 물이 되나!
     샘도 江도 바다도 말고 玉流 水簾 眞珠潭과 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峰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連珠八潭 함께 흘러
     九龍淵 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九龍瀑布〉全文

많은 평자들이 이 작품의 빼어난 언어감각을 상찬한 바 있다. 그러한 의견에는 동의하더라도 이 시조는 조선 후기의 사설시조와 형식은 비슷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사설시조는 유교적인 도덕에 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현실적이고 구체적?醜?실제적인 것을 지향하거나, 도덕적?정신적?개인적인 것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적나라한 성정이나 육체적?집단적 정서를 추구하거나, 민중들의 사소한 일상적인 생활이나 현실적인 문제에 더 주목하는 것이 사설시조의 특징이다. 또 사설시조는 平語套나 口語?日常語?辱說?卑語 등의 사용을 통해 소극적 저항을 꾀하거나 풍자적 성격을 띤 알레고리를 통해 적극적 저항을 시도하는 문학이었다.

35)〈九龍瀑布〉에는 그러한 저항의 흔적이 없다. 이 작품은 사설시조보다는 앞서 살펴 본 연작형 기행시조와 유사한 세계관과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오히려 조운의 작품 중에서 사설시조에서 보이는 ‘實感實情’의 정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2장에서 살펴 본 단수형의 변형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실은, 조운의 ‘민중적 세계관―사설시조’의 지향이 현대시조의 형식 추구과정에서 사설시조의 답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단수형의 변형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체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민중적 세계관―사설시조’의 지향이 사설시조가 아니라 단수형의 변형이라는 시도로 이어진 데에는, 그가 초기에 자유시를 썼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세영에 따르면, 자유시 형성과정의 첫 단계는 ‘전통 장르 자체 내의 형태 해체’ 단계로서, 18세기 말의 사설시조의 등장은 그러한 과정을 대표하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36) 사설시조의 등장이 자유시 형성의 단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사설시조와 자유시가 근대의 지향이라는 측면에서 동궤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적 세계관―사설시조’의 등식이 ‘민중적 세계관―자유시’의 등식으로 변모된 것이다. 그러므로 조운이 자유시를 통해 詩作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의 계층의식이 처음부터 시조를 썼던 작가들의 선비적 계층의식과는 달리 민중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며, 그가 사설시조의 형식을 빌지 않고서도 실험적인 시조 형식을 고안해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字數만을 가지고 이게 時調의 字數의 노임새에 틀린 것이 무에냐고 할는지 몰으나 時調와 時調아닌 것의 區別은 字數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詩의 形態를 案出함에는 時調의 變形도 잇슬것이오 時調와 民謠를 基礎로 하고 外國詩形을參酌한 엇던形式도 생길것이며 가지각색으로 硏究하고 試驗도할 것이다. 이러한 意味에서 이와갓흔 變體的詩形이나오는것도 나는반가워한다. 만히 硏究하고 만히試驗하기를 바란다.37)(강조: 인용자)

이 평론은 조운의 평론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조운이 사설시조가 아닌 자유시에 가까운 실험적인 시조형식을 고안해낼 수 있었던 까닭과 함께 그가 자유시의 창작을 그만두고 시조의 창작으로 나아가게 된 원인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먼저, 현대시조의 형식은 딱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시조의 형식에 대한 그의 개방적인 태도는, 그가 근대적 자유시 창작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위 인용문에는 시조 형식에 대한 그의 개방적인 태도가 시조를 문학의 한 장르로서가 아니라 우리 시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서 비롯되는 것임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인식에 이르는 순간, 그의 자유시 창작은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38) 자유시는 사설시조의 계보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시가 아니라 “外國詩形”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의 본만 뜨고 남의 흉내만 내든 우리가 버리엇든 自己를 도로 차즈며 自己自身을 省察하고 自己 精神을 收拾하며 自己 그릇을 먼저 檢討해야 할 緊切한 무엇을 늑기게 되어 이제부터는 모든 것에 朝鮮心 朝鮮魂 朝鮮的이 따라 다니게 되엿다. 실로 올해의 丙寅年의 보람은 이 「朝鮮的」에 잇다고 생각하나니 決코 이것이 하챤한 것이 아니다.

門外漢으로 할 말은 못 되나 飜譯的이든 社會主義者가 民族運動者와 握手를 하게 되엿다는 것도 丙寅年의 大氣인 「朝鮮的」에 因緣을 둔 것이오 文學 音樂 美術에 잇서서도 作家와 아울러 一般이 朝鮮魂을 담은 것을 부르짓고 찻게 되엿다.
 
39) 같은 글의 앞 부분에 있는 위 인용문에서 조운은 시조부흥운동의 근저에 “朝鮮心, 朝鮮魂, 朝鮮的”인 것에 대한 지향이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시조를 ‘朝鮮我의 그림자’40)라고 본 六堂의 주장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조를 우리의 민족정신을 계승하는 유일한 장르로 보게 되면, 당연히 자유시를 비롯한 사회주의는 ‘번역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조운은 ‘민중적 세계관―사설시조’의 지향에 의해 자유시로 출발했지만, 그 민중적 세계관에 ‘朝鮮的’을 강조하는 민족주의가 개입되면서 자유시 창작을 멈추고 시조에만 전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당시 六堂과 嘉藍에 의해 시도된 시조부흥운동은 KAPF 진영 논객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KAPF의 논객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김동환은, ‘문학은 성장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문학사 속에 자리잡고 누워있는 死文學인 시조를, 詩體의 해방이나 내용의 개혁없이 그대로 부흥시키려 하는가’라면서 시조부흥운동을 비난한다.
 
41) 김동환은 시조는 도태된 장르일 수밖에 없으며 당시의 조선이 과거 조선의 정치와 생활양식을 버리듯 古藝術인 시조는 모두 버려야 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예술이 생겨나는 것이니, 각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예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조부흥운동에 대한 김동환의 비판은 조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김동환이 ‘死文學’으로 규정한 시조는 주자학적 세계관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었다. 조운의 시조는 주자학적 세계관과는 다른 계보에서 출발한 것이다. 오히려 조운의 시조는 자유시 창작 경험을 바탕으로 ‘詩體의 해방이나 내용의 개혁’을 이루었기 때문에 김동환이 주장한 새로운 예술에 더 부합되는 것이었다.

또한 그의 시조가 민중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시조부흥을 주장했던 국민문학파와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朝鮮的’인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그들과 동일했지만, 퇴영적인 주자학적 세계관에서 시조에 나아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가람과 같은 好古취미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는 ‘민중적 세계관―사설시조―자유시’의 계보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문학파와 KAPF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위 인용문에서 그가 ‘社會主義者와 民族運動者의 握手’인 신간회의 발족을 ‘朝鮮的’인 데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그 결합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균형감각에 의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조운의 시조가 지닌 실험적 형식 역시 국민문학파와 KAPF 사이의 균형감각에 대응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그는 ‘朝鮮的’인 것의 최소한이라 할 수 있는 3장42)의 형태는 유지한 채, 행의 구성을 자유시와 같이 자유롭게 함으로써 사설시조의 형식을 답습하지 않으면서도 민중적 세계관 속에 내재된 ‘뒤틀림’43)의 정신을 잇는 형식을 고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운의 이러한 시조사적 위치는 현대시조가 존립할 수 있는  창작방향을 모색하는 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김윤식은 주자학적 세계관의 두 의식과 현대시조의 대응관계를 올바로 파악하고, 이를 소화한 자리에서 비롯되지 않은 현대시조의 창작이란 있을 수 없거나 있더라도 무의미한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44) 그러나 조운의 현대시조 창작은 그러한 주자학적 세계관과 동떨어진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제기된, 시조에 고답적인 내용보다는 민중의 호흡을 담아야만 현대시조가 존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조운의 시조 창작과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45) 조운 시조를 포함하여 현대시조의 모색 양상들을 분류하기 위해서는 시조의 세계관을 주자학적 세계관의 테두리 안에 가둬 두어서는 안 된다.

이미 서론에서 1920년대 시조부흥운동이 민족주의의 고조된 열기 속에서 출발했음을 지적했듯이, 조운 시조를 올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현대시조의 세계관을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천관우46)와 김영작47)에 따르면, 한국의 민족주의 제 1기에 해당하는 개화기의 민족주의는 ①민족보위에 치중하되 근대지향에 냉담했던 위정척사계, ②양자를 복합화된 일체로 파악, 근대지향과 민족보위를 동시에 추구했던 개화자강계, ③주로 평민층의 자발적인 조직에 의존한 민중의 민족운동으로서 동학운동계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주장들은 3?1운동을 계기로 이루어진 민중의식의 성장 속에서 민족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융합48)되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약간씩의 차이를 유지했다.

문학집단 내에서도 국민문학파의 일부 문인들이 복고적인 경향을 드러내면서 위정척사계의 의식과 연결된 반면, KAPF의 문인들은 외래적인 사조에 추종하면서 개화자강계의 지향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이 두 극단의 중간 지점에 고도의 균형감각으로 이루어진 동학의 민중적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동학의 민족주의는 주로 민중의 자발적인 조직에 의한 것이고 외세를 배격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자학적 민족주의나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와 거리를 두면서도, 그 둘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조운은 그러한 동학의 민중적 민족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양반 사대부의 형식인 시조를 쓰면서도 주자학적 세계관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1947년 3월에 조선문학동맹에서 발간한《연간조선시집》에 실린 다음의 시〈古阜斗升山〉은 조운의 세계관이  동학의 민중적 민족주의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斗升山 이언마는 녹두집이 그 어덴고
    뒤염진 늙은이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배트소롭하고 묻는 나만 보누나

    솔잎 댓잎 푸릇푸릇 봄철만 여기고서
    일나서 敗했다고 설거운 노라마라 
    오늘은 백만농군이 죄다 奉準이로다 
                     <古阜斗升山〉全文49) 
 
4. 결론
월북문인이었던 조운의 작품은 1988년 해금이 된 이후에도 깊이 있게 논의되지 못 했다. 그러나 그의 시조가 보여준 독특한 시행배열 방식은 현대시조의 한 가지 방향성을 선구적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그는 단시조의 한 장을 한 연으로 하고 한 연을 다시 1행, 2행, 3행 등으로 나누어 썼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그는 시조의 정형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유시에 접근해 갈 수 있었다.

당대의 어느 시조 시인의 것과도 구별되는 이 독특한 형식은 그가 지녔던 민중적 세계관 속에서 산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20년대 민족주의의 영향 속에서 ‘朝鮮的’인 것을 찾기 위해 자유시 창작을 그만 두고 시조로 나아갔지만, 퇴영적인 주자학적 세계관에 머물지 않고 자유분방한 민중적 세계관 속에서 시조를 이해하고 창작을 임했다. 이런 까닭에, 그는 17, 18세기부터 시작된 사설시조의 정신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

시조부흥운동이 촉발되었던 1920년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현대시조는 ‘정형성’과 ‘현대성’이라는 이중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조운의 시조는 그러한 과제를 풀어가는 하나의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기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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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운시조집》조운기념사업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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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종연,「한국문학의 근대와 반근대」동국대 박사학위논문. 1991

A Study on Cho-woon's Sijo
Cho-woon's works was not discussed seriously after 1988. But the unique form of disposing lines in his Sijo works proposed one way of modern Sijo. He made one Chang(章) one stanza and divided one stanza one, two or three lines. By that form, he made an approach to free verse maintaining a fixed form of Sijo. The unique form of Cho-woon's Sijo seems to be produced in his popular view of the world. He stopped writing free verses and began to write Sijo to regain qualities of Cho-sun. But he threw away a Chu-tzu's view of the world and understood Sijo in free popular view of the world. For that reason, he reconstructed a tradition os Sasul-Sijo in moern way. Like the 1920's in which a movement of revivaling Sijo began, today modern Sijo are faced up to a question, satisfying 'a fixed form' and 'modernity' simultaneously. Cho-woon's Sijo works are significant in a literal history, because his works give a key to solve that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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