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는 詩風 / 세계일보
평론집『한국 현대시 비판』낸 이승하씨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동하는 이승하(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씨가 평론집『한국 현대시 비판』(월인)을 펴냈다. 갈수록 시인과 독자들이 따로 노는 현실에서 감각적인 '낙서시'들만 베스트셀러가 되고 아예 일부 시인들은 그러한 상업적인 시풍을 따라가는 현실을 이씨는 이 평론집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단의 고질적인 문예지의 권력문제, 그 문예지에 소속된 평론가들의 '야합', 잘못 흘러가는 시단의 유행병 등에 대해 거침없이 거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 평론집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우리 시에 대한 경고문'이라고 서문에 적었는데, 우리 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실험정신에 충실한 작품, 서정시, 민중시 등 3자가 정립(鼎立)을 이루는 구도였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 '신서정'이라는 이름의 서정시 일변도로 나가면서 균형이 깨져 버렸다. 이른바 '민중시'를 썼던 이들조차 연가풍으로 전향해 버렸다. 그 결과 이 사람 저 사람의 시가 엇비슷해 버렸다. 과거처럼 개성적인 시인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서 독자들도 시집을 외면하게 됐다.
통상 '본격 문단'에서는 아예 외면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베스트셀러 시인들의 작품도 이 평론집에서는 다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 시집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행태가 시단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시의 본령에 충실하기보다는 상업적인 쪽에만 신경을 쓰는 얕은 수준의 베스트셀러 시집들에 대해 한때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요즘은 출판사도 시인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자본의 논리로 암묵적인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형편이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시 자체에만 목숨을 거는 진정성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문예지들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 비판의 핵심은 무엇인가. 대부분 동인지체제로 운영되는 각종 문예지들은 편집위원들이 장기집권하면서 특집이나 판형까지도 대동소이한 형편이다. 뚜렷한 쟁점도 없고 뭔가 이슈를 내세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현대문학』의 '죽비소리'가 익명으로나마 제대로 비판의 역할을 했는데 그나마 사라져 버렸다. 문예지는 작가를 묶어두기 위한 관리형으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심지어 원고료조차 주지 않는 문예지들도 많다. 평론가들은 제 역할을 했는가. 그때그때 잘못을 지적해 줘야 하는데 대개 우리 비평가는 문예지에 전속돼 있다 보니 자기네들이 키워줄 만한 신인작가들을 옹호하는 발언이나 하고 문학적 주관이 다른 쪽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회피해 버린다. 고질적인 문제다. 당신도 문예지 편집위원의 권력을 확보하게 되면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조용호 기자(세계일보, 20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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