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 김호길
꿈속에 번개 치듯
'그게 아니야. 아, 그게 아니야.'
측간(厠間)에 앉아 멍한 생각
'그게 아니지. 암, 그게 아니지.'
그렇게
그 날이 왔으면
천둥 치듯 왔으면.
서론
고시조를 부정하는 현대시조는 시조인지 자유시인지 분별하기 어렵고 더구나 느낌표, 따옴표등 각종 부호로 한 몫 챙기려 한다. 왜 현대시조는 자유시가 되지 못해 안달하면서도 시조가 아닌 것을 시조라 우기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자유시처럼 행갈이한 것을 시조의 틀에 넣어보자
그날
꿈속에 번개 치듯 '그게 아니야. 아, 그게 아니야.'
측간(厠間)에 앉아 멍한 생각 '그게 아니야. 아, 그게 아니야.'
그렇게 그 날이 왔으면 천둥 치듯 왔으면.
촌평
시조는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열에 열 사람뿐만 아니라 백에 백 사람이라도 감상이나 느낌이 같아야 한다. 작자는 제목서 명시(明示)한 그날이 무엇인지 추정할 단서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꿈속에 번개 치듯 '그게 아니야. 아, 그게 아니야.'고 초장에서 의문을 제기했다면, 중장은 의문의 정체를 밝히고, 종장서 결론을 도출했어야 했다. 그러나 작자는 한가롭게도 초장서 두 번씩이나 되풀이한 '그게 아니야. 아, 그게 아니야.'를 중장서도 염불하듯 되뇌더니 염려한데로 결국 종장을 종결짓지 못했다.
시조는 자유시와 달리 동의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게 아니야를 무려 4개씩이나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시조의 그릇은 크지 않다는 말이다.
종기가 넘치도록(중장) 가득 담은 그게 아니야가 무엇인지, 그리고 작자가 바라는 그 날은 또 무엇인지 평자는 알 수 없다. 자유시는 작자가 전개하고 독자에게 종결을 맡길 수 있으나, 시조는 작자가 판을 벌렸으면 뒤처리도 작자가 해야 된다. 상기 작품같이 초장과 중장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종장을 업신여긴 것은 고시조에는 없다. 심히 안타까운 것은 작자도 여느 현대시조시인처럼 자수만 맞추면 시조가 되는 줄 아는 우를 범했다.
나가면서
시조는 절이 아니다. 시조는 절이 아니다는 말은 염불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출처 : http://koreanwriters.com/jboard/?p=detail&code=sijo&id=347&pag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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